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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Nov 06. 2023

내게도 번아웃이 왔다 3_안개는 괴물이 되어

그런데 냉정히 따져 보면 몸이 힘들어도 어떤 의미를 찾았으면 견딜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해서 이곳이 좀 더 나은 곳이 되고, 의 노력이 여전히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관용으로 사람을 더 품을 수 있고. 그렇게 쌓여가는 돌탑에 내가 작은 돌 하나 얹고 있다는 의미를 계속 느꼈다면...... . 


-'내게도 번아웃이 왔다 2 ' 중에서




'번아웃의 숨겨진 본질은 섭섭함과 서운함'이라고 한다.

번아웃은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만 촉발된다.
그 생각들은 섭섭함과 서운함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유발한다. 마지막 종착지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다.  
- 최인철 교수


맞는 말 같다. 나는 섭섭했던 것 같다. 나 혼자만 바보 같이 이러고 있다. 거칠 것 없이 일해 왔건만 이젠 내 뜻대로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낯선 두려움까지. 결과적으로 무력이다.

 

이런 감정을 동반하는 번아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 구성원이나 직장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측면을 최인철 교수는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소원한 일인가. '구조적'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일에 있어서 나와 결이 맞는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덜 힘들었을 것 같다만. 그런 동료와 일할 수 있었던 시기도 많았지만 직장의 인사는 지향이 같은 사람과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번아웃이란 벽은 손을 잡고 함께 담을 넘는 무수한 담쟁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철벽이었던 건지. 세상의 동류 의식이 무슨 소용인가. 내 옆에서 속 깊게 기댈 동료 하나가 귀한 것을. 그러고 보니 참으로 혼자였다. 그 무렵엔.


아직도 '모든 것은 다 변명이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역량이 안 되었던 거다.'고 생각하는 나를 본다. 이럴 때 당신 잘못만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서 가 말한 직장의 '구조적 변화'라는 말은 위안이 된다.


는 '내가 누군가의 삶에 중요하다는 경험', 매터링(mattering)의 회복을 번아웃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내 일로 보람 있고 행복한 적이 더 많았고 매터링을 느끼며 살아왔건만  이제 나의 행위는 무용인 것만 같다.


현실은 여전하다.
이젠 세상도 많이 변해서 나의 방식은
그저 시쳇말로 진지충류일 뿐.
나의 관용도 한계가 있으며
내 능력과 체력이 이전 같지 않다.
 

그때는 이 사실을 직면하지 못했다. 그저 뿌연 안개만 같았을 뿐이었는데 그것도 쌓여가면 무게를 얻어 괴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 커리어의 어떤 정점에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렸고 말 그대로 오리무중은 결국 다르게 살아 하는 전환점었음지금 와 보니 알겠다. 어쩌면 그것은 필연적인 한 과정일지도,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었을도 모르겠다. 다만 조금 덜 아팠으면 좋았을 데.




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가을 산을 혼자 올랐던 때로부터 일 년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 한 번씩 또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터널에서 길이 막히면 운전을 하다 차창을 내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날도 있었다. 퇴근길은 점점 더 쓸쓸해졌다만 예전과 다름없이 직장 생활을 했다. 걷기가 있기도 했고 또 참을 만도 했고. 그러고 보니 참았던 거였다.


어느 새벽이었나. 앉았다 일어나는데 무릎에서 낡은 용수철이 힘겹게 그럭대는 소리가 났다. 며칠을 그러더니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관절염이 나 보다.  번 주 걷기는 글렀네, 어떡하지.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 가니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약물치료 경과를 보자고 한다. 일단 걷기가 힘 드니 입원을 권한다. 갑자기 입원을 하라니. 저녁에 업무 연수를 신청해서 두 번째 강좌가 있는 날이었다. 택시타고 가 강의실에 앉아 듣기만 하면 되잖아. 병원에는 입원 준비를 하러 나간다고 하고 연수 마치면 밤늦게 입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좌 도중에 무릎이 아리고 쑤셔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가야 했다.


입원해서 무릎 관절 주사 같은 약물 치료와 물리치료를 하여도 점점 더 아팠다. CT 촬영 진단으로는 나처럼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잘 없다고 한다. 이 병원에선 더 이상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니 좀 더 큰 관절 전문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날 큰 병원에 가려고 침대에서 일어서는데 무릎이 무너져 내렸다. 미세한 관으로 무릎의 모든 진액을 순식간에 뽑아 내듯하는 불의 통증이 오더니 맥이 빠져 버리고 다리가 통제되지 않았다.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제로도 중력을 이길 수 없는 무력한 내가 되어 나를 일으키는 남편에게 얼굴을 파묻어야 했다. 그날부터 나는 걸을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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