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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Oct 24. 2023

내게도 번아웃이 왔다 2_'바틀비'의 그 말

 창백할 정도의 단정함, 애처로운 기품,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고독. 그가 바틀비였다.
그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의 나의 놀라움, 아니 대경실색을 상상해보라.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중에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었다. 그렇게 안 하기 위해 고집을 부렸다. 그러결국 졌다. 그가 구치소에서 아무 말도 없이 쓰러져 갔듯이.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왜 혼자 산에 가야겠다 여겼을까. 자연이 날 부른다는 것이 참말이었다. 모든 목숨은 살고자 한다. 지금 생각하니 내 목숨은 살려고 나를 자연으로 보냈다. 산, 숲은 푸르고도 붉었다. 연애걸 듯 피부에 속살대는 햇살, 솜털 머리 푼 억새, 파란 우주로 달리는 하늘.

'이젠 걸어야겠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이 한 생각만 하였다.


한 때, 올레길, 갈맷길 등이 만들어 지면서 걷기 열풍이 한창이었을 때,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벽돌책 '나는 걷는다'를 읽고 무분별한 로망에 빠졌었다. 그처럼 대륙을 건너는 막대한 여정은 꿈꾸지 못해도 산티아고 순례길 소망을 가지는 건 당연해야 . 만나는 사람들 중 열에 여섯은 그런 을 가지던 때 아니었나 싶다. 평소 걷기는 커녕 자동차로 집과 직장만 오가던 차가운 도시 사람인 나에게 그것은 물론 실천 없는 욕망이었다. 그날 산을 내려오면서 이미 길을 는 나를 보았다.


주말에 남편과 처음 걸었던 갈맷길은 영도 해안길이었다. 걷다가 지칠 무렵 한적한 어촌을 만났다. 해녀들이 자갈밭에서 해산물을 판다. 문어 숙회와 소주 한 잔, 바다는 짙은 파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직장에서 어느 한 날 숨쉬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내게 몸이 가르쳐 주는 해답이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남편과 걸었다. 송도 갈맷길, 청사포 철길, 이기대 해안절벽길, 선동 호수길, 수영 강변길, 해운대 문텐로드...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들어서 맘껏 쉬었다. 그러고 나면 희하게도 2시간 정도는 다시 너끈하게 더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 밤이 되면 그 길의 어느 끝에 있는 선술집을 찾아 둘이서 한 잔 술을 기울이고 인생의 동지가 되어 서로를 위로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출처 조선 미디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이 말의 묘한 매력에서 기필코, 헤어나오기 힘들다. 소설은 기이하다가 우스꽝스럽고 찡하더니 먹먹하다. 급기야는 슬프다. 무모할 정도로 '그렇게 안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필경사 바틀비에게 기가 넘어가던 다분히 현실적인 한 변호사는


'하나 지금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이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어두운 우수로 끌여들였다. 형제애의 우수! 나나 바틀비나 다 같은 아담의 후예가 아닌가. 우리는 세상이 명랑하다고 여기지만 불행은 멀찌감치 숨어 있어서 우리가 불행이 없다고 여길 뿐이다.'


 멀쩡한 듯 보이지만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그런데 보고 있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는, 그러니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야 말 것에 결국 동의하게 된다.


세상 어디든 그러하다. 그것을 봐한다는 것은 낭만적으로 말해 '어두운 우수'이다. 내 직장도 당연히 그러했다. 행복도 있으나 부조리나 숨겨진 불행이 있는 세계의 평범한 어느 한 곳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직장에서 나도 그랬다. 나의 그것이 상사정책 당국의 방침에 정의로운 반기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말하는 그런 '안 하고 싶습니다'였으면 얼마나 폼이 났겠나마는. 나는 작고 조용한 일 개 직장인일 뿐이다. 다만 끝없이 저 말을 하려 했던 것 같다, 내 일로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에서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영역이 있다. 그것이 침해되는 장면은 고통스럽다. 내가 힘들어 하는 지점은 이를테면 '자유'라 쓰고 '강제'라 읽는 상황 같은 것, 말 같잖은 답을 정답이라 기록하는 것, 산출되는 수치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 선한 인간 의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등이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내게 주어진 권한 만큼은 내 멋대로? 한다' 였다. 비록 강제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유를, 주어진 정답을 말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른 가능성을, 수치와 실적의 횡포를 지우면 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그래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뭐 그런 것들을 위해 열심을 퍼부었던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안 하고 싶'기 위해선 당당해야 했다. 능력이 부족해서 보통의 업무량보다 서너 배는 힘을 들여야 했다. 보람은 고통을 상쇄했다. 승진과는 별 개였다 해도 과분할 정도의 피드백도 받았다. 그러한 평가는 더 하지는 못해도 덜 하지는 않아야겠다는 무언의 기준이 되어 기도 한다. 문제는 내가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었다.


주말만 기다렸다. 도란도란 남편과 대화하며 걷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그도 나도 무아지경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의 희열은 러너스 하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걷기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려 하면 숨이 막힌다. 근 30년 동안 저렇게 살아오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렸다. 히려 만회해야 되는 시점이란 생각을 했다, 바보 같이. 몸만 부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병들어 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그런데 냉정히 따져 보면 몸이 힘들어도 어떤 의미를 찾았으면 견딜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해서 이곳이 좀 더 나은 곳이 되고, 의 노력이 여전히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관용으로 사람을 더 품을 수 있고. 그렇게 쌓여가는 돌탑에 내가 작은 돌 하나 얹고 있다는 의미를 계속 느꼈다면...... . 현실은 여전하다는 것. 이젠 세상도 많이 변해서 나의 방식은 그저 시쳇말로 진지충류일 뿐이라는 것, 나의 관용도 한계가 있다는 것. 내 능력과 체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몰려오고 있던 와중에 그날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을 것이다, 장에서 '빈센트'를 듣던 그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림 출처: 쳇봇에디스코 출판사의 '필경사 바틀비' 표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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