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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Oct 08. 2023

타지에서 보는 아들 1

가족

동네 꽃집에서 꽃 산다.

추석에 아들 보러 가려다 쉬어야겠다 싶어 열흘 전에 예약을 죄다 취소했다. 남편만 올라가게 되니 명절 연휴 며칠,  혼자 남는 집안에 보드라운 꽃이 피면 좀 나으려나.


한 이틀 사이 몸이 조금 회복되자 변덕이 슬그머니 고개 든다. 기차는 명절 전보다 막상 닥치면 자리가 더 많이 나게 되어 있다. 취소표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같은 시각에 남편 옆 좌석이 비어있고 숙소도 트리플로 변경 가능하다고 한다. 직장 - 집, 집 - 직장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멍해진다. 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는데도 답답함이 선명해지는 지경이 온다. 아침 일찍 길 나서는 피곤이 싫지 않은 이유다. 기차는 늘 그렇듯 다소 불편하고 제법 설레지만 대체로 지루하다. 그래도 종합하면 어쭙잖으나마 낭만이랄 수 있지 않을까. 아들 보러 가는 이 길도 여행이라면 자투리 여행이다.




이 청년이 다니는 학교 한 번 둘러 보고 사는 방에도 가 보고. 기숙사 현금 등록 날짜를 놓쳐서 저 혼자 서울 가서 동분서주 마련한 쪽방이다. 제 잘못이니 우리 부부는 애멸글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만 막상 방을 보면 안쓰러울까 했는데 깨끗하다. 주인장께서 관리도 잘 해주고 인상도 좋으시다. 착한 학생이라고 칭찬해 주신다.


이리저리 얘기 나누며 걷느라 학교에서 사진 하나 안 찍었네. 우리 식구들은 좀 그렇다. 가까운 후문으로 들어가서인가. '정문'이라는 권위 앞에서라면 한 컷 찍었을까. 저 녀석 언제 저리 컸지. 앞서가는 모습에 그제서야 저 몰래 사진을 찍게 된다. 집에선 지지고 볶고 빨리 네 집 가라 싶더니만 타지에서 보니 애틋하다. 멀대 같은 키에 덩치도 자라서 듬직한데 그만큼 남편과 나도 세월을 많이 보내었겠구나. 청년의 등에서 부부의 모습도 겹쳐 읽힌다.  




고깃집 '우육미'. 나갈 땐 한차례 번다함이 소강 상태라 1층을 찍어 본다.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한 음식점.

티본스테이크를 메시드 포테이토와 구워준다. 아주 맛있다. 남은 티본을 넣고 끓인 된장에 밥을 말아 주는데 별미지만 짠 편이다. 그러니 밥을 추가한다고도 하는데 양이 많아 그냥 먹었다. 우리 지역에 비해 서울 음식은 심심하련만 이곳은 반찬도 밥도 짠 편이다. 서울은 '온도'가 낮으리라는 편견이 있나 보다. '쿨'이라는 그러한 온도. 심심한 맛은 짠맛보다 쿨하다는 것도 편견인지 모르겠다.

나오면서 다시 보는 이 집의 정문은 우리 식 '정육점'이란 말보단 '부처샵(butcher shop)'이 떠오르는 다소 이국적인 면모인데 한길가에 매달린 저 뼈 고기의 기괴함 때문인가. '나는 육식 동물이로소이다.'가 천지에 까발려지는 느낌이다. 일부러 숨긴 것도 아니다만.


음식점 근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쪽으로 걸어가 본다.  운영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잠시 둘러보는데 가끔 서울 올 때 보는 이 건물은 늘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



그득히 먹은 저녁이라 청계천변을 걸으려고 길 찾기 앱을 열었다. 아는 척 내가 앞서다가 막다른 건물 사잇길로 접어들고 말았으니 허탈하다. 다시 돌아가기 귀찮은 속내들인데 눈어림에 드는 거리에 시장의 불빛이 환하게 부산했다. 광장시장, 그리로 가게 되는 수순일 수밖에 없겠다. 시장을 앞에 두고 두 남자를 뒤따라서 종종거리며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종로 5가'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가 그 '종로 5가'구나.

종로 5가. 발걸음이 멎는다.
종로 5가 건널목을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 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 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ㅡ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종로 5가 서시오 판 옆.

그러니까 오십여 년 전 시인은 저곳에서 한 소년을 만났을 터이다. 등허리에서 얼굴 맞부비고 있던 고구마에 담긴 소년의 새벽, 고향의 가난한 흙. 먼 길 떠나와 비에 젖는 남루함은 고구마의 온기 하나에 의지한다. 새로 산 운동화의 자리가 된 저 작은 품은 또 어떤가. 슬픈 온기다.

가로수 하나를 걷다 시인이 뒤돌아 보았을 때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했는데, 나 역시도  서시오 판 옆 건널목을 뒤돌아 자꾸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를 찾게 된다.




늦은 밤 광장시장은 밤이 아니다. 일렬로 늘어서서 저마다 불 지피고 있는 전구알은 우리 지방 바다에서 간혹 보는 오징어잡이 배의 그것과도 닮았다. 갑자기 이곳이 바다라 해도 믿긴다. 사람들의 파도. 지방은 사람이 점점 없어지건만. '밀도'라는 말을 잊은지 오래인 지방이다. 내가 사는 곳을  '노인과 바다'라 일컫는 데에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


광장시장에선 빈대떡이 유명한가 보다. 주인장의 손에서부터 줄지어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손으로, 입으로 나아가는 빈대떡이 이 공간을 너울거린다. 금방 밥을 양껏 먹었으니 전은 기름져 배부르다고 두 남자는 육회를 찾는다. 그러면 배가 안 부른가요. 무슨 논리인지.

광장시장 불빛, 사람들, 그리고 육회. 육회는 맛있지만 너무 선연한 뭔가에 또 움찔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티본스테이크의 기억은 어디 두고 오셨나요들인 채 달게도 육회 한 접시를 비운다. 엄마는 멀뚱히 생각한다. 이 작은 가게에도  온갖 국적과 나이가 뒤섞였구나. 사람 참 많다.


서울의 밤은 이렇게 가득 찼다가 곧 저마다의 쉴 곳을 찾아 빠지는 썰물의 뒷모습이 되리라. 오랜만에 가족은 함께이니 낯선 밤이 낯설지 않다. '타지'란 가족 서로가 '서로'여서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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