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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Oct 11. 2023

PIFF를 중년이 혼자 즐기는 법

부산국제영화제_'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

당일 현장에 가면 표를 구할 수 있다.


매일 컨디션이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시기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예측할 수 없으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운동이나  몸 쓰기를 꼭 일상화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물리적 한계를 가늠하고 힘을 적절히 배분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50대는 그렇다. '예매'라는 건 무엇이든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영화제 작품은 그날 남아 있는 무엇을 봐도 좋다. 오히려 그 우연이 좋다. 취향 아닌 만남을 통해 내 좁은 지평이 확장되는 기회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 아닌가. 오늘 자 예매 사이트에 혹시나 들어가 보니 역시나인데  한 작품에 여분 자리가 셋 있다. 웬일이냐. 클릭!


여유 있게 가야지 했건만 늦어 버렸다. 차를 가져가면 된다는 뒷배가 있어서 늑장을 부렸으리라. 지하 주차장에 가서야 아뿔싸, 차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생 일로 고생한 남편이라  짧은 여행을 떠나보냈는데 돌아오면 그의 숙소로 바로 가야 해서 공항에 차를 뒀단 생각을 미처 못했다. 


상영에 앞선 암전은 얼마나 매력인가.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고 입장하는 것을 누구나 싫어할 테다. 어쩐담. 맹렬히 지하철 승강장으로 갔건만 기차는 막 떠난다. 삶이란 원래 이런 거지. 다음 차는 퍽이나 오래도록 안 온다 싶고 마침내 대령한 기차에 반갑게 올라타지만 그 안에서 내달릴 수 없으니 한스러울 뿐. 하차하면 지하에서 연결된 영화관이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영화의 전당'을 주로 이용하는 나는 이곳이 낯설다. 상영관은 으레 꼭대기 식당 층 밑이거니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내렸는데 시야가 막힌 공간이 떡 하니 가로막는다. 휴우, 길 찾아 꼬불꼬불. 결국 한 층을 내려가야 매표소가 나왔다. 오늘의 교훈은 일찍서두르세요 아니랄까 봐


세상에나.

드디어 발권을 하나 보다 하는데 상영관이 여기 해운대가 아니고 남포동이라고 한다. 4분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라던 기쁨도 잠시. 허허. 그렇지. 막판에 이런 엇나감 정도는 있어 줘야 드라마틱한 재미가 있지.  환불 타임은 이미 지났으니 그래, 고생하는 피프. 옜다, 기부한다.


"지금부터 젤 가까운 영화 주세요."

비문이니 뭐라고 하실지 몰라도 나로서는 이 문장이 좋은 걸. 우리 지역 영화제에 대한 신뢰이자 어떤 인연이 날 기다리나 하는 설렘이 묻어나는 말이니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

아니, 제목이 왜 이렇게 시적인 거야. 여지껏 날 골탕 먹이던 '머피의 법칙'을 다 용서해 주련다. 12시 30분이면 한 시간 반이 남았으니 넉넉하다. 교보에서 한숨 돌리면 되겠다. 그런데 가만있자, 사랑? 음...... .



오늘 인연이 된 영화




누군가 아티스트를 정의해 보라고 묻는다면
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아티스트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라고.
-화가 아난


기다리는 동안 책을 하나 골라 읽다가 만난 문구이다.  '아티스트'가 기쁨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티스트'라면 그들의 고뇌가 우선 생각나는 내게 이 말은 의외인 선물 같다. 감독과 배우뿐 아니라 무수한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장르가 영화이다. 그러니 나는 많은 이들이 나누어 주는 기쁨을 곧 누리러 가는 것이구나.






영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들'. 보기 위해 열망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사랑한다.


영화는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이 사랑에 눈 떠가고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감각을 따라가는 것이 비장애인인 나로서는 쉽지 않다. 그들의 서정은 다층적이며 풍부했고 사랑의 서사는 익숙한 듯하다가도 금방 낯설어졌다. 이를테면 특별한 서사가 성립되지 않아도 다아나는 좋아하는 남자의 어깨에 꼬옥 기댄다. 그의 얼굴은 희미하지만 사랑은 충분히 미묘한 즐거움이다. 말하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피트리는 그 남자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농인인 남자는 보이지 않는 그녀를 시각적으로 속이지만 그녀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소리를 들려주려 한다. 영화는 감각을 뭉개면서 그러한 순간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얼굴을 냄새 맡게 해 주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여준다.



상영 후 감독과 만나는 시간. 몰리 수리아 감독은 씩씩하고 달변이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감독은 어린 시절 시각장애인 친척 언니와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랑이란 어떻게 느껴지는 것일까. 외모 같이 시각적으로 감각되는 것이 대표적이리라  생각되는데 향기나 목소리, 온도나 감촉,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아도 상대가 그러할 것이라는 신뢰 등 다른 무수한 것 통해서도 느껴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 이들보다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을 맞는다. 다 알고 있고 전부 느낀다고 착각할 뿐. 감독은 인간 무엇으로 사랑을 느끼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한 관객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시각 장애인 인터뷰에서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가 있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장애를 물려주겠느냐라고 했을 때 90프로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 영화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묘사들이 보인다. 이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흥미로운 조사인데 아마 그 경우는
태생적 장애인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장애라고 하여도
그것은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또 다른 감각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수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동요를 삽입하였다.
'반짝반짝 작은 별...'

                                 몰리 수리아 감독



여전히 시혜적으로 장애를 보기도 하는 사회에서  '그들 세계의 미학'을 시종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 가치 있다. 그것도 십 년 전에 제작되었으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이란 '우리가 주목해 본 적 없는 그들의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우리가 알던 감각이 다가 아닌 또 다른 사랑의 감각'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산에서 PIFF가 한창일 무렵엔 가을이 사람들 사이를 낮고 우아하게 거닌다. 출근할 때 아니 구두를 신지 않는데 오늘은 뾰족구두를 신고 싶으니 웬일인가. 바로 내일 건강과 기분도 잘 모른다 싶으니 예매도 당당히 못하겠고 닥쳐서 후다닥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성적인 뭔가가 점점 사라져 가는 거다. 그래도 우여곡절 혼자서 즐기는 올해 PIFF는 이 정도면 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여름부터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오히려 무질서해져서 요가를 소홀히 했다. 루틴을 깨기는 쉬워도 다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 은 요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중년은 몸이 답이기 시작하는 때다. 아프지 않고 가뿐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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