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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Oct 17. 2023

타지에서 보는 아들 2

인생


아들 옷을 사러 간다.

대학 들어가고 옷 한 벌 해 준 적이 없다. 사 준다고 해도 돈으로 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인 아들. 미래에 밥이나 제대로 먹겠나, 집이나 장만하겠나 고민을 벌써부터 하는 세대이라 청춘은 늘 돈이 고픈 모양이다. 브랜드 옷, 이름있는 소품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제 용돈 안에서 조촐히 해결하는 아들이다. 동안 너무했나 싶어 동대문에서 옷 몇 벌 장만해 준다. 곧 추워질 걸 생각해 도톰한 옷도 고른다. 겨울로 향하는 타지에서 얇은 옷은 생각만 해도 서글퍼진다. 선뜻 얻어 입는 게 편치 않아 보이는 아들 표정이었는지 '부모님 찬스일 때 잘 입으세요.' 하는 사장님 말에 잠시 반짝이는 가게 안 웃음소리. 이런 옷가지도 부모님 찬스라고 아들은 고마워한다.   




차 한 잔하면서 쉬고 싶다. 어디로 가 보나. 남편은 덕수궁으로 가자고 하는데 나는 근처 가까운 곳을 검색하다 세운 상가가 맘에 든다. 도시 재생 사업은 늘 흥미롭다. 십여 년 전, 북경 798 예술지구에 연수를 가 보고 놀랬다. 낙후한 공장을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관과 작가 작업실로 변모시켰다. 우리 동네도 고려 제강 공장 터를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명소가 되었다. 주민들이 마을에서 소비하고 문화를 누리는 토양이 굳건해야 지역이 살지 않겠나.



세운 상가 문화구역. 태권브이가 맞이한다.



세운 지역은 재개발과 재생 사업 간의 부조화로 재탄생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알고 있다. 거대한 생태계와 같던 곳이었으니 뿔뿔이 흩어지는 이주가 얼마나 가혹했을까. 이곳의 노포와 장인들이 어디선가 다시 잘 뿌리내리길 바라지만 지난함을 알기에 마음은 헛헛하다. 이미 많은 곳이 헐리고 남은 몇 구역은 문화지역으로 변모한 지 오래라는데 연휴라서인가 한적했다. 옥상 정원은 폐쇄되고 내부도 숙숙해서 태권 브이의 위용이 무색하다. 좀 더 걸어 들어가 보니 조그맣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내 눈에는 철학 전문 서점이 딱 꽂힌다.


철학 전문 소요 서가. 이날도 영업을 했다.



김수근의 야심 찬 디자인이었다는 3층 공중 보행 데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곳의 낡은 역사가 웅크리고 있는 골목이 보인다. 이젠 세계적으로 도시 재생을 도시 계획의 중심에 두고 있다. 건축가들도 랜드마크식 설계보다 건물의 역사성을 어떻게 살려 재생시키느냐에 더 관심을 갖는 추세이다. 한창 재개발 중인 이곳도 이런 관점을 잃지 않았으면. 오래된 것이 품고 있는 시간의 흔적 앞에서 일말의 엄숙을 본다. '핵무기 빼고는 다 만든다'던  어떤 절실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을 이곳의 기억 아닌가.



사진 출처 blog.naver.com/erevos8691/223119342036







척 봐도 포토 스팟인 곳에서 아들을 슬쩍 찍는다. 마주 보이는 흰 건물이 카페 '번트 서울'인데 옛 건물을 그대로 살렸다. 아들 말로는 인스타 갬성이란다. 커피, 하이볼, 빵 모두 입맛 섬세한 이 녀석이 인정한다. 낮고 편안한 의자에 몸을 누이고 세 식구가 도란도란.







"아. 오랜만에 중산층이 되어 누렸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카페에서 일어서며 내뱉는 아들의 말이다. 먹는 데는 아끼지 말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할 걸 뻔히 안다. 집이 아니라면 움직이는 족족 다 돈이지 않은가.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을 아껴야지만 아껴진다.




....

사랑도 잠시 수능이란 현실에

부딪쳐 난 밤을 새며 쏟아내던 코피

고삐 풀린 망아지는 이제 대학 새내기

1년이나 다녔을까 군대가 날 불렀지


그래 나라의 부름에 난 주저 없이 갔지

값진 일이지만 어머니는 울었지

대한의 건아라면 그 누구나

한 번쯤은 치러야 할 관문이겠지만

논산에서 너와 헤어지기 싫어

울며 밤 샌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두 손엔 이별 통보 편지를 들고

연병장을 뒤로 걷는 힘찬 구보

제대와 동시에 집안 꼴은 엉망

학업보단 취업이 우선시된 상황

어렵게 구한 직장은 철이 없던

학창 시절 선생님의 수학 문제처럼 안 풀린다


....

꿀 맛 같던 신혼도 잠시

아이를 낳고 나니 더욱 무거워진

아버지란 위치는 돌덩이를 지고 사는 자리

돈 천원 아끼겠다고 대학교 식당을 전전하며

먹던 점심 맛은 아주 허당이었지만

어쩌리 때 이른 퇴근길

천 원짜리 과자를 사 들고 집 들어서니

못난 애비를 반기는 토끼 같은 자식

호두과자를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이놈들을 보니 더욱 빨리 뛰어야지


쑥쑥 커나가는 나만의 공주님

집을 마련하고 이제는 허리 좀 필까

했더니만 결혼 자금에 또 등이 휜다

평생 번 돈을 다 내주고 보니

내 마누라 머리 위에 내린 하얀 서리


 ....

꽃 피듯 살아온 인생 꽃 지듯 살다 갈 인생

돌아보니 아름다웠던 인생 이젠 미련이 없네



-MC Sniper, 인생. 중에서



아들은 저 노래 앞 부분 어디쯤일까. 이 땅의 남자들. 언젠가 한 번 듣고는 정말 그러네 싶던. 하기야 아들은 군에 갈 때 어머니가 울기는 커녕 "야호! " 하였으며 군에서 이별 통보를 한 여친도 없었다마는. 웅산의 스웩이 서글픔을 묘하게 중화시키니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듯하다.


상상만 하던 타지 살이가 아들의 쪽방을 보니 살갗에 닿는 것 같다. 창이 없으면 제일 싸다. 창 하나 있으면 몇 만원 추가. 발 놓을 자리 조금 더 있으면 더 쳐줘야 하고 화장실 크기에 값이 다르고. 하늘에도 전세 월세가 있을까라던 노래도 있었다만 청년이 몸 하나 누일 땅은 3.3 제곱미터보다 더한 단위로 값이 매겨지니. 부모 집에 살 때는 모르다가 저러고 사는 시간 마다 마다에 값을 지불하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청춘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그래서 부모한테 옷 한 벌 사달라는 소리도 미안해서 잘 못했던 거겠지. 저 쪽방에 누워 제 앞길에 대해 고민하는 밤은 얼마나 무수했으며 또 얼마나 무수할 것인가.


집에 와서 친구가 한 잔하다 그런다. 애틋해 마라. 귀한 경험이다. 부모 밑에 포시랍게 크면 알 수 없을.  물론 그렇지. 나도 따신 엄마는 아니라 '니 인생 니가 살아' 주의이고 낯선 곳에 발붙여 정착하고 있는 게 어디냐 싶지만 타지에서 보는 아들마른 내 마음도 적시는 걸 어째.


"여기 빵 왜 이렇게 맛있노."

토핑이 잔뜩인 빵은 안 먹더니. 빵 몇을 골라 손에 들려주었다. 혼자 돌아간 방에서 제 맛있다는 것 먹고 있으면 엄마 아빠 보낸 썰렁함이 조금 가시려나. 금방 다 잊고 저나 나나 또 씩씩하게 살겠지만. 천변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접어들자 부부는 2호선 자식은 3호선, 헤어진다. 이렇게 각자 가야 할 길이 있는 법이다.




둘만 남으니 급 피곤해져서 서둘러 차 시간을 변경하고 싶다. 남편과 공공칠 작전. 곧 떠나는 기차에 마주 보는 좌석이 마침 비어 있어 둘이서 폰을 맞대고 놓칠세라,

14호 차. 나는 8C. 당신은 9C. 시-작. 눌러!

이것도 작전이라고 완수한 쾌감에 아이들 같이 기쁘다.


읽거나 혹은 듣고 보다가,  졸다가, 한 번씩 마주 보고 웃기도 하는 이 부부를 싣고 하행선 열차는 무심히 달린다.



주인 없던 집엔 거베라가 여전히 저희끼리 의지하며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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