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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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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Nov 18. 2023

새별오름이 안아 줍니다

자연

사랑스런 이름이기도 하지, 새별이라니.


출장 왔다가 새별오름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아가 냄새 폴폴 나는 오름이랄까. 보들보들 걷는 내내 살 내음이 나는 듯하지만 풍광은 그윽하니 묘한 아이러니다. 15분쯤만 천천히 경사로를 오르면 평지 능선을 걸어 정상까지 간다. 깔끄막진 언덕을 오를 때면 뒤돌아 보이는 제주가 훌륭해서 오르는 동안이 한사코 길어진다. 나는 저 펼쳐진 평원이 항상 좋다. 아득한 평화가 지상에 심장을 대고 엎드려 있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원시적 감흥. 그래서 제주를 온다는 건 늘 오래된 순수를 만나리란 약속만 같다.



새별오름을 오르는 도중 뒤돌아 보이는 풍경




새별 오름은 일몰과 억새가 유명하단다. 때마침 '일몰의 억새'를 보게 되다니.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견디기가 어려웠다. 올해는 복직하고 이러구러 가려나 했는지 눈높이로 달려드는 억새의 실물 영접이 새삼스럽다.






천천히 정상으로 걷는 동안 해가 진다. 제주의 자연은  '그 입 다물라'이다. 입 다물고 바라만 본다.


정상에서. 그냥 찍어대도 작품이다.




출장 일정 때문에 시작하는 일몰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만 이만으로도 충분하다. 황금의 풍경에 물들고 있으니 여기까지 잘 살아왔구나 싶어 진다. 내가 모르는 동안도 이곳은 쉼 없는 황홀을 연출했듯이 나 역시도 내 곳에서 뿌듯이 생을 연주한 것 아닐까. 알아주지 않아도.


자연이 내주는 품은 항상 그지없다. 언젠가 내가 돌아갈 데가 저러한 곳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때가 되면 작고 하찮은 나도 무언가를 안아 줄 품일 수 있겠구나. 내일 또 세상사 덜컹대는 일상이 펼쳐지고 '핵개인' 시대 예보 비를 맞겠지만 저 품에 안기면 한결 든든해진다. 오늘도 한 가닥 늘었을 나의 주름을 넉넉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려가는 길.

억새에게 '안녕!' 하고 뒤돌아 보는데 지는 해도 제 붉은 옷자락을 고요히 흔든다.

"하은수, 안녕."







내려와서 안녕,  돌아보는 새별 오름 끝자락








*주차장이 넓다. 입구부터 바로 경사로지만 풍경을 보며 넉넉히 15분이면 오르고 이후는 정상까지 거의 평지다. 오르기 시작해 다시 내려오기까지 40분 정도면 충분히 즐긴다. 들이는 노력 대비 얻는 기쁨이 무척 크다. 아이들과 가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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