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왔다가 새별오름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아가 냄새 폴폴 나는 오름이랄까. 보들보들 걷는 내내 살 내음이 나는 듯하지만 풍광은 그윽하니 묘한 아이러니다. 15분쯤만 천천히 경사로를 오르면 평지 능선을 걸어 정상까지 간다. 깔끄막진 언덕을 오를 때면 뒤돌아 보이는 제주가 훌륭해서 오르는 동안이 한사코 길어진다. 나는 저 펼쳐진 평원이 항상 좋다. 아득한 평화가 지상에 심장을 대고 엎드려 있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원시적 감흥. 그래서 제주를 온다는 건 늘 오래된 순수를 만나리란 약속만 같다.
천천히 정상으로 걷는 동안 해가 진다. 제주의 자연은 '그 입 다물라'이다. 입 다물고 바라만 본다.
정상에서. 그냥 찍어대도 작품이다.
출장 일정 때문에 시작하는 일몰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황금의 풍경에 물들고 있으니 여기까지 잘 살아왔구나 싶어 진다. 내가 모르는 동안도 이곳은 쉼 없는 황홀을 연출했듯이 나 역시도 내 곳에서 뿌듯이 생을 연주한 것 아닐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연이 내주는 품은 항상 그지없다. 언젠가 내가 돌아갈 데가 저러한 곳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때가 되면 작고 하찮은 나도 무언가를 안아 줄 품일 수 있겠구나. 내일 또 세상사 덜컹대는 일상이 펼쳐지고 '핵개인' 시대 예보 비를 맞겠지만 저 품에 안기면 한결 든든해진다. 오늘도 한 가닥 늘었을 나의 주름을 넉넉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