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1
"교사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다면 자신이 교사든 아니든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해 보자. 아마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일'을 떠올릴 것이다. 미래의 꿈나무라고 불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선대의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고, 옳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들을 익힐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 말이다.
실제로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그 대상이 워낙 광범위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게 어떤 것들인지는 누구든지 웬만하면 다 안다. 자신도 언젠가 한 번은 학생이었던 적이 있었을 테니까. 주요 교과와 예체능을 가르치고, 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학습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모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살아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뭘까?'
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첫걸음을 들이밀 때, 항상 똑같은 방법으로 시작한다.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한 책을 여러 권 가져와 탐독하는 것이다. 뻔하디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 방법을 통해 매년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꽤 많은 지식을 쌓았고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해 왔다. '교육도 뭐 다르지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교육이란 분야에서 나보다 훨씬 앞서 걷고 있는 분들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뚜렷한 공통점이 보였다. 가르치는 기술과 방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간과하거나 놓쳐버린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교사가 기대했던 학습목표 도달이라던가, 살아있는 수업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이 도통 잘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교육 전문가들이 하는 이 얘기에 내가 붙잡고 있던 운전대를 크게 틀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운전대를 그저 꽉 붙잡고만 있다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잘 가르친다'는 덫에 빠져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마음을 얻어라. 그다음에 가르쳐라."
이거였다. 반 이상의 보이지 않는 벽을 쌓은 채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그 알쏭달쏭한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봐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전날 밤새 수업 연구를 해서 재밌는 시간을 꾸려보려고 해도 아이들이 참여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수업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렇다.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얻지 못하면 가장 먼저 생활 지도가 힘들어진다. 상담은 뭐 말해 뭐해다. 열심히 계획한 학급 행사와 각종 이벤트에 실리는 힘이 미약하다. 아이들은 즐겁지 않고, 교사는 즐겁지 않은 것을 떠나 세상이 무너질 듯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에게 내 교실과 내 아이들은 사실,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새 학기 첫 한 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그런데 종종 그 기간을 '아이들을 확실하게 잡아놓는 시기'로 오판(?)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이제 갓 일정연수를 마친 저경력인 내가 할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건 100% 작년의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새 학기 첫 한 달은, 아이들은 잡는 시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이때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선생님을 관찰한다. 나도 당시엔 몰랐지만 훗날 아이들이 써준 편지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눈빛으로 자기를 쳐다보는지, 무엇 때문에 감동을 했고 무엇 때문에 서운했는지 하나하나 다 기억을 한다.
모든 아이들이 교사에게 가장 집중하는 바로 그 시기가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때인 것이다. 운이 좋게도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이 '비기'를 나에게 적용하여 1년의 시작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다이어리에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아두고 매일 들고 다닌다. 모든 편지와 모든 사진을 넣어 다닐 순 없는 게 한탄스럽다. 여하튼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의 '마음'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면 없던 힘도 생기곤 한다. 이 아이는 1학기 학급 부회장, 2학기 전교 부회장을 했던 역임했던 아이다. 잠깐의 눈빛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다) 어쨌든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한 내용과 관련이 있어 살짝 넣어보았다.
중요한 건 "마음을 얻어라. 그다음에 가르쳐라"와 같은 주옥같은 얘기들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대에서도, 임용에서도, 학교에 발령받고 4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이제야 알게 된 이 깨달음마저도 수많은 실패와 절망을 혼자 아등바등 겪으며 어쩌다 운 좋게 얻게 된 하나의 경험이었다. 얼마나 많은 교사분들이 매일 힘들게 학교 생활을 하시는지 알고 있다. 초등교사들이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면 내가 다 힘들어지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교사로서 많이 부족하고 이제 시작인 위치이지만, 내가 가졌던 고민들 때문에 지금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