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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by godlieve

최근에는 기분도, 능률도, 생각도 들쭉날쭉하다.

오늘은 그 기복 중에서도 가장 저점에 도달해 있을 때의 생각이다.

어떤 날은 너무 바쁘고 생각도 분주해서 집중해야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다.

그게 며칠 이어졌고 그리고 오늘은 그 모든 것에서 빠져나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흘려보낸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오히려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즐거워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사실 요 몇 주간 마음이 굉장히 분주하다.

모든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듯이 주변에 벌어지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부모가 속한 나의 가정이, 아내가 속한 나의 가정이, 내가 몸담고 있는 모든 공동체가.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지 않을까?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와 그녀에게 내가 중요하지 않은가 보구나.

내가 그 혹은 그녀에게 선의와 마음으로 베풀었던 노력과 사랑이.. 사실은 그 혹은 그녀가 나를 이용하고자 노력했던 것에 대한 결과였구나.. 하는 의심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이권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내가 온전히 선의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관계는 몇이나 될까?


그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모든 관계와 모든 사람이 다 의심스럽다.

차라리 일로 맺어진 관계라면.. 기브 앤 테이크를 전제로 하는 정해진 관계라면.. 오히려 더 선명하다.

사랑, 우정 어쩌니 하는 것들로 이름 지어진 관계가 지금 나한테 있어 가장 불투명하고 두렵다.

그런 생각에 빠져서 의심하다 무의미에 도달하고 현실에 부딪히면 갑자기 삶이 너무 외로워진다.


"준비 없이 비를 만난 것처럼" 이란 가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정말 말 그대로 준비 없이 큰 비를 만난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외로움을 맞고 서있게 된다.

그 외로움을 마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버리고 그리고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흘려보낸다.


이전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거나 가만히 있거나 눈을 돌려 영화를 봐버린다거나 생각하지 않으려 게임을 시작했다. 더 의미 없이 기억되지 않으려 그저 흘려보내버릴 것을 찾는다.

요즘에는 브런치에 들어와 아무 말이나 적기 시작한다. 아무 말이나 적다 보면 부모에 대한 원망을 하기도 하고 나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하며 세상에 미움을 뱉어 내기도 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글을 뱉어 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게 된다.


원망도 토로도 투정도 한 글자 한 글자 의미를 가진 채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읽히게 되는 셈이다.

그것으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게 되었다.


이전엔 일부러 나를 동굴에 밀어 넣기도 했다. 나의 동굴은 내 삶과 감정 어디에도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동굴에 들어가 주저 않는 데는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다.

"태엽 감는 새"라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3권짜리 소설을 여러 번 정독한 것은 그 소설이 유일하다.

우물과 다림질로 동굴과 현실을 오가는 주인공, 현실에서의 수수한 무존재를 추구하는 주인공, 우물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주인공은 나와 닮았다. 닮은 것인지 닮기를 원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금 시점을 딱 짚고 어떻냐고 묻는다면 꽤나 닮았다.


동굴에서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내 동굴에서의 여정은 현실에서의 사소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동굴에서 나오면 사소한 문제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는 큰 문제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한번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소한 문제로 변모해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쓱쓱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요즘에 동굴에 들어가는 대신 브런치로 들어간다.

회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고 나면 그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문자로 남아 시간이 지난 후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때의 일은 괜찮냐고"

"그때의 고민은 해결되었느냐고"


때때로 그 문자들은 내게 칼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 칼은 나를 다치게 찌르지 않으며 그 위로는 누구보다 따뜻하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라면 나는 나에게 누구보다 명확한 일침과 가장 좋은 위로를 건네주는 좋은 사람이다.

이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나의 수많았던 동굴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겨준다.


여러가지 사건과 그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다.

지금 나에게 닥친 외로움과 정신적인 번뇌가 정리되지 않아서 정갈하게 글로 늘어놓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글로 지금을 남겨놓기로 하겠다.


지금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라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나여...

나는 지금 너에게 세상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믿어라.

네가 겪어온 삶은 너에게 미움과 지독함을 남기지 않았고 다정함과 사랑을 남겼으니..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감정도 분명히 비슷한 것을 남길 것이다.

너와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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