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4]『사랑의 생애』리뷰 (이승우 작가)
책은 나의 기존 세계를 깨뜨리고
확장시키는 도끼 같은 존재다.
― 프란츠 카프카
이 네 단어는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발음할 때 입술이 닿는 모양도, 그 안에 담긴 오묘한 무게감도 비슷한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와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나란히 놓아보면,
이 단어들은 서로의 자리를 바꿔 끼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굴레는 곧 사랑의 굴레이고, 사랑의 생애는 곧 한 인간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최근 저는 이 두 권의 책을 덮으며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조심스레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정체성은 곧 행동이다.
존재(Be)하기 위해서는 가질(Have) 삶의 이유가 필요하고,
그 이유는 오직 행동(Behave)하는 과정에서만 증명된다고.
사랑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고민해왔지만, 어느 누구도 완벽한 정의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더듬는 사람들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만져지는 사랑의 단면만을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만진 것이 코끼리의 다리라면, 상대가 만진 것은 코끼리의 코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나의 사랑이 너무나 절실하고 당당하기에,
상대가 말하는 사랑의 모습이 틀렸다고 부정하는 순간 사랑은 폭력이 됩니다.
사랑의 목적이었던 '당신'을 사랑의 당위를 주장하느라 잃어버리는 모순.
이 신비롭고도 아픈 모순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이해'의 영역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작품을 읽으며 저는 '깨닫는다'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두 가지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첫째, 깨닫는다는 것은 '깨어지며 닳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단단하고 모난 당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삶이라는 파도에, 사랑이라는 거친 숨결에 부딪히며 그 모난 모서리들은 조금씩 깎여 나갑니다.
내 개성이 사라지는 슬픔이 아니라,
타인과 더 부드럽게 맞물릴 수 있도록 나를 다듬는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사랑을 하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어울리는 모양으로 닳아가는 건 아닐까 합니다.
둘째, 깨닫는다는 것은 '깨어지며 닿는 것'이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행위인 동시에, 결국 나 자신을 향한 여행입니다.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살아가는지,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에 가닿는 것이지요.
껍질이 깨지는 고통 없이는 진정한 나 자신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단단해야 합니다.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자기 사랑'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를 돌볼 마음의 '여유'조차 자본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유를 확보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지지할 기반이 있어야만,
당신이라는 세계를 받아들일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이해하려 애쓰지 말자.
사랑은 앎의 대상이 아니라 함(Doing)의 대상입니다.
깨어지고 부딪히며 아파하는 그 모든 과정이 곧 우리의 생애가 아닐까요.
나의 당위가 닳아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균열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에 닿기를 바라며
오늘 저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입니다.
마음껏 사랑하라, 살아라, 아파하라.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을 통해 다시 성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