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담임일기
방과 후, 아이들 몇 명이 교실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표정은 제법 진지했고,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묻어났습니다.
일에 몰두하던 제 귀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보다는,
‘과연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른의 개입 없이, 자기만의 언어로 실타래를 풀어가는 그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거든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 보니,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서운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A라는 친구가 함께 하기로 한 놀이를
다른 친구들과 먼저 해버린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
둘째는, B라는 친구가 C와 D를 대할 때
태도가 조금씩 달라 보여 그 차이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놓고, 그 감정을 함께 바라보며 풀어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기특하고도 예뻤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켜보던 그때, 한 아이가 제게 고개를 돌려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끼리 해결하고 있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당황한 저는 얼버무리듯 웃으며 말했죠.
“나는 원래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관심을 거부한다는 아이의 말은 조금도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왜 나는 그 말에 그렇게 놀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가지 마음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첫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또렷하게 알고 있었고,
상대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 용기와 자각이 참 놀라웠습니다.
둘째, 아이들이 스스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풀어가려는 모습에서
저마다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교사가 도와주고 싶어 손을 내미는 일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언어로 속상해하고, 고민하고, 때로 울기도 하며
자기 방식대로 감정을 정리해나갑니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자신의 틀을 깨고,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 읽은 송길영 작가의 책 『그냥 하지 말라』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이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겪은 그 모든 감정의 흐름이 바로 그 훈장이겠지요.
아이들은 오늘도 살아 있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성취를 하나씩 품어갑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스스로 겪고 풀어낸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어른인 우리는 때때로 너무 서둘러 ‘정답’을 알려주려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건 믿고 기다리기
그리고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단단한 지지 기반’이 되어주는 일 아닐까요.
저도 오늘, 간신히 제 손을 꾹 참았습니다.
지켜본다는 건, 참 어렵고도 귀한 일입니다.
이 글이 올라간 지금쯤이면, 그날의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글을 올리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들의 고민이 충분히 무르익고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훈장을 가슴에 달며 성장해갑니다.
상처 입고, 다독이고, 또다시 웃으면서요.
� 이번 달 부모님께 드리는 책 추천 –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하여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어느새 한 학년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고,
그만큼 우리의 시선도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달에는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동시에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될 두 권의 책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1.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지음
이 책은, 감정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임을 따뜻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감정을 느낀 당신은 옳다."
감정이 옳다고 인정받는 경험은,
이후의 행동을 성찰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은 ‘감정의 옳음’과 ‘행동의 책임’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말해줍니다.
2. 『부서지는 아이들』 – 에비게일 슈라지어 지음
반면, 이 책은 아이들의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과연 그들의 정서적 면역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집니다. 감정을 옳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한 만큼,
때로는 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건강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정서 중심’으로 기운 양육의 그림자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두 책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정서와 양육을 이야기하지만,
그 차이를 비교하며 읽어보신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
'감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방향이 더 맞는지는 각 가정의 상황과 부모님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의 감정을 대할 때
부모인 ‘나’의 감정도 함께 존중받고 있는가 하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바쁜 일상 중이지만, 이 두 권의 책이 아이와 나를 함께 이해하는 데 작은 쉼표가 되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