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우린 그때 쉰 살 고개를 막 넘어가는 중이었다. 셋 다 현직(現職)이었고, 방학하기만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차를 몰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왔다. 여기서부터는 내 차로 바꿔 타고 가기로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후부터 전남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고 계속 경고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순천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별로 늦지 않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허름해서 오히려 정겨운 맛집이었다. 갖가지 곰삭은 젓갈과 나물과 밑반찬들이 수십 가지 놓인 밥상을 받으니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우린 그 자리에서 이번 여행의 주제를 ‘남도 맛기행’으로 정했다.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 찍는 것도 별로 재미없어진 지 오래고, 오뉴월 염천에 장마까지 겹쳤으니 그저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며 쉬엄쉬엄 다니기로 했다.
송광사 입구에 도착해서 두어 집을 돌아다닌 끝에 마음에 드는 방을 구했다. 숙소를 정하고 나니 여섯 시가 넘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건 또 제 평생 처음 보네요. 우선 방에 들어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저녁 드시러 건너오세요.”
주인 여자가 방 열쇠를 건네주고는 빗속을 가로질러 길 건너에 있는 식당으로 가버렸다. 여관과 식당을 겸해서 하는 집이라 밥은 거기서 먹으면 되었다. 성수기를 비킨 평일에다 비까지 억수로 내리는 날이라, 크고 깨끗한 방을 싸게 잘 얻었다.
방에다 가방만 던져놓고, 그녀는 송광사에 꼭 가봐야 한다며 달려 나갔다. 주인 여자도 내일 날이 개면 올라가라고 권했는데, 그녀는 작은 우산 하나만 챙겨 들고 휑하니 사라졌다.
미처 붙잡을 새도 없었다. 어두운 빗길이 염려스러워 우리도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정말 지독한 비였다. 우산을 썼는데도 얼굴까지 다 젖었다. 물이 고인 신발에서 걸을 때마다 철커덕 소리가 나고, 바지는 다리에 휘휘 감겼다. 그나마 춥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계곡물이 무섭게 불어 넘치려 하는데도 무서워할 겨를도 없이 무턱대고 걸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셋이서 우산 세 개를 쓰고도 흠뻑 다 젖으며 올라갔다. 폭우에 홀린 것 같았다.
송광사 경내, 법고와 목어가 놓인 누각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인파를 헤집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웅전으로 갔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법당에 진한 밤색의 큰 방석 수십 개가 바둑판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불상 때문인지 환한 조명 때문인지, 대웅전 안은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했다.
이문 저문 기웃거리는 우리가 먼발치에서도 이방인으로 보였는지 어떤 남자가 황급히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곧 저녁예불이 시작될 것이니 구경하려면 다른 사람들처럼 누각 아래서 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순순히 돌아섰는데, 그녀는 어쩔 요량인지 귀퉁이 작은 문으로 냉큼 들어가 법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를 두고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들어가기도 내키지 않아서 망설이고 서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미친바람이 휘몰아 덮쳐왔다. 모든 걸 송두리째 날려 보낼 것 같은 강풍에 실려 온 세찬 빗물이 얼굴을 확 덮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 곁에 섰던 다른 친구도 휘청거리며 벽에다 몸을 기대고 머리를 수그렸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부둥켜안았다. 바로 그 순간, 대웅전 옆에 떡 버티고 섰던 산이 움직였다. 꼿꼿하게 서 있던 나무들이 하나같이 90도 각도로 휘어지며 돌아누웠다.
솨아, 솨아, 산이 눕는 소리가 났다. 마치 중국 무술영화 와호장룡 속 효과음 같았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때마침 누각 위에서 장삼을 차려입은 스님들이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누웠던 산이 다시 일어섰다. 드러누웠던 산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더 장관이었다. 한껏 머금었던 물을 뱉어내자 안개 같은 물보라가 확 일었다.
다시 법고를 치고 목어를 두들겼다. 그 소리는 이미 현실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대웅전 귀퉁이로 들어갔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니고, 다른 친구도 그녀가 아니었다.
황금색 법의에 밤색 장삼을 걸친 스님들이 법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방석 위에 단정히 좌정하자 종소리가 울리고, 청아한 합창이 시작되었다. 노랫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며 계속되었다.
평소 종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녀의 뒷모습이 엄청 진지하다. 가톨릭 신자인 다른 친구는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고 있다. 구도자 같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저 일상을 탈출하여 맛 기행이나 하자고 떠나온 저들이 마치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처럼 저러는 것은 다 비 때문이다. 그때 산이 눕는 바람에 다들 이상해진 모양이다.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무엇이 그리 갈급했기에 저리도 간절하게 마음을 내어놓는 것인가? 소망을 이루고픈 것인가,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가, 자신을 비우고 싶은 것인가.
그 모든 간절함은 나이가 주는 허허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불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대웅전을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교회에 다니는 나를 배려하느라 그랬는지 그녀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각 밑에서 예불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당을 건너오다 뒤돌아보니 환하게 불을 밝힌 대웅전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산문(山門)을 나선 후에야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난 오래전부터 이 절 스님들의 예불 소리를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어. 역시 승보사찰(僧寶寺刹) 스님답게 정말 잘하시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인기척만 느끼며 부지런히 걸었다.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소리에 묻혀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시끄러움 속에 흐르는 적막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적막감 속에 꽉 채워져 있던 충만함은 또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리의 하산 길엔 칠흑 같은 어둠이 덮였고, 장대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