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일여고 12회 졸업 50주년을 기념하며
오랜 세월이 남긴 흔적들
빛이 바래 더 깊어진 기억들이
오늘은 유난히 더 또렷합니다.
검정 스웨터.
단정한 리본 타이.
핀으로 고정하던 단발머리.
그 시절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인일여고 12회.
변할 수 없는 우리의 이름으로.
이 만남은
희미한 추억을 부르는 자리가 아닌
오십 해의 강을 건너
다시 살아 돌아온
숨결 같은 기억을
맞이하는 자리입니다.
세월은 우리 머리에 흰빛을 얹었어도
추억 속의 그 소녀는
조금도 늙지 않았습니다.
오늘 서로의 눈빛에서 그 사실을 봅니다.
복도 창가.
인천 앞바다.
저녁노을이 바다 위로 번지던 그 순간...
그 빛은
소녀였던 우리를
조용히 감싸주던 축복이었습니다.
둥근 원형교사.
아카시아꽃 흩날리던 통일동산.
합창의 선율.
연극의 숨결.
마스게임의 박동.
교련 시범의 긴장.
눈을 감으면
그때의 공기가 지금도 피부에 닿습니다.
노을은 사라졌어도
그 앞에서 꿈을 나누던 우리는
칠순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서로를 비추는 더 깊은 빛을
품게 되었습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말없이 손을 내밀던 친구
그 손은 향기처럼 곁을 지켰고
어두운 길목마다
그 마음이 등불이 되어
우리 앞을 밝혔습니다.
가난했던 유년.
숨 가쁘게 지나간 청춘.
버티며 견뎌낸 모진 계절들...
이 모든 시간은 지금
따스한 온기가 되어
우리 어깨 위에
고요히 내려앉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온 길
문득 돌아보니
수많은 마음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풍경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지란지교를 품었던
그 시절처럼
오렌지빛 노을이
오늘의 우리를 다시 밝혀주기를.
마음은 세월에 늙지 않는다는 것.
우정은 시간을 견디는 힘이라는 것.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향기는 세월이 지나도 닳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날들은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의 속도에 귀 기울이며
걸어가고자 합니다.
이 자리의 온기가
앞으로도 오래 남아
우리의 남은 생을
더 깊고 고운 빛으로
물들여 주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12월 3일 김희재(춘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