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벨은 이미 울리고 있었다
"흑흑 ~~ 당신 도대체 나에게 왜 이래요!
당신 나름 능력 있고, 일에 진심인 것 알겠는데, 만약 당신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하지 못하면 그 건 당신의 성격 때문이야 ~ 당신 너무너무 힘들어... 흑흑..."
마침내 아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영국 시절,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내와 아들이 숨을 죽였다. 발자국 소리도 조심했다. 내가 회사의 산적한 이슈와 과제로 주말 내내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월요병이 극에 달하는 일요일 밤이 제일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버럭 고함 소리 들을까 봐,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피신했다.
어느 일요일 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동료 주재원의 집에서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그 주재원 집에 현관 열쇠를 두고 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아내가 다시 운전해서 동료 주재원 집으로 열쇠를 찾으러 갔고, 나는 술기운이 올라 현관문 턱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당시 중학생인 아들이 갑자기 어쩔 줄 몰라하더니, 나의 먼발치에서 2~3 미터 거리를 뭔가에 쫓기 듯 무한 왕복하는 게 아닌가.
불안했던 것이다
월요병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일요일 밤, 술 취한 아빠, 숨을 곳 없는 장소, 엄마 없는 시간
나와 단둘이 있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아이에겐 불안하고 불편한 시간이었던 거다.
아이의 이상 행동을 보며, 그때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아내의 경고가 한국으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란 듯이 들어맞았다.
2017년 7월 어느 날, 자의 반, 타의 반, 퇴직 의사를 밝히며 손을 들었다. 아내의 경고대로, 내 한계를 이미 절감하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문제는, 어렴풋이 예감은 했지만 퇴직을 계획하지도, 준비하지도 않았다.
계획하지 않은 사표 제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가족의 근간을 뒤 흔들었다.
영국 생활 5년이 만든 50대 나이
'뭐든 할 수 있다'는 패기가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란 위대한 무기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현타가 들어앉았다. 더 늦지 않게 퇴직 전에 재정적으로 뭔가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불어 닥쳤고, 40대 같으면 머뭇거렸을, 작지 않은 금액의 투자를 '과감과 결단'이란 그럴싸한 자기 최면으로 밀어붙였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아내의 오랜 꿈이었던 보석 가게를 열어 주겠다는 남편의 과시, 강박 역시 작용했으리라?
무리한 투자는 감내하기 힘든 대출이자를 낳았고,
장사를 처음 하는 아내의 1인 보석 가게는 생존이 불투명했으며,
작지 않은 본가 어른들의 생활비 보조는 그분들에겐 생명줄이었다.
무엇보다, 영국에 남아 있는 아이의 학비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켜야 했다.
사표 제출이 가져온 불확실한 미래는 그동안 내가 감내하고 있던 경제적 부담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를 명징하게 돌아보게 했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재정적 울타리가 마치 보슬비에도 눈 녹듯이 스러지는 모래성같이 취약한 것임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우리 부부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소식이 아들의 영국 고등학교로부터 날아들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부모님 귀국 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고...
나의 퇴직으로 서까래 정도에 금이 가는 줄 알았는데 한 줌의 바람에도 집 전체가 곧 무너질 듯이 삐거덕삐거덕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비상벨이 요란히 울리고 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