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1일
병원에서 퇴원했다. 집에 오기 전, 우리는 인슐린 펜 처치법을 몇 번이고 배웠다.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은 차분했고, 그때는 다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오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매 식사 15분 전에는 초속형 인슐린을, 잠자기 전에는 지속형 인슐린을 맞으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의사 처방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 주지만 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날 우리는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가 되었다.
갓난아기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가 떠올랐다. 어디에 눕혀야 할지도 몰라 서성거리던 그날이었다.
그때도 봄이었고, 지금도 봄이다. 4월에 태어난 우리 애가 15년 만에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전쟁은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병원에서 먹던 만큼 밥을 먹고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인슐린 20유닛을 투여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겠다고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혈 알람이 울렸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배운 대로 오렌지 주스를 먹였다. 혈당은 조금 지나 안정되었지만 머릿속은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주사 후에는 샤워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인슐린이 너무 빨리 작용한 걸까.’
질문만 쌓였다.
방 안에는 인슐린 펜과 알코올 솜, 혈당측정기와 각종 매뉴얼이 흩어져 있었다.
병원 의료기기상사에서 사 온 물건들까지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또 밥을 먹어야 했다. 또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아이는 담담했다. 주사도, 채혈도 혼자 했다.
입원 중에도 퇴원 후에도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이 더 아팠다.
우리는 알아야 했다.
인슐린을 맞고 얼마나 지나야 혈당이 떨어지는지, 언제 다시 오르는지.
그래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인슐린을 몇 유닛 넣었는지,
주사 시점의 혈당과 그 이후의 변화를 10분 단위로 적었다. 엑셀 파일은 금세 가득 찼다.
며칠이 지나자 숫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규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슐린 1유닛이 혈당을 얼마나 낮추는지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마다 남편과 계산을 했다. 남편은 실험물리학자였고 나는 공학을 전공했다.
남편은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데이터를 보고 기록하고 계산하는 일은 자신의 일상이라고.
그 말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만든 차트와 엑셀 시트를 들고 분당병원으로 갔다.
대전에서 입원하자마자 서울의 병원을 알아본 끝에 5월에야 잡은 예약이었다.
병원에서는 정확한 계산을 위해 일주일간 입원하며 당뇨 교육을 받고 ‘인탄비’를 산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가 집에서 두려움 속에 계산하던 그것이 이미 이름이 있는 공식이라는 것을.
부모는 뭐든지 한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