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내 이혼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동의하지 않았다. 혼자서 험난한 세상에서 아들 셋을 애 아빠없이 어떻게 키울거냐며 걱정부터 했다. 없는것보다는 있는게 낫다고 나를 호통치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 결정대로 이혼했다.
이혼하고 나서부터는 바로 친정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이것저것 정리도 하면서 일도 새로 다시 시작했는데 매번 사사건건 아빠랑 부딪혔다. 새로운 회사에 취업을 해서 야근도 하고 집에 늦게 오는 날에는 네가 뭐가 된다고 야근이란 걸 하냐고 비아냥댔고 회식이라도 해서 술이라도 먹고 오면 애들 맡겨두고 정신 못 차린다고 또 뭐라고 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아빠가 내 마음도 몰라주는 것 같고, 내가 하는 모든 결정들에 멍청하다면서 질타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아빠에게 아빠는 나에게 상처주는 말만 골라서 했다. 엄마는 그저 나를 하염없이 안쓰러워했다.
그때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첫째딸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이혼한 모습이 초라해보이고 속상하다는 표현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아빠를 원망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아빠와 엄마는 30살이나 된 나를 다시 또 키웠다. 내가 아이들 입에 맛있는거 넣어줄 때 아빠는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사오고, 엄마는 내 입에 넣어주기 바빴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 때 아빠 엄마가 안 계셨다면 이혼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또 이만큼 버텨낼 수 있었을까? 라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지금 내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거나 혹은 사춘기라 대들면 가슴에서 눈물이 철철 나는데 우리 아빠 엄마 마음속에는 나때문에 속상한 마음들이 딱딱하게 굳어있겠지. 내 생각에 나는 지금도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맞벌이로 공장을 운영하셨어서 이렇게까지 부대끼며 살아온 기억이 잘 없는데, 나이들고 이혼하고 와서 살아보니 보이는 게 참 많았다. 연세에 비해 동안이고 젊게 사시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에 짙어진 부모님의 주름, 한평생 재단일을 해서 높게 솟은 아빠의 승모근, 쓰러진 이후로 왼쪽마비가 와서 굽어진 엄마의 왼손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1년을 지지고 볶고 부모님과 살다가 나는 아이들과 한부모시설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