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같이 사는 건 나에게는 너무 너무 편했지만, 그래도 우리가족의 보금자리는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편함에 익숙해지는게 두려웠다. 나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을 선택했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게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아이들한테 든든하고 단단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럴려면 독립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내 수중에는 내가 다달이 버는 월급으로 겨우 생활하고 집을 구할 여력은 없었다.
개인회생중이라 대출도 나오지 않았고,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아가면서 아이셋을 키우기에는 무리였다.
한부모가정 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 등 알아보는 과정에서 당장 모자가정이 지낼 수 있는 한부모거주시설을 알게 됐고, 직접 찾아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게 되며, 우리 네식구는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는 모자원에 입주하게 됐다. 일단 친정집에서 멀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멀지 않았으며 모자원 시설도 깨끗했다.
방2개와 화장실1개, 거실이 있는 모자원에서 내어준 방은 안락했다. 우리 네식구가 살기에 충분했다.
이삿짐을 부를 필요도 없이 우리의 짐은 단촐했다. 옷 몇벌과 신발 몇켤레였을 뿐.
모자원에 들어간다고 엄마가 새 냉장고와 새 세탁기를 사줬다. 입주하고 나서 필요한 건 하나씩 하나씩 살면서 사기로 했다. 모자원은 보증금이 없고 월세도 없다. 내가 사용한 관리비만 잘 납입하면 됐다. 우리는 그렇게 정말 몸만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들어가면서 모자원에 오래 있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1년 후의 계획을 짜놓고 들어가자마자 한부모, 다자녀 등의 임대주택과 주택공사 전세임대에 신청을 해두었다. 그리고 보증금과 월세가 나가지 않으니, 나중에 이사를 가게 될 때 필요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적금도 하나 들었다. 지금의 내 상황에 맞는 곳이 모자원이지만, 분명 더 나은곳으로 나가야 하고 이곳에서 평생 살면서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모자원의 입구에는 넓은 정원이 있어서 푸른 잔디도 있고 계절마다 꽃도 피워나갔다. 근처에는 내가 좋아하는 전통시장도 있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정릉천이 있어서 아이들과 꽉 찬 여름을 보냈다. 혼자서 일하는 엄마라 막내아들은 어린이집을 1등으로 가서, 제일 늦게 왔다. 그래도 회사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허둥지둥 서툰 홀로서기였지만 그렇게 나와 세 아이들의 완연한 자유로운 첫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