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갔다가 감동받고 왔다
골목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아기 업은 여자가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화난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혼잣말이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날은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통령투표날이었고 나는 대학생이었다. 확성기에서는 긴박한 목소리가 투표함을 지켜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나와달라고 외쳤다. 골목은 왕왕거리며 들썩였고 창문이 열렸다. 잠시 후 하나둘 사람들은 집을 나섰다.
엄마랑 언니도 갔다. 그날밤 투표함을 지키던 민주시민들에게 빵도 사다 준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돌아가신 엄마가 계셨다면 고스란히 떠올렸을 지도. 시간은 기억을 부지런히 갉아먹어 이젠 쥐꼬리만큼의 기억만 우리에게 남아있다.
누구랑 갔는지 나는 구로구청 정문 앞에 서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엔 질서 정연한 모습도 보였다. 그곳에서 만난듯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그룹을 만들고 행동지침이 정해지고 실행에 옮겼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분명 겪은 사실인데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어서 저장할 수도 없었고, 일기나 메모조차 남겨놓지도 않았으니 기억이 100% 확실하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그날의 흐릿한 기억 속엔 '신문'이 있다. 밤이었는데 내일 아침 조간신문을 봤다.
헤드라인에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이만큼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고 쓰여있었다. 조간신문이 언제 인쇄되는지 몰랐던 나지만, 적어도 그 시간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적혀있는 긴 숫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며 지키고 있던, 개표되지 않은 투표함이 우리 앞에 있었으니까.
한동안 머물던 나는 집에 와 있었다. 잠들기 전 투표함과 그곳 사람들을 걱정했다. 다음 날 엄청난 수의 군경이 출동하여 농성시위자들을 진압했고 많은 사람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무위키로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점거농성 사건>을 읽었다. 다음날 새벽이라고 기억한 진압 날짜는 하루가 더 지난 투표일 다음다음날이었다. 새벽 6시 군경은 5,000명가량의 백골단을 투입했고 최루탄을 쏘고 헬기를 투입했다.
작가 공지영은 그곳에 있었고 덕분에 용산경찰서에서 1주일 동안 구류를 살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소설 <동트는 새벽>을 썼다.
63년생 63세 6월 3일이 생일인 언니. 투표날은 6월 3일. 우연히 겹친 거지만 신기해했다. 느낌이 좋다며 언니가 말했다.
"사전투표함 지킴이 갈이 갈래?"
집회도 언니 따라 몇 차례 갔지만 언니만큼 순수한 마음은 아니다. 이번에도 가긴 했지만 역시나 매번 같은 마음으로 갔다. 언니 혼자 보다는 함께가 낫지 않을까. 언니는 신청자가 가장 적은 6월 2일 월요일 새벽 2시에서 6시까지로 선택했다. YY
어차피 여행에서 돌아온 후 시차적응이 엉망이 되어 지킴이 활동엔 문제없을 것 같았다. 시차가 뭐냐고 큰소리쳤지만 돌아오자마자 긴장이 풀린 건지 잠이 쏟아지다가 잠이 안 오다가 난리 중이다.
새벽 1시 20분. 이 시간에 나갈 일이 자주 없으니 낯선 풍경이었다. 텅 빈 차도에 공기는 선선했다. 여기가 맞나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나와서 주차하는 걸 도와줬다. 사무실 뒤쪽에 가보니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반겨줬다. 이미 알고 있던 일행이라도 온 듯.
작은 접이식 탁자 중간에 랜턴이 있었고 간식과 음료수도 있었다. 각자 사들고 온 거다. 이런 분위기인 줄 모르고 우린 우리 먹을 것만 싸갔는데. 마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우리를 보더니 여자분들이 재매냐고 물었다. 자신들도 자매라면서. 그 후에 온 또 다른 여자 둘도 자매였다. 자매가 세 팀이라니.
까만 밤하늘 선관위 출입구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거와 투표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옆 쪽은 우리와 '다른' 쪽(당)이었다. 대화는 정반대였고 좀 거슬렸지만 다른 공기의 흐름 속에서도 그냥저냥 있었다.
남자들이 빠져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땐 여자들 뿐이라고 단톡방에 올리니 남자 둘이 그 새벽에 나타났고, 아침이 밝아올 즈음엔 커피와 햄버거를 잔뜩 들고 나타난 분도 있었다. 잠시 목소리가 커져서 다른 쪽이랑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여유분의 햄버거와 커피를 옆 쪽에 건네줬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단체 사진을 다른 쪽 지킴이에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찍어줬다. 시간이 흘러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왔다. 임무를 마치고 헤어질 때 다른 쪽과도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