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어색하겠지. 난 사람을 대부분 좋게 본다. 이번 면접을 보고 나서도 '매우'를 빼고 그냥 '좋았다'라고 했지만, 다들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한숨지었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
부담과 떨림과 기대가 교차하는 날들을 매일 써보려고 했다. 출근 이틀 전에 떠난 임실여행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생각했다. 난 왜 쓰려고 하는 걸까. 7개월을 쉬었는데 다시 적응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텐데. 거기다 글까지? 그건 큰 부담이다. 그래서 가끔 쓰는 걸로 합의 봤다 나 자신과.
2025년 8월 25일 월요일 (첫날)
출근하자마자 화가 났다. 내일이 3년에 한 번 하는 장기요양기관 평가라는 걸 들어서다. 병원에 근무할 때 받아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정신없는 건지 안다. 예상대로 요양원은 총체적으로 초긴장상태였고 난리였다. 나를 쳐다볼 정신들이 없었다. 내일은 쉬라고 했다.
하루동안 날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준 사람은 이 요양원 경력은 있지만 며칠 있으면 그만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했다. 친절하게 알려는 줬지만 그마저도 평가 때문에 바빠서 나는 자주 혼자였고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흘러갔다. 부장은 자주 미안하다고 했지만 난 너무 어이없고 힘들었다. 일이 없는 게 더 힘든 거니까.
버스탈 기운도 없어서 택시가 오기에 탔다. 기사아저씨는 가는 내내 (차로는 7분) 나에게 운전을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전화했을 친구와도, 언니와도 통화를 하지 않았고 종알대던 아침과는 다르게 저녁의 나는 침묵했다.
간호사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날은 받지 않고 다음날 통화했다.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잘 알 터이고, 좋았다 푹 꺼지는 마음을 보이기 부끄러웠지만 한 사람은 알아줬으면 해서 폭풍수다를 떨었다.
화요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자 다짐했고
실천했다.
수요일
짧은 출근길에 공릉천이 보이니 행운인걸.
시간 나면 공릉천변을 걸어야지. 요양원 시설은 크고 좋다. 낡고 좁은 곳만 다녀서인지 이 점은 아주 만족스럽다.
퇴근 직전에 일이 생겨서 하다 보니 또 버스를 놓쳤다. 20분 넘게 기다린 다음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어둑어둑해졌다.
목요일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서둘러 내려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료가 정류장까지 태워줬다. 운전을 해야 하나. 고민고민 또 고민.
어르신 한 분이 한적한 곳에 홀로 계셨다. 어르신은 한 쪽팔을 못 쓰셔서 프로그램을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싫어서 안 가신다고 했다. 주로 이곳에서 하늘과 나무를 보며 지내거나 티브이를 본다고 했다. 막내가 52세 나이로 작년에 떠났다며 울먹였다. 딸은 포항에 큰아들은 대전에 산다며 자주 못 온다고 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 살았다고 해서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어깨를 주물러드렸다. 어르신의 외로움을 덜어드려야겠다.
금요일
또 쉬는 날이다. 새벽까지 책을 읽다 자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책은 펼쳐도 못 보고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마치 수면마취한 듯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탄이와 다정한 장난을 쳤다. 읽고 싶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쩜 이리 감동적인지. 오늘도 많은 스케줄 없이 되는대로 맘 편히 몸 편히 지냈다. 먹고 눕고 책 읽고 탄이랑 놀았다.
처음은 언제나 낯설고 힘들다. 아니면 그건 처음이 아니다. 나는 천천히(?) 스며들어 갈 것이다. 어느 간호사의 말처럼
"어쩌겠어요. 발을 들여놓았는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