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한족 이야기_경험 즉시성의 원칙

오직 현재의 경험만 이야기한다.

by 하랑


피다한족 이야기_경험 즉시성의 원칙

오직 현재의 경험만 이야기한다.


언어학자 에버렛은 아마존 오지에 사는 피다한족에게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파견된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그는 성서를 피다한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언어를 배웠는데, 결국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됩니다.



피다한어에는 과거나 미래를 표현하는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들은 현재에 집중해 자신의 직접 경험만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삶의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지요. 피다한족은 도구도, 예술작품도 만들지 않고, 음식을 보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도구는 즉석에서 만들어 쓰면 그만입니다. 보존한 음식이 없으니 한참을 굶기도 합니다. 신화나 구전 이야기도 없고,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의례도 없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를 포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에버렛은 피다한족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다른 문화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경험과 그에 맞춰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절대적으로 만족한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미래에 갚아야 할 부채 관념도 없었고 따라서 갚아야 할, 혹은 받아야 할 빚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들이 삶을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는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잠재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없다니... 피다한족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지독하게 원시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심리 상태에 이입하려고 노력해 보면 묘하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내일 먹을 식량을 생각하지 않고, 신의 분노와 벌은 안중에도 없으니 그들은 늘 웃으면서 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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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오가와 사야카는 또 다른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피다한족의 물질적 풍요 혹은 빈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살린스는 미개한 사람들은 재물이 없어서 빈곤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갖지 않아서 오히려 빈곤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빈곤이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고 가정할 경우, 애초에 물질적 중압감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어떤 소유욕도 없으며 소유의식이 발달하지 않은 비경제인인 그들 사이에는 빈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래와 과거를 전제로 한 생산주의적 삶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그들의 삶이 당사자들에게 반드시 불행하고 빈곤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P.29 박혜윤의 "도시인의 월드"중에서



위 글은 박혜윤 님의 도시인의 월든 29페이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교회의 전도사였던 에버렛은 피다한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아마존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신앙심이 깊었던 에버렛은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됩니다. 에버렛은 어떤 이유로 그동안 믿고 숙명으로 여겼던 신앙을 버리게 된 것일까요?


피다한족의 무엇이 그를 상반되게 변화시킨 것일까요?



피다한족은 정량화하거나 수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험한 것만을 말합니다.

에버렛이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피다한족은 "그 남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에버렛은 예수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경험–즉시성의 원칙 (immediacy-of-experience)’이란 개념이 피다한족의 문화이고 그 개념이야말로 부족민이 기독교 신앙에 보이는 저항을 잘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사회적 관습의 특징으로써 바뀌지 않는 고유의 특성인 듯합니다.


그들은 직접 겪은 경험만을 인정합니다. 직접 보고 들은 것, 또는 살아 있는 누군가를 보거나 들었다는 것에만 인정합니다.


에버렛은 xibipío라는 단어를 그 예로 듭니다.


“누군가 강의 굽이를 돌아 걸어가 버리면, 피다한족은 그 사람이 ‘가버렸다’고 하지 않고 ‘xibipío’ 라 합니다. '경험에서 나가버렸다’고 하지요.”


“그들은 촛불 빛이 깜박일 때에도 같은 구절을' 사용합니다. 빛이 ‘경험에서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는 겁니다.”



직접 겪은 관찰할 수 있는 경험만이 참이라는 실존적 관념을 당연하게 생각하므로 추상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색채 용어도, 수량을 나타내는 용어도, 숫자도, 신화도 쓰지 않습니다. 과거를 기록하지 않으니 고유의 설화나 전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미리 계획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므로 저장한다거나 미리 준비하는 개념도 없습니다.



에버렛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이 음식 저장고를 짓지 못한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해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년이 만들었던 모형 비행기가 조각을 제작하는 전통을 낳지 못한 것은 그 모형이 실제 비행기의 모습에 잠시 뒤따르는 흥분을 나타낼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피다한 족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전해주는 고유의 설화가 없는 이유 또한, 그런 이야기가 그들 부모와 조부모의 경험 밖, 그 이전의 과거에 파묻힌 수수께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강가에 있던 개가 뱀에게 물리는 것을 보았다.”를 표현할 때

"나는 개를 봤다. 개는 강변에 있었다. 뱀이 개를 물었다."라고 합니다.

피다한족의 언어법입니다.


에버렛에 따르면, 피다한족은 구를 다른 구들에 끼워 넣는 식의 재귀 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그들은 분리된 단위로서의 경험을 말합니다.

에버렛은 “나는 강가에 있던 개가 뱀에게 물리는 것을 보았다”라는 문장을 그들의 언어로 말할 때

“‘나는 개를 봤다. 개는 강변에 있었다. 뱀이 개를 물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피라한족은 오직 그들이 관찰하는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말은 오직 직접적 주장인 “개가 강변에 있었다”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내포문인 “강가에 있었던”은 주장이 아니라 정보를 뒷받침하고 정량화하거나 수식하는, 말하자면 추상적인 언어가 됩니다.


이렇게 피다한족은 오직 경험한 현재의 일만을 말하고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는 부족이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대로 현재인 바로 지금을 기점으로 당면한 일에만 집중합니다. 상상해 보면 너무 쿨한 삶이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꾸밈이 없고 사실을 근거로 생활하므로 갈등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없을 것입니다. 외지인의 전파로 좀 더 편리한 삶을 받아들일 만도 한데... 그들은 어떻게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있겠지만 연구결과를 예측해 보면 지능에 관한 내용이 나올 것 같아 찾아보지 않으렵니다.


'미개한 사람들은 재물이 없어서 빈곤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갖지 않아서 오히려 빈곤하지 않다.'는 살린스의 말처럼 피다한족은 빈곤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피다한족의 삶이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의 삶이 불편하고 어리석게 느껴지기보다는 감정 소모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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