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에게
린이가 집들이를 하는 날이다.
일요일 정오라서인지 교통흐름이 원활하여 막힘없이 린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 환한 화이트톤의 분위기에 심플함이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 밝고 싱그러웠다.
반갑게 맞아주는 딸과 사위.
캠퍼스 커플로 시작하여 10년 이상을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결혼한 참되고 생각 깊은 아이들이다.
분주하게 주방에서 움직이는 사위와 그 옆에서 보조하며 집구경을 시켜주는 딸.
사위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 오늘도 주방은 사위차지이다.
식탁에 푸릇푸릇 맛나 보이는 파전이 넓은 흰색 접시에 담겨있고, 간장에 양파를 작게 썰어 넣은 양념장이 놓여 있다. 둥근 흰색 접시에 보쌈고기가 둥글게 놓여 있고 가운데에 김치가 붉은빛을 띠며 놓여있다. 육회가 높이 쌌여있고 그 옆에 새싹이 푸릇푸릇 놓여있다. 모밀이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얼기설기 섞여있다. 사돈이 수확한 참깨로 정성껏 짜낸 참기름일 테다.
호박볶음. 진미채. 열무김치. 백김치. 계란말이, 상추겉절이, 담백한 조개탕
특히 맛있었던 조개탕은 두 그릇을 비울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었다.
간도 딱 맞고 색깔도 이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재료의 맛을 잘 살린 살림고수의 맛을 사위가 보여주다니...
놀랍다. 이 흐뭇함은 딸 가진 엄마의 기쁨일까?
요리는 여자가 해야 하고 남자는 부엌에 들어서는 안된다는 옛 어른들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싫어했던 내 마음의 울림인지도 모르겠다.
다섯이서 빙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정겨운 대화를 이어간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진심으로 맛있었다.
보쌈은 전날 90도에서 9시간을 삶아놓고 아침에 채반에 올려서 한번 더 삶았다고 한다.
정성이 담겨서일까? 부드럽고 맛이 최고다. 모밀국수는 고소하고 담백해서 손이 자꾸 가는데 사위는 실패작이라고 아쉬워한다. 너무 귀엽다.
식사 후 설거지도 사위가 혼자 한다고 우긴다. 나는 딸에게 도우라고 채근했다. 같이 하라고. 사위는 혼자 하겠다고 딸아이에게 거실에 가서 같이 쉬라고 했다. 슬슬 마음이 불편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았는데 린이가 게임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일명 '꼬치 만들기 게임'이다. TV를 켜서 게임방식을 보여주고 간략하게 설명도 곁들여 주었다. 린이는 봉투 3개를 흔들며 상품이라며 눈을 찡긋한다. 게임에서 이긴 1등부터 봉투를 선택할 수 있다. 상품이 걸린 게임이니 열심히 할 수밖에... 더구나 이 게임 참 재미있다.
게임결과 1등은 손이 빠르고 순간응용력이 좋은 나다. 히히히
봉투 3개를 유심히 살펴보다 하나를 선택하였다. 린이는 봉투를 셋이서 똑같이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봉투 속에 무한한 기쁨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셋이서 똑같이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천원짜리 지폐와 태아사진이 흰 종이에 곱게 쌓여있었다.
찐한 감동과 여운이 돌아 기쁨의 눈물이 났다. 린이도 나를 따라 눈물을 닦는다. 아기 얘기할 때마다 난색을 표했던 린이가 염려되었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말 못 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짠'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딸과 사위가 대견스럽고 기특하여 마음이 흐뭇했다.
"혹시 태몽 꾼 사람 있어?"
"아~ 이게 누나 태몽이었구나!"
"진짜? 어떤 꿈이었어?"
"황금구렁이 한 마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
"우와~'
"재복은 타고났네"
"그러네. 하하"
태명은 열무. 열 달 동안 무럭무럭!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안정을 취하며 열무를 잘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느껴진다.
귀한 아이를 적당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보내주심에 감사의 마음이 가득 찼다.
태명처럼 열무가 건강하게 자라서 내년 6월에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할머니다.
할머니로서의 덕목을 잘 키워 열무를 만나는 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정오
사랑이 모인 집안에는
조용히 삶의 향기가 피어난다
하얀 접시 위의 파전처럼
푸르른 봄 한 접시를 내어놓은 사위의 손길
그 정성의 온도 속에
새 생명의 숨결이 살짝 스며 있었다
게임으로 시작된 작은 봉투 하나
그 안엔 천원 한 장과
세상을 향해 미소 짓는
작은 기적 한 장
순간, 눈물이 따뜻하게 흘렀다
기다림은 이렇게도 아름답구나
사랑은 말보다 먼저 태동하는구나
열무야,
너는 이름처럼 푸르고 단단하게 자라다오
네가 오는 길마다 햇살이 깔리고
바람이 노래하길
엄마의 마음, 아빠의 손끝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의 기도로
너의 세상은 이미 따뜻하단다
하늘이 허락한 선물
감사로 피어난 생명아
기도하며 기다릴 설레는 내년 6월
우리가 너를 품에 안을 때
이 순간의 염려와 바람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