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과의 숨바꼭질
캔버스에 선을 긋는다.
짧고 굵은 선과 길고 가는 선을
굵었다 얋아지고 가늘다 없어진다.
선을 따라 움직이는 색입은 가는 붓
선을 지키려고 조심스럽고 우아하게
굴곡을 만들며 요염하고 거칠게
선을 벗어나 새로운 선을 그을 때는
창조의 짜릿함이 캔버스를 뒤 흔든다
색의 만남은 끝이 없다.
노랑나비색 새색시의 분홍볼색 저녁노을색
자작나무의 바람나부끼는 색
겨울나무에 새싹 뾰족 튀어나오는 색
빛을 넣어 선명한 희망을 덧칠하고
몰입의 행복을 담아 감사함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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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과 파랑과 노랑을 섞으면 어떤 빛깔이 나올까?’
‘사랑과 증오를 섞으면 어떤 언어가 나올까?’
빨강과 파랑을 혼합할 때 양을 얼마만큼 넣느냐에 따라 색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사랑과 미움도 분량에 따라 감정의 색이 달라지고 그 밖의 다른 감정이 첨가될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삶에 어떤 사람이 출연하느냐에 따라 나의 빛깔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를 스스로 느낄 때 자기관리가 된다. 때론 오랜 시간 스스로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내 빛깔을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만의 고유의 색은 변하지 않으므로 원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목요일 밤 나는 색과 숨바꼭질을 한다. 세상에 없는 색을 만들어내고 감성을 퍼붓는다. 감정을 아무리 퍼부어도 원하는 색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어서일까? 미지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려다 멈춘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 목요일 6시 30분에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화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예쁘고 착하고 매력적인데다 내 형편없는 색감을 잘 보듬어 주신다.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어 할 정도로 그림쟁이자 훌륭한 화백이다. 선생님 복이 많아 우쭐해진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을 참 좋아한다. 터치나 색감이 부족하지만 내가 정성을 다해 심장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애정이 간다. 처음 연필로 스케치를 할 때는 놀라웠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 하나로 선을 긋고 명암을 넣어 장미꽃을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고 향기까지 피워내는 듯한 놀라움이 가슴 벅차게 했다. 평소 좋아하는 오드리 헵번을 그릴 때는 오직 오드리 헵번만 생각한다. 생 레벤슨이 지은 ‘아름다운 삶의 비결’이라는 시를 여러 번 읽었다. 오드리 헵번이 마지막으로 두 아들과 함께하며 전했던 말이 이 시에 있다.
‘사랑스런 눈을 가지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네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그림과 글을 연결하며 흥미롭게 그림을 그렸다. 주어진 3시간은 10분처럼 지나갔고 선생님은 늘 시간을 초과하여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하랑님. 조금만 더 하고 가요. 11시? 콜?”
“콜”
그림의 여러 종류 중 유화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림도구를 준비했다. 유화물감이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고 질도 다양해서 물감에 따라 그림의 색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됬다. 선생님이 초보자에게 무난한 신한물감을 추천해 주셨다. 색을 칠해보니 스케치할 때보다 더한 흥미로움이 있었다. 연두빛도 다 같은 연두빛이 아니고 하늘도 다 같은 하늘빛이 아닌 것을 알았다. 똑같이 색을 써도 사람마다 표현되는 색의 느낌이 다르고 미세하게 감정도 보였다. 감정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보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리라. 영화예술에 많이 쓰이는 심리학 용어 중 ‘쿨레쇼프(Kuleshov)효과’가 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그 전후에 어떤 이미지를 보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결국 관객은 자신의 심리를 반영하여 보게 된다. 영화예술, 마케팅 등에도 이런 심리효과를 이용한다.
사람의 정신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지금껏 쓰여진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는데도 재탄생하는 글들, 수많은 그림 작품들 속에서 재탄생하는 우수한 그림들. 창작의 세계는 무한하다. 그리고 정답도 없다. 누가 뭐래도 내가 좋으면 좋은 그림이다. 공 하나를 스케치 해놓고 너무 잘 그렸다고 샐프 칭찬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아이처럼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를 위한 나의 그림은 곧 타인을 향한 그림으로 바뀌게 될까? 아직은 나만 좋으면 되는 그림이라서 부담도 없고 즐겁기만 한 색의 세계이다. 나의 첫 유화작품은 아침이슬을 머금은 주황장미였다. 같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분이 사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팔수가 없었다. 애정을 폭삭 쏟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꽃잎 하나하나에 수십 번의 붓 칠을 하고 나뭇잎 하나하나에 매번 다른 색을 번갈아 칠하고 이슬을 맺히게 할 때는 심호흡을 하며 소중히 소중히 조심하여 색칠했다. 같은 면이지만 같은 색이 아니고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미세함에서 느낌이 달라진다.
그림을 그리면서 눈썹 그리는 솜씨가 월등하게 좋아졌다. 얼굴 화장도 그림의 연장선인가보다. 조금씩 스며드는 미술의 세계는 내게 자세히 관찰하는 힘을 길러준다. 섬세하게 마음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했다. 자세히 보고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그림처럼 내 마음을 대할때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두 번째 유화그림은 가을 은행나무 숲이다. 성남에 있는 공원을 갔다가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었다. 오래 기억나는 풍경이라 그림으로 표현 해 봤다. 조금 가파른 계단이 비툴 거리며 놓여 있고 계단위쪽으로 은행나무가 꽉 차 있다. 가을이 깊어 은행잎은 공원을 노랑물로 가득 물들였다. 그 속에서 나도 노랑이 되었다. 계단 아래쪽에는 붉은색과 갈색의 나뭇잎이 떨어져 있다.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나뭇잎도 똑같은 것이 없다. 색깔도 모양도 재각각이다. 그림에도 다 각각 다르게 표현해줘야 한다.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심심하지 않게, 다채롭게, 재미있게. 나뭇잎이 형제인양 요리조리 살핀다. 계단에 앉아 가을을 만끽하며 한 쌍의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림은 나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게 한다. 멈춘 시간 속에서 오직 나와 캔버스만이 존재한다. 캔버스에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행복의 색을 다채롭게 겹겹이 칠한다. 보는 이들까지도 모두 행복해 지기를 바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볼 테니 내가 가장 행복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