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태를 또렷하게 찾는 시간

거울 앞에 서는 용기

by 달빛모아


요즘 들어 거울을 잘 보지 않게 됐다. 세수를 할 때도, 머리를 빗을 때도, 필요한 만큼만 보고 살짝 고개를 돌린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마주하기가 조심스럽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황달로 온몸이 누렇게 변한 친정아빠가 마지막 진료를 위해 외출하시던 날, 중절모를 쓰고 한참 동안 거울 앞에 서 계셨던 모습. 그때 아빠는 얼마나 깊은 곳에서 용기를 끌어올리셨을까...


익숙지 않은 감정들을 미뤄두며 지내다 보면, 거울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그 사람 안에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거울을 자주 본다는 건,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 같다. 자신의 모습을 또렷하게 알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
거울 앞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면, 지금 사랑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거울을 스치듯 지나친다면? 어쩌면 나의 영혼과 조금 멀어진 건 아닐까.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면, 나처럼 지금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나를 친절하게 살피고, 지금 느끼는 감정의 뿌리를 찾아 천천히 토닥여 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았던 시절에 즐겨 듣던 음악을 듣고,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곳에 나를 데려가 보자. 나의 시간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보자.


지금 나는 흐릿해진 나의 형태를 천천히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원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도,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나 자신이니까. 친정아빠가 그러하셨듯이, 나도 내 안 깊은 곳에서 용기를 조용히 끌어올릴 시간이다.


거울은 그 과정을 함께해 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나를 확인시켜 줄 거다.
오늘 나는 거울 앞에 조금 더 오래 서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스케쳐스만 가득한 신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