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Oct 06. 2022

세상에 물이 사라졌다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간질간질한 목을 축일 수 있는 방법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어 그저 혓바닥만 내밀었다. 체감온도 40도가 유지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2년이란 시간은 저수지와 강 할 것 없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을 증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물을 받기 위해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사막까지 가야했다. 그러나 너무 멀고 더운 탓에 물을 받고 오면 물통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면 그들의 쟁탈전이 시작된다. 강한 자가 물을 빼앗으면 다시 그들에게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하는 피라미드가 그 결과다. 지금ㅇㅇ은 엄지손가락보다 짧게 남은 물병 하나에 의존한 채 수급자들 몰래 물을 받으러 가고 있다. 쪄들어 가는 더위에 발걸음이 쉽게 때지지 않았지만 아무도 몰래 물을 받아와 부당한 거래를 끝낼 생각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ㅇㅇ이 잠에서 깼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축축함에 몸을 일으키니 매트리스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햇빛을 가리려 커튼을 치자 빨개진 몸이 천천히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텅 빈 방 안, 책상 위에는 어제 수급자들에게 받은 물 한 병이 먼지만 쌓인 채 쓸쓸히 놓여 있었다. ㅇㅇ은 잠으로 건조해진 목에 물을 붓고 싶었지만 다음 물을 받는 날이 닷새나 남았기에 다시 물병을 내려놓았다. 서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로 낭비되는 수분조차 아까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ㅇㅇ은 문고리를 건 채 문을 살짝 열었다. 뒷골목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네 동생을 돌보는 여자였다. ㅇㅇ은 그녀의 깡마른 몸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여자는 ㅇㅇ의 얼굴을 보더니 짧은 신음을 뱉고는 물 한 컵과 자신의 삼십 분과 바꿔달라고 애원했다. 저도 보다시피 여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물 한 컵이면 누구든 상관없다며 받아쳤다. ㅇㅇ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여자를 집으로 들였다. 집에 들어오자 그녀는 걸친 카디건을 내렸지만 ㅇㅇ은 아무것도 안 받을 테니 그냥 가져가라며 여자의 병에 물을 퍼주었다.


 물이 줄어들었다. ㅇㅇ은 조금밖에 남지 않은 물을 한참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간을 부순 건 밖에서 들려온 소란이었다. 수급자에게 받은 자들이 다시 자기들끼리 물을 빼앗고 있었다. ㅇㅇ은 커튼을 들췄다가 이내 바로 창문을 닫았다. 아까 그 여자, 저들에게 물을 빼앗겼으면 어쩌지? 걱정되는 마음에 뒷골목으로 나가보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떡갈나무 아래, 얼굴에 멍을 덕지덕지 붙인 여자가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았다. ㅇㅇ은 집에 단 하나뿐인 물병을 들고 다시 그녀에게 와 물을 한 모금 주었다. 그리고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무작정 물을 구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부당한 물 거래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지도에 적힌 대로 마르지 않는 샘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엔 물을 나눠주는 정부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바싹 마른 샘과 모래로 덮인 현판뿐이었다. 바닥이 갈라진 걸 보니 한참 전에 이미 다 말라 사람이 찾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리려 하는데, 바람이 불어 현판에 쓰인 글씨가 드러났다. ‘비를 원하는 자, 원하는 곳을 말해라. 대신, 그 희생을 치를 것.’ ㅇㅇ은 그 현판을 한참을 들여다보다 샘 옆에 가지런히 놓인 해골들을 보고 그 희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몇몇 지역들과 소통을 끊은 게 이것 때문인가. 그때, 머릿속에 깡마른 몸에 멍이 잔뜩 든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ㅇㅇ은 돌 위에 앉아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희생…… 그녀는 뒷골목을 거듭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물병에 남은 물을 모두 들이켠 후 샘 위에 반듯이 누웠다. 그러자 머리 위에 먹구름이 생기더니 마법처럼 그녀가 왔던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ㅇㅇ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사막의 선선한 바람이 목을 더 바싹 말렸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