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Oct 06. 2022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매캐한 연기가 들어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았지만 직접 겪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형은 젖은 수건을 내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형은 자신의 보폭을 넓혀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짧은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여 형의 속도에 맞추었다. 형을 올려보니 형의 건조한 눈은 무언가의 홀린 듯 영혼이 없어보였다. 나는 형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그러나 형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건 나뿐만이 안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 또래의 남자와 여자 모두가 매캐한 연기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넓은 강당에 도착하자 번지르르한 정장을 빼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확성기를 틀어 손을 휘저으며 마을사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으로 구분지어 조를 만들었다. 편성된 조는 푸른 공장 옷을 입은 남자의 인솔을 따라 좀비처럼 힘없이 걸었다. 나는 형과 같은 조에 배속되었다. 형은 그들의 명령에 네, 라는 말만 연거푸 뱉었다. 나는 형이 마치 꼭두각시가 된 것 같아 옷자락을 살짝 끌어 당겼다. 형이 나를 보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네가 왜 나랑 같은 조가 되었을까,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형의 말이 서운하게 느껴져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퀭하게 빈 형의 눈동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네 동생이지? 한 시간이야. 그 안에 완벽하게 인수인계 해. 그 이상 넘어가면 감봉이야.”

 노란 휘장을 찬 남자가 형에게 말했다. 나는 감봉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지만 겁에 질린 듯 떨리는 형의 눈동자를 보고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짧은 기계음이 울리자 공장 안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은 자기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형의 자리는 의자는커녕 앉을 자리 하나 없었다. 우선 내가 하는 걸 잘 봐, 형은 큰 망치를 가져오더니 붉게 물든 쇳덩이를 연신 내려찍었다. 거푸집을 따라 어느 정도 쇳덩이에 모양이 잡혔다. 그리고 이게 끝이라며 내게 망치를 쥐어주었다. 형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 대신 손으로 쇳덩이를 가리켰다. 나는 형이 했던 대로 쇳덩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 팅팅, 거리는 소리에 괜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어 얕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형은 여전히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삼십분이 지나자 노란 휘장을 찬 남자가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됐겠지? 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내 팔을 붙잡고 형의 옆자리로 내던졌다. 어찌나 세게 붙잡았는지 팔이 저렸다. 나는 형이 하던 대로 쇳덩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손에 비해 너무 큰 망치 손잡이에 망치를 몇 번 놓치긴 했지만 다행이 관리자가 보진 못했다. 멈추지 않는 땀에 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때, 배에서 꼬르륵 하고 울렸다. 슬쩍 시계를 보자 1시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 점심은 언제 먹느냐고 물었다. 형은 아, 하고 짧은 신음을 내더니 손가락만 한 엿가락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두 개 모두 내 손에 쥐어주면서 틈틈이 먹으라고 일렀다. 나는 건네받은 엿가락을 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쏙 들어간 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두 시가 되자 점점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쇳덩이가 마치 난로처럼 느껴졌다. 눈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머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고개를 까닥거렸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몰려오던 잠이 확 깰 수밖에 없었다. 형의 손바닥은 내 머리를 잡고 있었지만 손등과 팔 하박이 붉게 물들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형은 신음을 울부짖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형이 다쳤으니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묵묵히 망치질만 할 뿐,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형의 비명소리가 공장 안에 크게 울려 퍼졌지만 팅팅, 거리는 망치질 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10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 화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