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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10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 화자

왜 집을 나갔는지, 10년만에 돌아온 집을 묘사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가구 위에 회색빛으로 가득 쌓인 먼지들이었다. 나는 그 먼지들을 손으로 스윽 문댔다. 내 손가락을 따라 새하얀 길이 그려졌다. 새카매진 손가락을 보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나는 한 때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던 식탁에 앉았다. 히터도 틀지 않은 10월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았지만 내가 있는 이 식탁만큼은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부엌을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결혼을 허락받기위해 부모님과 남편이 함께 저녁식사를 가진 날이었다. 남편은 차임벨을 누르기 전까지도 내게 한국말을 교정 받으려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벨을 누르자마자 현관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열렸다. 그러나 문 너머로 나온 엄마는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엄마의 표정을 보자 남편과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입술만 바르르 떨었다.

 네 명이 모두 식탁에 앉았지만 아빠는 남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신문을 덮고 나서야 아빠는 퉁명스럽게 안 먹고 뭐하냐고 물은 뒤 숟가락을 집었다. 남편은 아빠가 찌개를 한 입 든 것을 보고서야 앞에 놓인 젓가락을 들었다. 엄마는 ‘젓가락질 잘 하네.’ 라고 말하더니 다시 시선을 밥그릇으로 옮겼다. 그때, 남편이 젓가락질을 하다 이내 닭튀김 한 조각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남편은 이내 떨어진 닭튀김을 재빠르게 주워 입을 한 번 맞춘 뒤 그걸 입 안으로 넣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떡 벌어진 부모님의 입을 보니 괜히 내가 더 무안해져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식사가 끝난 후 엄마가 나를 조심스레 안방으로 불렀다. 안방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깊은 한 숨을 뱉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행동이 어떤 말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옆에 놓인 거울을 보니 내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그 표정은 엄마의 기억 속에 남은 나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인사 하나 건네지 않고 남편과 결혼을 위해 브라질로 떠났다.


 브라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런 임신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나는 초음파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출장이 잦아진 그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도 아빠의 출장으로 인해 홀로 나를 낳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엄마의 번호를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액정 위로 떠오른 11개의 숫자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우렁찬 울음소리가 병원 안을 가득 채웠다. 품에 안긴 아들을 보니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그저 머리만 쓰다듬었다. 나는 육아휴직이 끝나자마자 일을 쉬지 않았다. 혼혈로 태어난 아들에게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처음으로 일을 쉬게 해준 건 어머니의 임종 소식이었다. 10년 만에 본 엄마의 얼굴은 도무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삐쩍 말라있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흰 머리가 듬성듬성 났고 배가 볼록 나온 아빠는 내게 왜 이렇게 늦게 왔는지 묻지 않고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집에 가서 속옷을 가져와 달라는 말을 처음으로 건넸다. 10년 만에 들은 아빠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쉬어있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가구 위에 회색빛으로 가득 쌓인 먼지들이었다. 나는 그 먼지들을 손으로 스윽 문댔다. 내 손가락을 따라 새하얀 길이 그려졌다. 새카매진 손가락을 보자 나 없이 지내온 부모님의 삶이 그려졌다. 나는 한 때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던 식탁에 앉았다. 히터도 틀지 않은 10월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았지만 내가 있는 이 식탁만큼은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부엌을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속옷을 챙기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표정이 아른거려 고개를 저었다. 그때, 엄마의 화장대 위에 잔뜩 놓인 육아용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아직 포장지를 뜯지 않은 립스틱이 있었다. 그 위에는 ‘엄마가 된 우리 딸을 위해’라고 삐뚤삐뚤하게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삼키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화장대 앞에 앉아 립스틱 상자를 뜯어 입술에 천천히 발랐다. 붉어진 입술을 보니 결국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다시 병원을 향해 달렸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지금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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