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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면접장에 중요한 걸 두고 온 수험생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옷자락을 흠뻑 적셨다. 한산한 지하철에는 빈자리가 가득했지만 앉지 않았다. 목이 바싹바싹 말라 물을 연신 들이켰다. 그때,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 후 문자를 열었다. 불합격.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가는 학교마저 떨어지면 재수를 해야 한다. 물병을 다시 입에 가져다 댔지만 물방울만 내 혀끝에 떨어졌다.  


 학교에 도착하니 안내원들이 밝게 웃으며 가슴에 수험번호를 붙여 주었다. 심장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려왔다. 그때, 어머니의 문자가 왔다. ‘우리 딸, 긴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너의 모습을 후회 없이 보여주고 오렴.’ 스마트폰 사용에 불편을 겪는 어머니가 한땀한땀 문자를 썼을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덕분에 긴장감이 풀렸는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볼일을 마치고 세면대를 보았을 때, 크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거울에 비춰진 내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어젯밤, 웃는 표정을 충전시켜 놓고선 가져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나는 곧장 시계를 보았다. 집까지 왕복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어머니께 부탁드린다면 가망이 있었다. 그러나 면접장에 들어오며 안내원이 했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수험번호를 받은 뒤,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면접장에 본인 외 외부인은 출입하지 말 것. 만약 어길 시,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즉각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내겐 방법이 없었다. 재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화장실을 가며 비어있는 출입구를 보았다. 나는 곧장 휴대전화를 켰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인기척이 느껴져 곧바로 화면을 껐다. 가슴에 달린 수험번호를 보니 내 뒤 차례 수험생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을 보였다. 기분이 나빠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녀에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도망치듯 나왔지만 뒤따라온 그녀가 내 행동을 눈치 챈 듯 비아냥거렸다.

 “신고 안 할게요. 전화 하세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켰다. 그러자 액정 안에서 어머니의 문자 내용이 떠올랐다. 거기서 나는 ‘정직’이라는 단어를 보자 손을 머뭇거렸다. 내가 하려는 행동이 과연 정직한 걸까? 고작 재수 일 년을 아끼자고 나를 내려놓아야 할까? 이내 난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 그리고 대기석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똑같은 얼굴을 짓고 있었다. 난 그 광경이 기괴하단 생각이 들었다.


 안내원이 내 번호를 불렀다. 문 옆에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두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질문 중 표정에 관한 얘기가 나오질 않았다. 나는 얼떨떨하게 면접장을 나와 미래를 직감했다. 불합격이구나. 면접은 끝났지만 나는 비상계단에 앉아 표정 때문에 나오지 않는 눈물을 쥐어짜냈다. 그런데 계단 밑에서 안내원들의 대화소리가 올라왔다. 나는 교수가 인공 표정을 끼우지 않고 온 수험생을 꼭 뽑고 싶다고 하셨다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숨죽여 더 눈물을 쥐어 짜냈다. 학교를 나가니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 안겼다. 옆에는 내 뒤 번호였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는 표정을 끼우고 목 놓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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