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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콘서트 티켓, 자전거

할머니가 소매치기 당하는 걸 목격, 엉뚱한 사람에게 문자를 보냄


   스마트폰 화면 안, 유독 큰 글자가 눈에 밟혔다. ‘임영웅 콘서트 티켓 자전거랑 교환하실 분 찾습니다.’ 나는 큰 글씨에 홀린 듯 게시물을 들어가 보았다. 글쓴이의 프로필은 온통 임영웅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자, 영광이란 단어와 이모티콘은 그녀의 나이를 연상케 했다.

 마침 며칠 전 엄마에게 드리려 콘서트 티켓을 구했지만 엄마의 지인이 vip석 두 장을 구한 탓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교환하려는 자전거 사진을 눌렀다. 녹슨 몸체와 체인, 바람 빠진 바퀴, 도저히 이 콘서트 티켓과는 등가교환이 되기 어려워 보였다.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자전거에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눈을 찌푸린 채 화면을 확대해보니 2학년 3반 김영웅 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영웅…… . 우리 아들의 이름이었다. 다시 자전거를 자세하게 살펴보니 몇 달 전, 곧 동네를 떠난다는 사람에게 무료 나눔을 받아 아들에게 줬지만 얼마 안 가 도둑맞은 자전거였다. 나는 그때, 눈이 퉁퉁 불도록 울었던 아들이 떠올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채팅으로 ‘지금 거래 가능할까요?’라고 보냈다. ‘네, 가능합니다.’ 문자를 보낸 지 1분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나는 그녀에게 빨래만 다 걸고 한 시간 뒤에 ㅇㅇ공원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 아들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 어디 한 번 낯짝이나 보자. 이를 박박 갈며 ㅇㅇ공원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왼쪽 골목길,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오는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구부정한 허리에 곧 바닥에 떨어질 것처럼 어깨에서 흘러내린 핸드백, 부축을 받아야할 것 같았지만 아들의 자전거 도둑이란 생각에 선뜻 발이 때지지 않았다. 그때,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걸려있던 핸드백을 낚아챘다. 남자의 힘에 못 이겨 핸드백에 있던 물건 몇 개가 떨어졌고 그녀는 소리도 치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그녀 앞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남자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그녀에게 건네 다친 덴 없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건넨 물건을 휙, 낚아채더니 먼지를 탈탈 털어 주머니에 넣었다. 경찰에 신고해드린다고 했지만 그녀는 이것만 있으면 됐다며 나를 말렸다. 고작 임영웅 사진이 저렇게 소중한가? 그녀의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붉은 피에 그녀가 자전거 도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나는 한 손은 그녀를 부축하고 다른 한 손은 자전거를 끌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다며 나를 집으로 들였다. 그녀가 차를 끓이러 주방으로 가자 주위를 살펴보았다. 온통 임영웅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두 개만 제외하곤. 하나는 그녀가 손자로 보이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은 걸 보니 가족사진 같았다. 그리고 다른 사진은 구석에 뒤집어져 있었다. 나는 호기심을 못 참고 뒤집어진 사진을 슬쩍 들춰보았다. 내 아들과 쏙 빼닮은 남자아이가 사진 속에서 방긋 웃고 있었지만 액자 위에 걸린 검은 두 줄에 그를 따라 웃을 수 없어 다시 사진을 뒤집었다. 차를 다 끓인 그녀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잔뜩 걸린 임영웅 사진을 보며 우리 손자가 트로트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임영웅을 김영웅이라 부르는 걸 듣고 짧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손자를 자랑하는 그녀는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듯 광대가 내려가질 않았다. 나는 다시 그녀의 가족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서 난 사진 속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몇 달 전, 자전거를 나눠준 여자임을 깨달았다. 차를 다 마신 후 나는 자전거는 받지 않을 테니 손자가 노래하는 거 잘 보고 오라며 티켓을 그녀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 그 문자를 보고 나는 자전거를 나눔 받은 채팅방으로 들어가 문자를 보냈다. ‘아름다운 추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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