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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무제


 스피커가 요란하게 울렸다. 반짝거리는 조명 위로 연기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고개를 까딱였다. 바텐더가 내 앞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에게 고개를 돌리자 바텐더는 슬쩍 눈웃음 지으며 마시라며 손짓했다. 샷잔을 들고 술을 들이켜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나는 뜨거운 목 넘김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왁스로 머리를 넘긴 남자가 나를 보고 웃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의 잘생긴 외모에 그를 따라 같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남자가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혹시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나가서 같이 피우자고 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시끄러운 클럽 밖을 나왔다.

 여전히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만 연신 냈다. 그러다 남자가 나를 바라보더니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음…… 현 아니, 예나. 오예나.”

 남자는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더니 예쁜 이름이라며 칭찬해주었다. 이어서 남자가 나이는?라고 물었다. 나는 눈동자를 몇 번 굴리다가 스무 살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내 볼을 꼬집더니 딱 그렇게 보였다고 말했다.

 “우리, 그냥 첫차까지 놀다가 갈까? 택시비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두툼하게 오른 그의 애교 살에 미소를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스피커가 울렁거리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깨운 건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눈을 다 뜨지도 못하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로 뜬 이름을 보자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아직은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검은 천장, 처음 보는 이불, 옆에서 곤히 잠든 어제의 이름 모를 그 남자. 나는 입을 틀어막고 떨어진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햇살에 땀이 떨어졌다. 나는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 번밖에 울리지 않았는데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현아야, 나 오늘 휴가 나오는 날이라고 말했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연락을 안 받으면 어떡해.”

 귀에서 휴대전화를 떼 시간을 보았다. 오후 2시, 나는 그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새벽까지 과제를 하느라 늦잠을 잤다는 핑계를 댔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 친구의 깊은 한숨소리가 넘어왔다. 그리고 이미 약속시간은 지났으니 저녁에 보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옆에 놓인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 다 뜬 화장, 한숨이 절로 나왔다. 거울 아래에는 쓰레기 더미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양심을 버리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담배냄새가 잔뜩 밴 옷들을 벗어던졌다. 이대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베개에도 냄새가 밸 까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회의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새어 나오는 비명을 억누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내가 뭘 한 거지? 그때, 휴대전화에서 문자음이 울렸다.

 ‘일어나니까 없길래. 예나 집 들어갔니? 오빠가 걱정돼서 연락해봤어.’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예나가 누구지? 그리고 왜 나한테 오빠라고 그러는 거지? 나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한참을 그렇게 허공만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번호를 누르고 차단 버튼을 눌렀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 친구의 전화가 왔지만 차마 그의 목소리를 들을 면목이 없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벨소리가 멈추자 이어서 문자음이 울렸다. 남자 친구의 문자였다.

 ‘집착한 것 같아서 미안해. 과제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오늘은 푹 쉬고 좀 괜찮아지면 그때 보자. 기다릴게.’

 나는 엄지를 두드리며 짧게 미안하다는 말을 보냈다. 그제서 마음이 좀 놓여 힘을 풀었다. 스르륵 몸이 미끄러지자 천천히 눈이 감겼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이제 또 술을 마시면 개다 개,라고 중얼거리다 잠에 들었다.


 차임벨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시곗바늘은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인터폰 안에는 친구가 서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한껏 들뜬 목소리가 넘어왔다.

 “야, 오늘 헌포 갈 건데 빨리 나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재밌겠다,라고 드는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들어와서 기다려. 씻고 옷 좀 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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