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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킥보드, 훔치다.

(첫문장) 일주일 전,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

(중간)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갔다.

(끝문장) 그래, 그건 경고문이었다.


 일주일 전,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 킥보드를 타고 밤공기를  쐐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매일 밤, 남편이 잠들면 몰래 나와 킥보드를 타곤 했다. 오늘도 나는 남편이 잠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킥보드를 타며 밤공기를 맞이 할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남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밤마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어 입술만 꽉 깨물었다. 밤마다 일주일 전에 훔친 킥보드로 산책을 한다고 말하면 그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나는 억지로 미간을 좁혔다.

 “요즘 갱년기라 산책을 자주 하는 거예요.”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연신 헛기침을 뱉었다. 대충 상황을 넘긴 것 같아 나는 뒤돌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처음이었다. 남편이 잠들지 않았는데 킥보드를 타러 나가는 것은. 남편은 현관 앞에 서서 내가 신발을 갈아 신기까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비상계단 한 편에 숨겨둔 킥보드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남편에게 나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곧장 살금살금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킥보드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피부에 와닿자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나는 혹여나 누군가 마주칠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킥보드를 땅에 내려놓고 왼 발을 발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오른발로는 지면을 힘차게 밀었다. 그 힘에 킥보드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천천히 귓가를 스쳤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런데 문득, 바퀴가 아스팔트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번뜩 눈을 뜨고 바닥을 보았다. 맙소사, 바퀴가 바닥 위에 완전히 떨어져 허공 위를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다리를 이도 저도 못하고 발판에 발바닥을 딱 붙였다. 도와달라고 외치려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손잡이를 당기자 점점 바닥과 바퀴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볼멘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몇 분을 그렇게 달리자 점점 공중을 나는 킥보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운전 방법은 비슷하나 손목을 위로 꺾으면 위로 상승하고 아래로 꺾으면 아래로 하강했다. 고도를 좀 높이니 오히려 밤공기를 실컷 만끽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갔다. 나는 고도를 더 높이고 밑을 바라보았다. 늘 내 위에서 길을 밝혀주던 가로등이 내 발밑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집 근처에 다다르자 여전히 우리 집 창문이 너머로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지금 기분으로는 당장이라도 창문을 두드려 남편을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창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안에서 티브이 소리도,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손목을 아래로 꺾어 지표면 위로 발을 얹었다. 분명 남편은 자기 전까지 티브이를 보거나 음악을 듣곤 하는데 왜 조명이 켜져 있을까?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어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킥보드를 끌고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뭔가 찜찜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올라오는 소름에 나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한 아주머니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그러시죠?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못 들었는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그제서 그녀가 보는 게 내가 아니라 킥보드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주머니의 발라붙은 입술이 천천히 떼 졌다. 그리고 킥보드를 가리키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거… 우리 하늘이 거…”

 그녀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지더니 눈물이 불을 타고 흘렀다. 나는 킥보드를 훔친 사실이 들통난 것 같아 귀가 붉어졌다. 차마 그녀를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제서 나는 킥보드 발판 위에 다 지워져 희미하게 남은 ‘방하늘’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그녀가 내 눈앞에 다다르자 나는 어깨를 올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에게 된통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 느껴진 건 그녀의 주먹이 아닌 따듯한 포옹이었다. 놀라 고개를 들자 그녀는 하늘이의 꿈을 이루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약봉투를 쥐고 있는 남편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약 낯선 여자와 포옹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그랗게 뜬 그의 눈에 의심이 담긴 것 같아 나는 그녀 품에서 나와 손사래를 쳤다. 그녀도 뒤에 선 남편을 인식했는지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녀는 몇 년 전, 딸이 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딸이 사고가 나기 전 늘 품었던 꿈이 이 킥보드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 갑자기 킥보드가 사라지는 탓에 딸의 꿈을 완전히 박살 낸 것 같아 죄책감에 빠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꿈을 이룬 것을 보니 다행이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다시 한번 목례를 하고 돌아가자 남편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내가 아이의 소원을 들어준 걸까요?”

 내가 묻자 남편이 눈동자를 굴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번뜩, 뭔가 떠오른 듯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그 해에 내가 아파트 단지 덕지덕지에 붙인 전단지를 기억하냐고 했다. 그러니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 울음소리로 인한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내가 홧김에 여기저기 아이를 울리지 말라고 붙여둔 적이 있었다. 주차된 모든 차 와이퍼에도 전단지를 올렸었다. 덕분에 뒤에서 놀던 하늘이를 보지 못하고 후진하던 차에 깔린 것이었다. 더 뒤로 갔으면 위험했겠지만 다행히 내가 붙여둔 전단지를 떼러 차에서 내린 주인이 그제서 하늘이를 발견했다. 아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아이를 구해줬다니…… 그래. 그건 경고문이었다. 정말로 아이를 울게 하지 말자는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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