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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독심술사


 커튼 사이를 비집고 햇살이 들어왔다. 수호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수호는 휴대전화 액정 위로 뜬 시간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커피를 마실 틈도 없이 대충 머리를 감고 의자 위에 걸쳐놓은 재킷을 집어 들었다. 현관을 열기 무섭게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거래처 직원의 문자였다. 그녀는 수호에게 30분 뒤에 곧 도착한다는 통보를 했다. 수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식당까지의 거리를 검색했다. 30분…… 아슬아슬한 시간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렸다.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양반이 아침부터 어딜 나가는 거람?’ 그녀가 뱉은 생각에 수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휴대전화 메모장을 켰다. 그리고 메모장 제목에다 큰 글씨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라고 적었다.


지하철에 오르자 수호는 귀에 꽂은 이어폰 볼륨을 낮추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일렁이는 문장들은 참을 수 없이 괴로웠지만 절대로 놓쳐선 안됐다. ‘오늘 정리해고 명단이 나오는 날인데 내 이름이 있으면 어쩌지? 아직 자식 대학도 못 보냈는데.’ 수호의 머릿속에 그 말이 스치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서류가방을 든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리를 떨고 있었다. 수호는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 소리가 들린 곳은 임산부석이었다. 이미 만삭인 배로 앉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여자는 머리를 기대어 생각에 잠긴 듯했다. ‘육아 퇴직을 했으니 다시 그 회사로 들어가는 건 힘들겠지? 아아, 남편의 월급으로는 택도 없을 건데.’ 수호는 잡은 손잡이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메모장을 끈 뒤 음악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수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연신 숙였다. 그녀는 꼰 다리를 풀지도 않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10분 정도는 괜찮다며 반대쪽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 했다. 그녀는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수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멀리서 보아도 뚜렷하게 보이는 출판사 이름에 수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정말 내 소설이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건가? 하며 입꼬리를 내리질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수호의 앞에 그가 제출한 소설 원본을 내던졌다. 수호가 얼이 빠진 채 고개를 까딱이자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 글을 낸다는 게?”

 수호의 입술이 빠짝 바짝 말랐다. 소설의 영감을 어디서 받은 건지 어떻게 알았지?라는 의문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여자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 말에 수호는 손을 발발 떨었다. 그녀는 수호를 노려보더니 책상 위에 놓인 원고지를 펼쳤다. 그리고 종잇장이 찢어질 듯 세게 페이지를 넘기더니 형광펜으로 붉게 칠해진 부분을 가리켰다. 여자는 수호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렇게 세세하게 감정을 묘사할 수 있냐고. 수호가 눈동자를 굴리며 볼멘소리를 냈다. 오랜 고민 끝에 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 글의 출판은 어떻게 되는지. 그러자 여자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독심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님 하나라는 착각은 버리세요.”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수호의 눈에서 멀어졌다. 수호는 그녀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텅 빈 자리, 수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메모장에 들어가니 전부 남들의 생각을 옮겨적은 것들 뿐이었다. 수호는 메뉴 표시를 누르더니 전부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새로운 창을 열었다. 제목 칸에 마우스가 깜빡거렸다. 수호는 빤히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 엄지손가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설가, 독심술사의 죄책감.’ 꽉 채워진 제목 칸을 보자 수호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남이 아닌 내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수호는 집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레 술이 있는 코너로 발길이 향했지만 이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피로회복제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술을 사지 않으시네요?”

 알바생의 말에 그는 잇몸을 드러냈다.

 “이제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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