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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희노애락 중 감정 하나가 사라진 세상

사랑병

 뾰족한 주사바늘이 내 어깨에 꽂혔다. 주사기 안에 든 차가운 액체가 내 팔에 천천히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간호사는 내게 알코올로 적신 솜을 주더니 문지르지 말고 꾹 누르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을 위해 카운터로 갔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백신은 나라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무료라고 말했다. 나는 가볍게 그녀를 향해 목례를 한 뒤 병원을 나갔다. 백신이라고 말 하지만 사실 내가 맞은 주사는 사랑이란 감정을 없애는 주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병원 앞에 ‘성인이 되기 전 꼭 맞으세요.’라고 적힌 포스터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문지르던 솜을 쓰레기통을 향해 휙 던졌다.


 집에 도착하자 목이 축 늘어진 민소매를 입은 아버지가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TV로 고개를 돌렸다. 사랑병 감염자가 또 나온 것이다. 아버지는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면 뭐하나, 걸릴 애들은 다 걸리는데’라며 중얼거리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숨을 죽이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랍 안에 숨겨둔 사랑병 자가진단키트를 꺼냈다. 키트는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방문을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소리에 키트를 꽉 쥐었다. 그때,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나 양성으로 나왔어ㅜㅜ’ 라는 글씨가 액정 위로 떠올랐다. 나는 깊게 한 숨을 내뱉은 뒤,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은 착각을 하고 있다. 나는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성인이 되어야지만 사랑을 느낀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주사를 어릴 때 맞게 하지 않고 성인이 되기 전인 10대의 끝 무렵에 주사를 놓지. 나는 휴대전화로 사랑병 증상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피부가 투명해 몸 안에 뼈와 내장이 드러난 사람의 사진이 보였다. 덜컥 겁이 나 가슴이 내려앉은 기분이 들어 급히 화면을 껐다.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 사실을 부모님께서 알게 된다면 얼마나 나를 부끄러워하실까. 나는 곧바로 손에 쥐었던 키트를 버렸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나와 부모님은 저녁식사를 하며 뉴스를 틀어놓았다. 그때, 뉴스에서 세 명 모두 밥이 얹어진 숟가락을 멈추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낮에 아버지가 혀를 찼던 남자가 사랑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뉴스에 퍼지고 받아야 하는 법적 처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미안했는지 헛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남자의 사건 이후로 주사를 맞기 전 사랑병에 걸린 청소년들이 분노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들은 광화문 광장 앞에서 시위를 열었다. 피켓에는 우리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문구들이 적혀 이곳저곳에 떠돌았다. 나는 병에 감염된 또래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쫙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리는 백신 연령 제한을 낮추라는 요구 대신 사랑을 금지하는 법을 없애자는 요구를 크게 외쳤다. 나도 크게 그들의 말을 따라 외치는데 한 남자의 얼굴이 보이자 콩닥거리는 심장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달려가 그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진심을 다해 입술을 맞추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

 “우리가 이 감정을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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