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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Oct 06. 2022

이런 종말이 찾아오다니

서울예대

 붉은색 숫자가 전광판 위로 떠올랐다. 나는 이내 손에 쥔 내 대기번호를 확인했다. 내 진료 차례였다. 번쩍 손을 들자 간호사가 나를 방 안으로 인솔했다. 문을 벌컥 열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가볍게 목례했다. 나도 그를 따라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옆에 놓인 패드를 내게 건네더니 작성하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패드를 들여다보자 증상과 병적 기록을 작성하는 칸이 보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설명할까……두통이 있고 오한이 있어요. 라고 적어서 보여주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방 코너에 오자 약사가 감기약이라고 쓰인 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감기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지만 설명 할 방법이 없어 침만 꿀떡 삼켰다. 그때,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곳에는 한 남자가 목에 피켓을 걸고 꽹과리를 미친 듯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에 걸린 피켓을 보았다. ‘병원은 끝없는 오진에 죽은 내 딸을 살려내라.’ 또 오진이 있었나, 나는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피켓만 흔드는 남자를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부터 퇴화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키오스크의 발달로 사람들은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인간의 목소리는 역사에만 남겨지고 지금은 모든 대화가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로만 이루어졌다. 덕분에 소통이 필수적인 병원에선 이렇게 빈번하게 사고가 발생했다. 나는 홀로 꽹과리를 치는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곱씹어 생각했다. 목소리가 있던 세상은 어땠을까? 좁은 골목에 들어설 때였다. 한 낡은 가게에서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앞에 멈춰 서자 턴테이블 위로 LP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악기로만 내는 소리도 아닌, 기계음이 내는 소리도 아닌 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음악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곧장 노래를 녹음했다. 그리고 저장을 위해 노래의 제목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노래 제목 옆에 사람 이름이 적혀있었다. 문득, 나는 이 노래가 몇 백 년 전, 사람이 부른 노래라는 걸 깨달았다. 절로 몸이 나른해졌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왜 쓰려고 하지 않은 거지? 나는 귓가에 맴도는 단어들을 뱉으려고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아아, 하고 쉰 소리만 날 뿐, 노래처럼 고운 선율이 나오지 않았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측은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렇게라도 해야 퇴화된 목소리를 되찾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음다운 내 목오리 들어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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