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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11. 2023

뜨겁게 피어올라 사라져도

2023년 2월 11일 연탄 봉사를 갔다가 떠오른 콩트



  달력에는 작은 글씨로 ‘입춘’이라 적혀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몸을 한껏 달아오르게 하였지만 아침의 쌀쌀한 바람은 절로 옷 앞섶을 여미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건 붉게 변색된 연탄을 갈아 끼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춘이 되면 아침마다 다 타오른 연탄을 들고 고민을 해야만 했다. 조금만 지나면 날씨가 따듯해지지 않을까, 이 연탄을 낭비하게 되는 게 아닐까. 창고에 쌓인 연탄 하나하나가 이번 겨울에 청년들이 얼굴과 손을 새카맣게 태우면서 옮겨준 것들이었다. 분명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얼굴을 태웠을 때는 날카로운 바람이 귀를 붉게 달아오르게 했는데도 입춘이 온 오늘보다 더 따듯했다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따스함을 며칠이라도 더 좋으니 간직하고 싶었다.


  마을 입구 앞에 큰 회사가 하나 들어왔다. 몇 년 동안은 공사를 한다는 핑계로 낮잠을 방해했는데 공사가 끝나니 잇따라 들어오는 상권들이 낮잠을 방해했다. 이제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낮은 지붕 너머로 드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건물 밑에 있는 상가들에서 공고가 내려왔었다. 주로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것이나 업체에서 회사와 주변 상권들 청소를 하는 공고였는데 그 밑에는 연령 제한이란 글씨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들의 조건에 충족할 수 없었다. 간신히 제한을 기피한 이들은 일 년 만에 집을 팔지도 않고 주변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눈에 띌 정도로 사람이 줄어든 이 마을은 포클레인이 밀거나, 버티다 못해 죽게 되거나 둘 중 하나만을 간절히 기다릴 뿐이었다.


  “유 선생, 고양이 밥은 줬어? ”

  꼭대기에 사는 최 양반이 뒷짐을 지고 내게 다가왔다. 그는 늘 붉은 명찰이 달린 군복을 입고 해병대 전투모를 머리에 쓴 채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이 양반아, 그 고양이 죽은 지가 석 달이 됐어. 걔 죽었다고 울면서 정성스레 묻어줘 놓고선 왜 기억을 못 하는 거야. ”

  “무슨 꿈을 꿔도 그런 개꿈을 꿔? 당장 어제도 양동이 안에 넣은 밥 잘만 먹더구먼.”

  그의 말에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뒷짐을 진 손 지문에는 여전히 새빨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추위를 버티지 못해 죽어버린 고양이를 묻어주겠다고 꽝꽝 얼은 땅을 파느라 손이 저렇게 된 것도 모른 채.

  전까지만 해도 이 정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저 구름이 하릴없이 흐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틈틈이 마실을 나오는 이들과 말을 섞는 것도 나름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해 주었다. 그런데 건물이 들어오고부터는 내 시간이 멈추어버렸다. 건물이 구름을 가린 탓일까, 마을을 나온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져서일까. 결론이 나올 수 없는 질문들을 연신 읊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주변이 시끌벅적해지면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당연히 먹을 거라곤 지원받은 즉석식품들과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김치가 전부였다. 겨울만 지나면 간이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기라도 할 수 있지만 차가운 바람은 여전히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가다 마을을 떠난 이들이 컵라면이나 간이 반찬등을 가져와 나누어주곤 했으나 다시 그들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 입맛을 다시거나 물을 마시는 걸로 점심 배를 채웠다. 참고 참다 보면 언젠가 저녁 시간이 다가올 텐데 하루의 공복을 견디다 저녁으로 한꺼번에 먹는 게 오히려 절약이 됐다. 동시에 배가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지도 않으니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 생각했다.

  한 때는 꿈도, 야망도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저런 집에서 떳떳하게 사는 상상도 했었다. 여전히 고양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최 양반에게도 애견 미용사라는 꿈이 있었고, 한 달에 한 번씩 컵라면을 가져다주는 정 할머니에게도 요리사란 꿈이 있었다. 모두 똑같이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늘 받기만 하는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건물 안에는 지금의 나보다 젊은 이들이 상상하던 꿈을 이루고 있겠지.


  “유 선생…… 고양이 밥은 줬어? “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에 그냥 거짓말을 내뱉기로 했다.

  “…… 그래. 점심 먹고 남은 거 줬네. ”

  “참 복 받은 녀석이야. 우리도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데 매일 지 밥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야. ”

  다시 찾아온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붉은 명찰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구름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가 얼마나 고양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한껏 초라해진 눈이 그의 발자취를 드러내주었다. 복 받은 녀석…… 나는 머릿속으로 그의 말을 여러 번 되짚었다.

  “그런데 계속 우리가 챙겨주기만 하면 우리 죽고 걔는 어떻게 살아가나? 사냥을 하는 법도 모를 텐데. ”

  “사냥하는 법은 알겠지. 걔도 나이가 있는데. 다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매일마다 밥을 주는 거 아니겠어? ”

  담벼락 너머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을 마친 그들은 다시 내가 늘 봤던 구름과 가까운 곳에서 꾼 꿈을 이룬다. 나는 구름을 가린 건물이 한눈에 보이는 정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러면 조금은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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