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Feb 09. 2023

이름 없는 자의 운명



  날카롭게 솟아오른 주삿바늘 위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바늘은 내 몸을 향하더니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몸이 떨려 발버둥 치려고 했지만 반대편 손으로 내 몸을 움켜쥐었다. 이빨로 그 손을 힘껏 물었지만 그가 낀 라텍스 장갑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어느덧 바늘이 내 몸에 꽂혔다. 피스톤의 압력으로 내 몸에 액체를 서서히 주입한다. 점점 몸에는 힘이 풀려갔고 눈앞은 희미하게 흐려졌다. 새하얗던 털에 핏방울이 맺혔다. 주사를 놓은 남자는 피가 맺힌 부위를 어루만지곤 알코올 솜을 가져다 댔다. 연신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희미한 시야에는 남자가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감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눈앞이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요란하게 울리는 우당탕, 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전등이 꺼진 탓에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소리의 근원지는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신입 연구원이 사고를 친 걸까.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캐비닛을 두드렸다. 동시에 캐비닛 틈으로 새어 들어온 퀴퀴한 냄새가 내 콧잔등을 찔렀다.

  “어이, 거기 누구 있어? 있으면 두 번을 두드려봐. “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아니, 애초에 이 실험실 안에 살아남은 실험체라곤 나 말곤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캐비닛을 두드린 거지. 호기심에 그의 말대로 벽을 두 번 두드렸다.

  “있구나. 혹시 내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데 먹을 것 좀 있니? ”

  ”여기엔 먹을 것 따윈 없어. 제시간이 되면 연구원들이 알아서 밥을 갖다 줘. “

  “그래?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

  “아직 밥때가 되려면 멀었어. 적어도 해가 떠야 음식이 와.”

  건너편에서 그의 한숨소리가 캐비닛 너머로 들려왔다. 점점 새카맣던 시야가 형체가 보일 정도로 돌아왔다. 새하얀 털 덕분에 아까 묻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반면에 건너편에 보이는 그는 여전히 형체만 보일 뿐, 색이나 얼굴은 미간을 좁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너는 굉장히 새하얀 쥐네. 통성명이나 하자. 이름이 뭐야? ”

  “…… 이름? 그게 뭐야? ”

  이번엔 그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러곤 이름, 이름 하고 연신 단어를 중얼거렸다.

  “음… 이름이란 건 나 존재를 나타내는 거야. 나는 이서. 이로운 쥐. 그게 내 존재야. “

  나의 존재. 그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예전에 연구원들이 내게 검지를 치켜세우며 RS- 023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럼 그게 내 이름인 걸까?

  “그런 건 누가 만들어 주는 건데? ”

  “대부분 부모님이 지어 주시지. 네 부모님은 너를 낳고 이름 같은 거 안 지어주셨어? ”

  부모님이라… 그 단어의 뜻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단어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얼굴은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다고 늘 내 몸에 주삿바늘을 꽂는 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냥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 걸로 얼버부리기로 했다.

  “그럼 넌 여기서만 평생을 산 거야? ”

  “응. 여기서 태어나고 쭉 이 캐비닛 안에 살았어. “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여전히 그 몸에서는 퀴퀴한 하수구 냄새가 풍겨 올라왔다. 코를 막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지만 고개를 숙이는 걸로 악취를 참아냈다. 그런데 냄새의 근원지가 연신 뒤바뀌는 것 같았다. 냄새를 따라 코를 킁킁거렸다. 문득, 그 냄새가 캐비닛 위에서 더 짙게 흘러나왔다. 이윽고 연구원들이 올 때마다 들렸던 캐비닛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는 잘 열리는데 안에서는 쉽게 못 열게 해 놨네. 어때? 나랑 같이 밖에 나가볼래? ”

  “아니야.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하는 존재야. 약물을 주입하고 살아남으면 살았다고 기록하고, 죽으면 죽었다고 기록하고. 그게 내게 주어진 운명인걸. ”

  “그래? 그렇게 하면 너에게 생기는 이점이 뭔데? ”

  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저 내 주변 쥐들이 그래왔고 내가 태어나고부터 쭉 몸에 약물을 주입했으니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거? ”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어치피 인간들은 네 이름은커녕 존재자체도 기억하지 않아.”

  “……”

  “안 되겠다. 앉아봐.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게.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잖아.”

    

  이서는 캐비닛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후각이 적응을 했는지 이제 캐비닛 너머로 그의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푸른 들판은 당연히 보지 못했겠지? 사실 여기 바로 앞에 있는데 말이야. 아무튼,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실컷 뛰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 워낙 넓다 보니 눈을 감고 뛰어도 넘어지거나 부딪힐 걱정 하나 안 해도 돼. 비가 오면 털이 흠뻑 젖어 몸이 무거워지지만 하수도로 들어가 빗소리를 들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 특히 비릿한 비냄새는 주변 냄새들을 더 확산시켜서 맛있는 음식을 찾을 수도 있게 해 줘. 그런데 가장 즐거운 건, 친구랑 같이 달리는 거야. 누가 커다란 느티나무까지 먼저 도착하는지 시합도 하고, 누가 먼저 음식을 찾아내는지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숨이 헐떡이도록 같이 달리거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내가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 ”

  캐비닛 문이 열리고 연구원이 주사기를 집으려 등을 돌린 찰나, 쏜살같이 도망을 친 적이 있었다. 신입 연구원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잡겠다고 온 연구실을 돌아다녔고 나는 그의 손에 잡히지 않으려 숨이 헐떡이도록 달렸다. 저 안에 갇혀있을 땐, 하루하루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래가 목 끝까지 차오르자 내가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

  “글쎄…… 사람들은 나를 번호로만 불렀어서, 나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아니, 그건 인간들이 너를 부를 때 하는 말이고. 나도 부모님이나 너한테나 이서지. 인간들에겐 그저 더러운 쥐세끼야. 그럼 너의 부모님은 아니지만 같은 쥐인 내가 네 이름을 지어줄게. ”

  다시 그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너는 털이 하야니까 백서 어때? ”

  “좋은 이름이네. “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 능선 위로 천천히 해가 비집어 올라오고 있었다. 복도에선 당직 연구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는 것 같네. 어떻게 할 거야? 같이 갈래? 출구는 내가 들어왔던 저 배관으로 나가면 돼. “

  해가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새카만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다섯 시 삼십 분. 실험 번호 RS-023. 약물 투여 여덟 시간 경과. 주입 즉시는 심장에 변화 없음. 현재 상태…… 어? 어디 갔어? ”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활짝 열린 캐비닛 문과 그 안을 두리번거렸다. 나와 이서는 배관 위에서 그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서가 말했던 들판이 펼쳐졌다. 바쁘게 네 다리를 굴리면서도 한껏 미소가 지어졌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와닿았다. 더 먼 곳까지 가고 싶다. 그런데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오랜만에 달리니까 아픈 거겠지. 눈을 질끈 감고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그가 말 한대로 눈을 감고 뛰어도 내 머리를 박는 장애물 따위는 없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가빠오는 숨소리보다 훨씬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질끈 감은 눈을 떴지만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처음 주사를 맞았을 때처럼 몸에 힘이 점점 풀려갔다. 이서는 나보다 조금 더 앞질러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러나 희미한 그의 뒷모습은 다음으로는 캄캄한 암흑이 내 시야를 가렸다.

  “백서야, 왜 그래? 정신 차려.”

  이번엔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수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숨을 쉬어지지 않으니 신음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럼에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드러누으며 보이는 하늘, 처음으로 보는 하늘,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이봐. 백서야. 너 괜찮은 거 맞아? 근처에 내가 먹을 걸 숨겨놨어. 빨리 가져다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백서야. “

  이서의 마지막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마 이 하늘에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했더라… 맞아, 백서. 이대로 죽어도 괜찮다.

  나는 RS-023으로 죽는 게 아니고 백서로 죽는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이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