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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06. 2023

이긴다는 것

승자의 손에 쥐어지는 건



  “선생님 수업 방식이 요즘 애들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등을 기대었다. 이미 손에서 펜을 놓은 걸 보아 더 이상 문제를 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한숨을 한 번 내쉬는 걸로 참아보았다.

  “그래도 우리 여기까지만 풀자. 그게 적어도 수업을 준비한 선생님에 대한 예의지? “

  비록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수학 교육을 전공했고 반에서 수학만큼은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학창 시절, 수학 시험이 끝나면 애들은 내 자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모였다.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내가 풀이과정을 설명하면 내 눈앞엔 둥근 엄지가 치켜세워졌다. 그런 내가 고작 고등학교 1학년 학생한테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다니. 나도 모르게 수치심이 들어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여전히 두 손을 뒤통수 뒤로 깍지를 꼈다. 내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가방을 무릎 위로 얹더니 그 안에서 인문학 책 한 권을 꺼냈다. 중간 정도에 끼워진 책갈피를 빼내어 페이지를 펼치는데 한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가 독서를 하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 선생님, 잠깐만 저 좀 볼 수 있을까요? “

  때마침 살짝 열린 문 틈으로 어머님이 고개를 내빼었다. 나는 열심히 읽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님의 손짓을 따라 나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는 그, 저,라는 말만 연신 내뱉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니, 우리 애가 워낙 수업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니 원…… 너무 죄송해서 어떡해요.”

  “저는 괜찮습니다. 다빈이한테 잘 맞는 선생님한테 수업을 들어야죠.”

  “이번 달 과외비는 오늘 중으로 보내드릴게요.”

  나는 두고 온 짐을 챙기러 다시 다빈이의 방 문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두꺼운 인문학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 이제 저런 모습을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아. 가방을 올려 매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어머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엘리베터를 기다리는 내내 고개가 돌아갔다. 무언가를 그 집에 두고 온 것처럼.


  곧장 이십만 원이 입금되었다. 이번 달 치 수업을 모두 채우지 못했으니 이 정도를 받는 것도 감사해야 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한숨이 끊임없이 나왔다. 잘난 나의 수학 머리로 계산기를 떠올렸다. 월세, 식비, 휴대전화 요금, 적금 등. 채워나가야 할 돈은 고작 이십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각을 해보니 최근에 장을 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는 엄마가 보내준 김치와 달걀 두 개, 먹다 남긴 김치찌개가 전부일 것이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차마 집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창문이 활짝 열린 식당에서 순두부찌개 냄새가 내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고소한 이 냄새는 이윽고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뜨거운 온도에도 아량곳 않고 바지락 살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던 엄마의 자글자글한 손. 결국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엄마에게 통화를 걸자 수신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곧장 엄마의 한껏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딸, 무슨 일이야? 밥은 먹었고? “

  “아직 안 먹었어. 그냥, 엄마 저녁에 뭐 없으면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해서.”

  “에구, 그럼 엄마야 좋지. 그런데 지금 수업할 시간 아니니? ”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지금 바로 내려갈게.”

  “그럼 서둘러 전화 끊자. 빨리 밥 안쳐놔야겠네.”

  통화 종료음이 울리고 걷던 방향을 터미널 방향으로 돌렸다. 터미널까지 가려면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이 모든 걸 감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흔들리는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중간중간 정류장에 버스가 멈출 때마다 큼지막한 광고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대부분의 광고는 가수도, 배우도, 코미디언도 아닌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고 있었다. 그 밑에는 ‘믿고 맡기는 수능 수학.’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그들이 대충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 흔히 학생들 사이에서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강사들. 그들은 직접 만나서 일 대 일 코칭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닌데도 매년 학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문득, 다빈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수업이 어떤데……”

  연신 피어오르는 질문은 수학처럼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동안의 수업을 떠올렸다. 그런데도 도무지 문제점을 모르겠다.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괜스레 인상을 찌푸리게 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를 냈다.

  “선생님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럼 요즘 애들은 어떻게 수업을 받니? “

  “음…… 일단 선생님이랑은 확실히 달라요. 선생님은 너무 수능을 위주로 가르쳐요. 당장 제가 급한 건 개학을 하면 보게 될 중간고사인데요. 그리고 제 친구들은 수업 중 간간이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요. 그런 이야기가 모두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나.”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

  말을 마치자마자 붉은 통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다빈의 말을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

  창밖엔 여전히 인터넷 강사들의 광고판이 띄워져 있었다. 나는 광고판을 보고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그들에게 수능이 중요한 게 아니면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 사랑을 받아 서울 한복판에 자기 얼굴을 내세울 수 있을까. 방긋 웃은 그의 얼굴 아래로 치켜세운 엄지로 시선을 내렸다. 친구들이 내게 보인 엄지와 다를 것 없는 엄지인데 괜스레 불편함이 느껴져 몸을 뒤척였다.


  터미널에서 내리고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내를 지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점점 구불구불거리고 자갈돌들이 잔뜩 낀 길에 들어서자 버스는 쉬지 않고 흔들렸다.

  마지막 환승 정거장에 도착했다. 기둥이 다 산화돼 온통 갈색으로 물들고 살짝 기울었지만 그곳엔 노선도도, 광고판도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예정 도착 시간을 찾아보니 앞으로 20분은 더 기다려야만 했다. 서울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조용하게 의자에 앉아 광활하게 펼쳐진 밭들을 보자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높은 마천루들도, 가스를 내뿜는 자동차들도 보이지 않았기에 밭 너머로 보이는 산 능선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위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였다.

  길게 치마를 늘어뜨리고 친구들과 숨을 헐떡이며 오르던 언덕. 우리는 뜨거운 햇살이 살갗을 붉게 태워도 누가 먼저 올라가나 시합을 했었다. 사실 승자에게 쥐어지는 보상 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철없는 10대의 승부욕은 내 다리를 재촉하기에 충분했다. 이 승부욕은 달리기에서 그치진 않았다. 순대국밥집 딸 유진은 한 번 수학으로 나를 뛰어넘어보겠다고 하루에 두 시간 남짓만 자면서 공부를 했었다. 나도 그녀의 노력에 대응하기 위해 더욱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유진의 손을 들어주었다. 게시판에 성적 순위가 올라온 날, 전교생들이 유진을 중심으로 둘러 모여 박수를 치고 있었다. 뒤늦게 게시판을 본 나는 내가 처음으로 내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유진은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잔뜩 굽은 허리로 실없이 웃기만 했다. 그 뒤에 치러진 시험은 다시 내가 모두 1등을 차지했다. 한 번은 그녀가 다른 친구와 대화하는 걸 엿들은 적이 있었다.

  “유진아, 너 승연이 이긴다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그때처럼 안 하는 거야? ”

  “내 손에 쥐어지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 나는 그냥…… 나대로 하는 게 가장 맞는 것 같아.”

  생각을 해보면 유진은 누가 먼저 언덕을 오르는지 시합에서도 늘 1등을 했었다. 그녀는 가끔 눈이 언덕을 미끄럽히거나 폭염 주의보가 발령된 날에도 달리기를 제안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어차피 네가 1등을 할 건데 뭐 하러 뛰냐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결국 승자의 손에 쥐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왕좌에서 내려오게 된다면 그 손에는 비난이 묻는다. 어쩌면 유진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딜레마를 깨닫게 된 게 아닐까.


  한참 동안 능선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마을버스가 차체를 흔들며 정류장으로 오고 있었다. 작고 좁은 내부였지만 안에도 조그맣게 광고가 그려져 있었다. 강사의 광고는 이 작은 시골마을의 버스에도 점령을 했다. 무시를 하고 싶었지만 정류장 전광판이 아닌 뒷받침에 있었기에 고개를 앞으로 돌리면 곧장 그 광고가 보였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광고를 제대로 읽어보았다. 도대체 그들은 현대와 맞지 않는 방식을 추구하면서도 어떻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걸까. 그때, 전광판에서는 보이지 않던 조그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글씨였지만 ‘수시 대비반 모집‘이라고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씨를 보고는 실없이 웃기만 했다.

  버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마중을 나온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엄마를 왈칵 껴안았다.

  “오랜만이네 우리 딸. 하고 있는 건 잘하고 있고? ”

  “응. 여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

  “장하네, 우리 딸. 어서 밥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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