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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05. 2023

외로움의 정의



  파릇파릇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스물. 처음으로 경험을 한 새로운 문화들에 무언가를 분석하고 본질을 찾고 싶다는 욕망이 아마 최고조를 기록했던 나이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나는 대학 동기 형의 제안으로 잠시 유흥주점에서 일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무언가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 같았다. 우리가 몇 천 원을 내고 노래방에서 노는 걸 즐기는 듯 몇 백만 원으로 술과 유흥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고 잠시 발을 들인 사람도 있었고, 매일 출석 도장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나는 금, 토에만 출근을 했으니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오른쪽 손목에 입장 밴딩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시 나는 직원이었기에 자주 보이는 얼굴과 쉽게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이렇게 자주 오면 안 질려요? ”

  이 질문에 나는 예상을 하지 못 한 대답을 들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

  그날 이후로 나는 그곳에서 친분이 생긴 사람들에게 모두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조금은 장난스러운 대답도, 진지한 표정으로 뱉는 대답도 있었지만 결국 말하는 내용은 모두 비슷했다. 외로우니까. 심심하니까. 잇따라 던진 질문은 이거 말고 다른 재밌는 건 안 해봤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답들은 모두 절로 탄식이 나오게 했다.

  이런 생활이 이미 적응이 되어버렸다. 다른 시도를 하기에 솔직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그중 타지에 살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평일에는 일을 하다 보니 누군가를 만날 시간 따위 없었고 주말에 어딘가를 나가자니 낯선 타지에는 또 친구가 없기에 이런 곳을 찾았다는 대답도 있었다.

  며칠 전, 같이 근무를 했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SNS 익명 채팅방이나 오픈 채팅방 등에 들어가 유흥주점 등을 검색했다. 역시나 모르는 사람끼리 날짜를 정해 만나 유흥주점에 가자는 채팅방이 많이 존재했다. 분명 내가 근무를 하던 때는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달라진 점은 없던 것 같다.


  사실 사람에게 외로움이란 당연히 내제가 되어있는 감정이다. 나에게도 글을 쓰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잠식시켰다. 우리가 기쁘면 웃음을 터뜨리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 듯 혼자라는 게 느껴지면 외로움을 타게 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잘 안 탄다고 생각하는 건 그 역치값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취미생활을 하던, 도서관에 가던, 게임을 하던, 봉사활동을 하던.

  그런데 본인의 외로움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시끌벅적한 주점이라고만 생각을 한다는 게 무언가 안타깝기만 했다. 사실 여전히 내 주변에 흔히 죽돌이, 죽순이라 불리는 친구가 존재한다. 당연히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나의 제안도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분석을 한다는 게 참 흥미로운 나의 성격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론 남들보다 더 어두운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사람 하나를 완전히 망가트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요즈음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절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고 있지만, 가슴 한 편이 시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오지랖인 것 같다. 내가 너무 어릴 때, 이 딜레마를 깨달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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