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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02. 2023

천사의 가볍지 않은 부름



  붉은 불빛이 들어왔다. 그러면 줄지은 사람들은 한 명씩 조그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서호경 긋는 소리가 들린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은 보속을 받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왼다. 나는 문 바로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고해소 너머로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벌렁이는 소리가 울린다.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릎을 꿇고 신부님이 종문을 열길 기다린다. 드르륵. 앞서 사람들처럼 성호경을 긋는다. 고해한 지 넉 달 되었습니다. 손이 떨린다. 입술은 연신 혀를 날름거려도 바짝바짝 말라간다.

  “…… 사람을, 죽였습니다.”

    칼은 여러 용도가 있다고 했다. 의사가 쥔 칼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요리가사 쥔 칼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조각가가 쥔 칼은 창조를 하기 위해. 악의를 품은 자는 생명을 앗기 위해 칼을 쥔다. 그런데 나는 칼 따위 쥐지 않고 한 생명을 앗았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나는 고개를 들고 걸을 수 없었다.


  여전히 책가방은 내 어깨를 짓눌렀다. 가방을 의자에 걸고 나서야 움추러든 어깨를 한껏 펼 수 있었지만 짓눌린 그 느낌은 아직까지도 머물러 있었다. 내 자리는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어중간 한 중간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앞에는 키가 큰 친구가 앉았기에 칠판을 보려고 할 때마다 몸을 기울여야만 했지만 그 덩치 뒤에서 몰래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도 했기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오늘도 그는 제일 일찍 교실로 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인기척을 내도 그는 연필을 놓을 때까지 아는 척 한 번을 안 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펜을 놓고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 학교 왜 안 왔어. 걱정했잖아.”

  역시 인사 대신 결석을 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보였다.

  “아, 그냥 몸이 좀 아팠어.”

  “윽, 너 코로나 아니야?”

  그가 곧장 턱에 건 마스크를 고쳐 썼다. 붕 뜬 코 주변을 집게손가락으로 누르는 것까지 아주 야무지게 방역을 했다. 평소에나 좀 그렇게 쓸 것이지. 그러다 그가 허리를 숙여 가방을 뒤적거렸다.

  “자, 그럴 줄 알고 오는 길에 하나 샀어. 원 플러스 원이었으니까 괜히 오해는 하지 말고.”

  그가 내 책상 위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를 얹었다. 마침 아침을 안 먹고 온 참이었기에 빨대를 뜯어 흰 부분 위로 꽂았다. 초코의 달달함이 입안 가득 풍겼다.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달콤함이다.

  “고마워. 잘 마실게.”

  “응…… 그런데 너 아직 그 애랑 다녀?”

  “응? 그 애…? “

  “아니야. 됐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연필을 쥐고 그림에 몰두했다. 이미 돌려진 등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감히 잡히지 않아 볼멘소리만 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입술이 또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분명 잊으리라 다짐했지만 희미하게 그려지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숨이 턱 막혔다. 바다에 빠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와 그림을 그리는 남자애. 둘밖에 없는 이 공간. 연필 사삭거리는 소리, 다리를 떠는소리, 일찍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발소리. 그 어떤 소음도 내 귓가에 맴돌지 않았다.

  그래, 바다에 가라앉으면 수압으로 인해 몸이 쭈글쭈글해진다고 들었어. 나는 지금 바닷속에 있는 거야. 나는 중력을 따라 가라앉고 있고 수압은 점점 나를 짓누르고 있는 거야. 물고기도, 미역도 산호도 없는 텅 빈 이 바다에 나 홀로 잠기다 보면 언젠가 해저면에 닿겠지.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양수라는 물속에 있어서 그런 걸까. 입을 벌릴 수조차 없는 이 공간이 이상하게도 아늑하게만 느껴져.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도달하는 햇빛이 부족해 어두워지고 있어.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돼. 늘 어둠이 무서워 무드등을 켜고 잠에 든 나였는데, 오늘은 빛 한 점 없이도 편안히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떴을 땐, 곧장 보건실 천장이 보였다. 몸을 일으켜 세워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 학교에 온 건 오전 일곱 시 즈음이었는데 짧은바늘이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나, 어제 잠 못 잤니? 하도 잘 자서 차마 점심시간에도 못 깨우겠더라.”

  보건 선생이 컴퓨터를 보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오랫동안 누운 탓인지 머리가 무거워짐이 느껴져 손으로 뒤통수를 짚었다.

  “어지러울 만도 하지. 아침 조회 전부터 그렇게 쓰러져 잠들었으니. 어째, 좀 더 쉬다가 올라갈래? 바로 올라갈래? “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빈혈이나 저혈압 등이 없다는 기록이 있기에 단순히 잠에 빠진 거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바로 올라갈게요. “

  “그, 민호한테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다고 널 업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네……”

  보건실 문을 닫자 복도의 찬 바람이 살갗에 와닿았다. 마침 쉬는 시간인지라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몇몇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 서로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무어라 수군거리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가슴 한편에서 일렁거리던 불안이 밀물처럼 떠밀려 올라왔다. 나는 곧장 교실로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실 문을 열자 한 사람당 두 개, 약 40개가량의 눈알들이 모두 나를 향했다. 분명 떠들썩하던 교실에 정적이 일었다. 예상한 불안이 들어맞았다는 확신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게 되었다. 한숨으로 가슴을 가라앉히고 자리로 돌아가자 민호가 뒤돌아 나를 보았다.

  “괜찮냐? 얼마나 놀랐는데.”

  “어, 응.”

  대답을 듣고는 만족을 했는지 다시 그는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신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모른 척하려 가방에서 소설을 한 권 꺼냈지만 가까워지는 인기척은 도무지 무시를 할 수 없었다.

  “야, 안나야. 너 걸레라며.”

  책을 펼치려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야, 지금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지. 어땠어? 아파? 아님 좋아? “

  “어이, 시끄러워서 집중을 못 하겠네. 곧 수업 시작하니 자리로 돌아가.”

  다행히 민호가 둘을 쫓아냈지만 그들의 시선은 역시 아직까지 나를 따라왔다. 다시 그 바다에 들어가고 싶었다. 어둡고, 조용하고…… 나 혼자만의, 아무도 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


  종례 종이 울렸다. 나는 일부로 재빠르게 가방을 챙겨 문 밖으로 나섰다. 걸음은 점점 더 빨리, 시선은 내 오른발로 다시 왼 발로…… 서둘러 집에 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가방이 짓누르는 내 어깨 위로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 내 어깨를 모두 덮을 두터운 손, 억지로 성대를 내리깔아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꿋꿋하게 바닥을 봤지만 이내 손의 주인이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아까 점심시간에 너희 반에 갔는데 네가 안 보이더라. 그동안 어디 있었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종잇장이 찢어질 만큼 벅벅 문대고 싶은, 그 얼굴.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빌어먹을 학교는 결국 우리를 재회하게 만들었다.

  “어제도 학교 안 왔다며. 무슨 일 있었어?”

  일부로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디뎠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며 나를 따라 걸었다.

  “갑자기 왜 그래. 오늘 우리 집에 올래? 어제 네가 좋아하는 과일 사다 놨어.”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그의 말과 발에 고개를 번뜩 들었다.

  “아니, 난 네가 꺼졌으면 좋겠어.”

  그가 내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점점 조여 오는 압박에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고등학생 남자아이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해? “

  “그럼 넌 무슨 행동을 그딴 식으로 해?”

  “내가 뭘 했다고 그러냐?”

  정말…… 이대로 다시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우선 내 앞에 서있는 이 애부터 빠트려버리고 싶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살인자야. 그런데 또 그걸 다 떠벌리고 다녀? 네가 그러고도 사람세끼야?”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날카롭게 돌변한 그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꽉 쥔 주먹은 언제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올까 싶어 시선을 그의 주먹에 고정시켰다.

  “어제 학교 안 나온 이유가 그거였어? 왜 아무런 말 없이 너 혼자 한 건데.”

  “그럼 말을 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수술까지 했다고 애들한테 떠벌리고 다니기?”

  그의 악력이 점점 빠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그의 손을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제발 꺼져. 네가 전학 안 가면 내가 먼저 갈 테니까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는 내 뒤를 밟지 않았다. 다만 다시 내 가슴에 불안이 몰려온 건 이 사실마저도 퍼질까 봐였다. 고개를 돌려 그가 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일부로 꿋꿋하게 목에 힘을 주었다.


  밤이 깊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만이 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니,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 무섭다고 울부짖는, 아이의 울음소리. 눈을 질끈 감아도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다시 바다에 빠진 기분이었다. 분명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왜 그랬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아마 네가 태어나도 난 절대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어.”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도 그만큼 무서웠어.”

  “나를 사랑할 줄 알았어.”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난 너를 사랑했어. 거짓말이 아니야. 나를 용서해 줘. “

  “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 책임지지 못하면서 왜 날 만든 거야? “

  “미안해……”


  잠에서 깼을 땐 침대 시트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눈부신 아침햇살은 결국 다시 비추어지고 말았다. 그럼 나는 또 어깨를 짓누르는 책가방을 매고 늘 걷던 길을 하릴없이 걸어야만 했다. 교실 문을 열면 평소와 똑같이 민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뭐 그리니?”

  그림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했지만 그가 몸을 틀어 그림을 가렸다.

  “완성되기 전까진 아무도 안 보여줄 거야.”

  “어, 어… 그래. 완성되면 보여줘.”

  자리에 앉아 평소와 같이 책가방을 걸고 안에서 소설을 꺼냈다. 한 글자 한 글자 읊어질 때마다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나는 잠시동안 내가 아닌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면 바다에 빠질 일도 없었지만 그 구역질 나는 얼굴이 떠오르지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주인공 콰지모도는 마녀사냥을 당해 죽어버린 에스메랄다를 껴안고 울부짖었다. 한 번만 더 춤을 춰 달라고. 한 번만 더 노래를 불러 달라고. 나를 위해서. 늘 가방에 짓눌린 어깨가 콰지모도처럼 나를 꼽추로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관성도 보이지 않는데 눈물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는데 책 아래로 종이장이 하나 밀려 건네졌다.

  “완성했어. 네 선물이야.”

  나는 잠시 책을 덮고 민호가 그린 그림을 감상했다. 아무리 자기 세계만에 갇혀 그림만 그린다고 해도 귀띔으로 들리는 말들은 무시할 수 없었을 거다. 분명 나는 그와 같은 학우라는 것 말고는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닌데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야속한 그들의 말 따위 이젠 정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만약 그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걸 알고 있기에.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늘 고개를 숙이며 걷고 도망치면 나중에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나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다. 대신 다시 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 형체가 보이면…… 늘 변함없이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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