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Jan 30. 2023

2023 설예 정시 습작

댓글에 피드백 주셔도 됩니다.





제목: 아직 곁에 남아있습니다.


  “수술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몸 안으로 커다란 진공청소기가 들어갔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직도 닭살이 돋았다. 일곱 달이 지났다. 분명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보이는 이 검은 생물체는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건 차를 끓이는 일이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커피포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나는 찻잔에 물을 부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찻잔 위로 검은 머리가 수줍게 나와 있었다. 검은 생물체는 그 안에서 아늑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그런데 생물체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찻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마를 탁 짚었다. 어쩔 수 없이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붓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출근을 하려 운전석 문을 열었는데 검은 생물체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닿지도 않는 팔을 핸들을 향해 뻗고 있었다. 그 와중 안전벨트도 야무지게 맸다. 한숨을 내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늦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들어 올려 조수석에 앉혔다. 원하는 대로 안전벨트까지 매주었다.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그것이 손을 내밀고 벚꽃! 벚꽃!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귀를 막기로 하고 액셀을 밟았다. 이제 와서 무슨 벚꽃 타령이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지만 이내 엑셀을 더 세게 밝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늘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며칠 동안 현관문을 열먼 마중을 나와준 검은 생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보이지 않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때,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가 들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다행히 그 위에는 검은 생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낙엽을 타고 한 손에는 민들레를 쥐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민들레씨가 들어왔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검은 생물체가 창문 위에서 뛰어내렸다. 몸이 가벼운 탓인지 그것은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손등 위로 민들레씨 하나가 얹어졌다. 나는 문득 떠오르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읊조렸다. 찻잔, 벚꽃, 봄, 민들레…… 그러다 순간 무언가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들어 올렸다. 일곱 장의 페이지를 넘기다 붉게 엑스자 표시가 된 날짜가 보였다. 그날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아침에 차를 마셨고 병원으로 향하는 차에서 나는 만개한 벚꽃들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었다. 검은 생물체가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분명 책임질 수 없었기에 미련 따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걸까. 나는 검은 생물체를 따라 손을 흔들어주었다. 손차양을 하고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흔들던 손이 멈추고 나는 손등에 떨어진 민들레씨를 빈 화분에 심었다. 검은 생물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아니, 내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작가의 이전글 안갯 속 가려진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