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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Jan 28. 2023

안갯 속 가려진 말



  그날은 안개가 잔뜩 끼었었다. 주변에는 비릿한 물냄새가 났고 시야는 온통 희미해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어디까지가 인도이고 차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동차들은 라이트를 켜고 길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쉽게 보행자의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대리기사들은 음성 사서함만 남길 뿐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 현 위치를 기록했다. 우선은 집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밤이었기에 분명 택시도 잘 잡히지 않을 게 당연했다. GPS를 켜고 집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 보았다. 한강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술도 깰 겸 택시를 잡는 어플을 끄고 발걸음을 디뎠다. 조금은 비틀거리는 듯싶었지만 이미 발을 뗀 지 오래였다.

  물 비린 냄새가 더 강하게 내 코를 찔렀다. 희미하게 보이는 표지판에는 500미터 앞에 한강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발을 재촉해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연신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맴돌았다. 푹신한 매트리스, 따듯한 이불. 이는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발걸음은 비틀거리는 듯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인도와 차도가 확실히 구분되는 바리케이드가 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안개는 더 짙어졌다. 안개의 농도와 비례해 두통이 몰려왔다. 그러다 발을 헛디뎠는지 중심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렸다. 손바닥에서 검붉은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바닥이 아스팔트 바닥이라 그런지 바짓단은 적나라하게 찢어진 채였다.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잇따라 운전석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거 괜찮소? ”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중년은 넘긴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내 몸을 받쳐 일으키더니 곧장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 앉혔다.

  “이 사람아. 여기 차도예요. 하마터면 당신 죽을 뻔했어요 알아요? ”

  남자의 언성에 정신이 번뜩였다. 엉덩이를 붙인 곳은 검은 아스팔트 길이 아닌 붉은 자전거 도로였다.

  “집이 어디요. 그냥 데려다 드릴 테니 조수석에 타요.”

  그의 부축을 받으며 차를 세운 곳으로 향했다. 차체가 천천히 드러났다. 그제서 나는 그 위에 ‘개인’이라고 쓰인 선루프를 보았다.

  “당신, 사기꾼이오?”

  “이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도 난리네. 어차피 돈 받을 생각 없소. 그러니 퍼뜩 타기나 하소. 어휴 술냄새, 진탕 퍼마시셨구먼. “

  나는 그를 한 번 째려봤다가 마지못해 조수석에 앉았다. 차 안으로 들어오니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 눈가에 잔뜩 진 주름, 편안한 인상을 주는 외모는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미터기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내비게이션도, 라디오도 모두 검은 화면만 비추어지고 있었다. 백미러에는 귀여운 여자아이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절로 미소가 나오게 하는 얼굴이었다. 그도 내 미소를 보았는지 피식, 웃음일 지었다.

  “귀엽죠? 제 딸입니다. 어찌나 예뻤는지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비가 오면 땅으로 꺼져버릴까 정말 애지중지 키웠소.”

  “사랑을 많이 받았군요. 따님분이 몇 살입니까?”

  “모르오.”

  갑자기 그의 입 주변에 미소가 사라졌다. 한 층 무거워진 분위기에 술기운도 싹 달아난 듯했다.

  “저게 마지막 사진이오. 분명 사춘기가 와 나한테 대들기까지 봤는데…… 애가 갑자기 집을 나갔소. 처음엔 돌아오겠지. 하고 햇수를 셌는데 이젠 그것도 포기한 지 오래요. 아마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못 알아보지 않을까 싶소.”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말이었다. 괜히 차 안에 온도가 높아진 듯싶어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얼굴에 와닿으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그런데 이 안갯길에 택시를 잡는 손님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 않겠소? 그냥…… 이렇게 안개가 낀 날은 그냥 미터기를 끄고 늘 이 주변을 맴돕니다. “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럼 당신은 뭐 그렇게 술을 드셨나? 정장을 입은 걸 보니 멀쩡히 직장이 있는 것 같은데.”

  그의 질문에 한참 동안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다 백미러에 걸린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 별 거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지금 말고는 다신 마주치지 못할 사이오. 뭐 어떻습니까? ”

  “그냥…… 엊그제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 사실이 무언가 답답하면서 미어져서 혼자 한 잔 했었습니다.”

  “…… 아버지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지요.”

  잠시동안 차 안에 정적이 일었다. 괜히 말을 꺼냈다. 창문을 열었음에도 땀이 멈추질 않고 내 등을 적셨다.


  어느덧 차는 다리 중간 즈음에 도달했다. 아직 안개가 잔뜩 끼었기에 남자는 함부로 액셀을 밟지 않았다. 그래선 안 될 걸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사진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어쩌면 내 딸보다 더 어릴 수 있는 그녀는 이 남자를 두고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한강다리가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딸이 나간 날에도 이렇게 안개가 꼈었죠.”

  남자가 정적을 깼다.

  “안개는…… 사람 하나 사라져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해 주죠. 사람 눈은 물론이고 시시티브이마저 흐릿하게 가려버리니 원. 그래서였겠죠? 아무리 주변 블랙박스나 시시티브이를 돌려보아도 딸을 찾을 수 없는 건.”

  “그렇죠.”

  “이제 다 왔소. 뭐, 축의금은 못 해드리지만 축하한다는 말은 전해주겠소.”

  ”예, 감사합니다. “

  차에서 내리자 그가 다시 안갯 속으로 사라졌다. 편하게 앉은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열기까지 아무리 어린 그녀가 집을 나간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무슨 상관이냐,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눈을 떴을 땐, 고소한 콩나물국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부엌엔 아내가 티브이 뉴스를 틀어놓은 채 요리를 하고 있었다. 속이 쓰라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쉽사리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그때, 뉴스 아나운서의 또박또박한 말이 들려왔다. 오늘 아침, 한강 다리에서 40대 남성이 투신하였다. 안개에 가려진 탓에 남성의 신원은 남긴 택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서둘러 거실로 뛰쳐나가니 새벽에 남자와 함께 건넌 다리가 화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닐 거라 생각하기로 했지만 화면에 비추어진 차 안 영상엔 한 사진이 유독 눈에 띄었다. 탄식이 나왔다. 무언가 내게 질문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왜 남자는 갑자기 투신을 한 걸까. 그러다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잖아. 처음 만난 사이였고 심지어 그의 딸은 단 한 번도 보지 못 한 여자다. 그러니까…… 내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자.

  콩나물국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겼다. 나는 이 국물과 함께 피어오르는 질문들을 집어 삼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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