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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13. 2023

Paradox

이 소설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과 연관 없이 창작으로만 구성되었음을 밝힙니



  “야, 너는 경찰이 될 놈이 무슨 흑인 갱스터 음악을 듣냐? “

  지난주,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서 모은 돈으로 에어팟을 샀다. 역시 애플답게 에어팟에는 특이한 기능이 있었는데 내가 아이폰으로 재생하는 음악을 타인과도 공유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원 동기인 제인은 내가 듣는 음악을 공유해 듣자마자 귀에 꽂은 에어팟을 빼버렸다. 고개를 가로젓는 그의 아래에는 한입 베어 문 초콜릿 바와 경찰 공무원 시험 교과서가 펼쳐져 있었다. 형관펜은 중요한 부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배웠는데 그가 펼친 교과서에는 절반이 넘도록 형광빛으로 빛났다.

  “갱스터 음악 듣는다고 하루아침에 갱스터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럼 너는 맨날 힙합 들으면서 랩은 그렇게 못 하는데. “

  “요즘은 싱잉랩이 유행이라고. 이것만 잘하면 쇼미더머니 우승도 거뜬할걸? ”

  코에 걸쳐진 우스꽝스럽게 생긴 안경,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티셔츠, 글씨를 쓸 때마다 걸리적거려 손목을 돌리게 하는 팔찌. 제인은 힙합 음악에 빠진 뒤로 자기가 기리보이라도 되는 것처럼 옷을 입었다. 사놓고 평생 한 번 입지 않을 법한 옷도 있었다. 나는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제인은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 군대에서 특급전사를 놓친 적이 없었기에 경찰이 될까, 생각을 했었고 그의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대학 교수인 어머니는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러나 제인에게 경찰이란 꿈은 그냥 해볼까, 란 도전정신에서 나온 것이지 진심으로 꿈꿔온 직업은 아니었다. 그 말은 당장 올해 이 시험에서 떨어져도 제인이 고개를 숙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인이 남은 초콜릿 바를 한입에 욱여넣고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가로로 눕혀진 스마트폰 화면은 잠시 검게 물들었다 이내 게임 회사 로고가 새하얀 바탕 위로 떠올랐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여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교과서와 달리 형광펜 살 돈도 아까웠기에 조그만 글씨 아래에는 검은 모나미 볼펜으로 삐뚤빼뚤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에어팟에는 도무지 해석을 할 수 없는 영어 발음들이 흘러나왔고 내 눈은 밑줄이 그어진 부분과 별표가 그려진 부분을 되짚어 읊었다. 아마 내가 흑인 갱스터 음악 듣는 이유가 이거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어 노래나 해석이 되는 팝송 등은 나도 모르게 가사를 머릿속으로 읊었기에 차라리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들이 내 학업 능률을 높인 듯했다.

  “너 할렘가에서 흑인들이 왜 농구나 힙합을 죽어라고 하는 줄 알아? ”

  제인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화면이 흑백으로 떠오른 걸 보니 그새 캐릭터를 죽음으로 몰아간 모양이었다.

  “마이클 조던, 스테판 커리, 제이 지, 투팍 다 흑인이잖아. 성공한 흑인들을 보면 대부분 농구 아님 힙합이거든. 그러니까 자기들이 쉽게 성공할 길이 농구나 힙합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결국 실패하면 어떻게 되겠어. 그나마 가진 자들의 돈을 빼앗는 갱스터라도 되는 거지.”

  “넌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거니? ”

  “유튜브. “

  본인도 자기가 내뱉은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를 따라 미소를 보이곤 다시 교과서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을 해보면 오바마 대통령, 닉 퓨리를 연기한 사무엘 잭슨, 심지어는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조나단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이번엔 제인이 스마트폰 대신 붉은 펜을 움켜쥐고 몸을 풀었다. 어깨와 목을 돌리면서 나는 우두득, 소리가 카페 안을 채웠다. 나는 다시 에어팟을 귀에 꽂고 노래를 재생했다.


  배꼽시계가 울려 펜을 내려놓고 교과서를 덮었다. 제인은 책에 머리를 박고 잠에 들어있었다. 고개를 들고 목을 돌리며 보이는 창밖은 이미 해가 저물어 가로등만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내 움직임이 느껴졌는지 제인도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매번 느끼지만 너 집중력 하나는 인정이다.”

  “그만큼 간절한 거지. 밥이나 먹으러 갈래? ”

  “그래. 마침 배고팠는데.”

  가방 안에는 책이 두 권밖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가방끈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럼 절로 허리가 앞으로 굽어졌다. 가끔은 경찰이 된 나를 떠올리곤 하는데 잔뜩 허리가 굽은 민중의 지팡이를 누가 믿을 것인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허리는 천천히 굽어진 형태로 원상복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늘 가던 밥집을 향해 걸었다. 제육 덮밥, 오징어 덮밥, 비빔밥 메뉴라곤 고작 세 개가 전부였지만 저렴한 가격은 늘 발걸음을 이 식당으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너는 왜 경찰이 되고 싶은 거야? ”

  가로등끼리 간격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빛을 등지면 얼굴이 반듯하게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거라곤 고작 제인의 입뿐이었다.

  “그냥……”

  “그냥 하는 것 치고는 너무 진심이길래.”

  그냥, 이란 대답은 오히려 제인에게 더 어울릴 법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래. 너는 올해 꼭 붙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이제 홍대나 강남 같은 곳 가면 노친네라고 불리는 나이잖아. 더 늦기 전에 붙어야지. “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고맙다는 말 말고는 없었다. 그 뒤로는 식당까지 마냥 한 마디 없이 걷기만 했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완전히 꺼져버린 가로등, 희미한 빛을 내는 가로등…… 이 캄캄한 골목에 멀쩡한 가로등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내 발걸음을 따라 걷는 제인도, 아직 한참을 더 걸어야 마주할 수 있는 식당의 주인도 과연 내가 경찰이 되길 바랄까. 완전히 꺼저버린 가로등 앞을 지나니 제인의 얼굴이 암흑으로 완전히 가려졌다. 왠지 모르게 덜컥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할아버지, 이 배지는 뭐예요? 나도 가지고 싶어요! ”

  가족들 앞에서 내가 손에 쥔 물건을 보이자 모두 표정이 굳어버렸다. 당사자였던 할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손에 쥐어진 배지를 도로 가져갔다. 대화가 오가며 웃음꽃이 피었던 거실은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갑자기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에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나를 허벅지 위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제인이는 아직 몰라도 되는 물건이라 그래요. 그러니 뚝 그치자.”

  울음을 그치게 한 건 다름 아닌 입 안을 가득 채운 딸기였다. 할머니는 내가 딸기를 꿀떡 삼키면 다음 입막음을 위한 딸기를 포크로 찍어 쥐고 있었다. 딸기 하나에 다시 웃음을 되찾은 나를 보고 분위기는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렸던 나는 알지 못했다. 왜 그때 가족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그 배지를 바라보았는지. 만약 그때 배찌의 정체를 미리 말했더라면 경찰의 꿈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더 간절하게 경찰이 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체를 알려준 건 가족의 입에서 꺼내진 게 아닌, 티브이 뉴스에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을 하는 여자의 입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자살을 하셨다. 포트를 끌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아무도 없는 한적한 산,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목을 매달았다. 주변과 가족을 조사하는 탓에 장례식은 사흘이나 미루어졌다. 조사를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할아버지가 목을 매단 나무 아래에는 그가 일본에 팔아넘긴 동지의 시체가 묻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죄를 뉘우치는 방법이 아닌 피하는 방법이었다. 친일파란 이름은 그대로 우리 가족의 명찰로 붙어버렸고 그대로 아버지는 회사에서 잘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싶어 했던 그 배지가 일본에서 받은 훈장이라는 사실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할아버지 방구석에 숨겨진 배지를 찾아 연신 발로 짓밟았다. 신발 밑창이 다 까지고, 무릎이 저려 붉게 달아올라도 그 죄는 지워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내리찍는 발에 무게를 더 실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나도 따라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학교에도 내 이름은 이미 전교생들에게 널리 퍼진 지 오래였고 한동안 나를 이완용의 자식이나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두 개의 검은 줄이 그어진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경찰이 되리라 주먹을 꽉 쥐었지만 차마 장래희망 칸에 경찰이란 단어를 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칸에 기재된 건 모두 공백이었다. 내가 경찰이 된다 한들 이 죄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건 아니지만 친일파란 명찰을 내 선에서 끊어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내 자식, 내 후손들에겐 그 명찰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당장 다음주가 시험인데 너는 안 떨리냐? ”

  입술을 벌리게 되는 발음을 할 때마다 제인의 입안엔 저작운동을 거친 음식물들이 잔뜩 드러났다. 나는 일부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숟가락을 뒤적거렸다.

  “안 떨린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나는 이번에 떨어지면 쇼미더머니나 준비해 볼까. 이건 경찰 시험과 달리 꼭 우승을 하지 않아도 대중들 눈에만 잘 띄면 성공할 수 있잖아.”

  “그럼 우승의 의미가 별로 없는 거네.”

  “그치. 지난 시즌엔 우승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별 소식이 없는 래퍼들도 많으니까.”

  “잔인한 바닥이네.”

  “여기도 잔인한 건 매한가지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밥이 남았지만 차마 밥이 입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식당 주인에게 지폐를 건네고 귀에 에어팟을 꼽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을 때는 앞에 놓인 가로등이 연신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식당 주인에게 잘 먹었다고 허리를 숙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인사를 하러 들어가기엔 이미 흑인 갱스터 음악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내일 보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응.”

  제인도 나와 같이 귀에 에어팟을 꽂고 나서야 발을 디뎠다. 에어팟은 사람의 어떤 신경체를 자극을 무디게 하는 게 아닐까. 누구나 에어팟을 귀에 꽂으면 웃고 있다가도 이내 표정이 배지를 본 가족들처럼 싹 굳어졌다. 무거운 가방이 다시 내 허리를 굽어지게 했다. 앞을 보기도, 하늘을 바라보기도 힘들어진 목은 절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게 해 주었다. 고시원까지 가는 길바닥이 이렇게 더러웠구나. 세 보를 걸을 때마다 유흥업소 명함이나 불법대출 명함 따위가 하나씩은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간간이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홍보 전단지도 보였다. 갖가지의 홍보물들을 보며 고시원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음악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간지러 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로등도 어떤 불빛도 없는 캄캄한 골목, 그곳에는 일부로 목소리를 작게 속삭이는 둘의 실루엣이 보였다. 호기심에 음악을 끄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해 발걸음 속도를 줄였다.

  “한 문제당 50만 원은 너무 비싸요. 모든 문제 전부 사는데 어떻게 네고가 좀 안 될까요? ”

  “이보게, 자네 인생이 달린 시험이야. 다른 애들은 이 시험에 통과하려고 몇 년을 공부해. 그 노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이것도 아주 싼 값이라고.”

  “…… 정말 이번 시험 출제하신 거 맞으시죠? 저 정말 믿고 구매하는 겁니다.”

  젊은 목소리의 남자가 주변을 살피려 고개를 들자 벽에 바짝 붙어 몸을 숨겼다. 다시 고개를 내밀어 그들을 보니 사로 겉옷을 펼치고 두툼한 봉투를 은밀하게 주고받았다. 젊은 남자는 손바닥만 한 돈봉투를, 듬성듬성 새치가 난 남자는 큰 서류봉투를 꺼냈다. 나는 눈을 찌푸려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두툼한 봉투를 쥔 남자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켜진 노래방 간판에 그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장면에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다시 봉투를 몸 안으로 숨겼다. 새치가 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검지를 콧잔등에 세우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노량진 사시는 걸 보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 시험을 준비하세요? 맞는 거면 당신에게도 문제를 판매하고, 아니면은 따로 아는 사람에게 의뢰하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

  방긋 미소를 떠올린 그였지만 그의 말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에어팟을 끼고도 속삭이는 목소리가 전부 들렸는데 아마 그 말만큼은 귀에 담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는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허허, 지금은 제가 낄 상황이 아닌가 보군요. 학생, 나중에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

  남자는 검은 볼캡을 푹 눌러쓰고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노래방 간판만이 주변을 밝히는 이 골목에는 나와 젊은 남자 아니, 나와 제인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미안.”

  “……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해줘.”

  “근데 그거 알아? 경찰이 되려는 것보다 범죄자가 되는 게 더 쉽다는 거.”

  “씨발 지금 그게 네가 할 말이야? ”

  나도 모르게 높아진 언성은 잔뜩 떨리고 있었다. 꽉 쥔 주먹을 당장이라도 그의 얼굴을 향해 날리고 싶었지만 도무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원래 사람은 확실한 길을 걸으려고 하잖아. 이 노량진처럼 캄캄한 길은 아무도 걸으려고 하지 않아.”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꽉 다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득 내가 중학생 나무에 목을 매단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무 아래에는 일본에 팔아넘긴 동지가 묻혀 있었다. 내가 경찰이 됨으로 이 죗값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 건 욕심인 걸까. 그런데 귀를 붉게 달아오르게 한 건 제인이 아니었다. 남자가 콧잔등에 검지를 세우고 다가왔을 때, 가슴이 흔들렸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남긴 이 명찰이 죽을 때까지 가슴팍에 붙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까지도 내 몸을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했다.


  플레이 리스트에서 흑인 갱스터 음악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대신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았다. 굳이 열쇠가 없더라도 유골함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꺼내 가슴에 안았다.

  “난 당신이 부끄럽고요, 죗값을 치르지 못하는 나도 부끄러워요.”

  유골함을 들고 그대로 바깥에 잔디밭으로 향했다.

  “야, 천정인, 지금 뭐 하는 거야? ”

  제인의 목소리였다. 멀리서부터 뛰어왔는지 내 앞에 서자마자 자세를 굽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시험 보러 안 갔나 보네.”

  “아, 응. 역시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나저나 혹시 몰라서 너 따라왔는데 이걸 들고 뭐 하는 거야. “

  “죄를 씻지 못한다면 할아버지의 방법처럼 없애서 피해버리게.”

  곧장 유골함을 일본 훈장을 내던진 것처럼 바닥에 내던졌다. 유리는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튀었고 그 안에 담겼던 가루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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