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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16. 2023

진실을 마주하려



  삭제하시겠습니까?

  홀로그램 위로 예, 아니오 버튼이 떠올랐다. 나는 물끄러미 침상 위에 누운 환자를 바라보았다. 나와 그 사이에는 보호유리가 놓여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버튼을 눌렀다. 섬광이 일었다. 그는 한동안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다 이내 편안한 듯 미소를 보였다.

  가운과 고글을 벗어던졌다. 그걸 받은 레지던트는 수고하셨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그러나 숨을 고르기 무섭게 코드블루 사이렌이 울렸다. A-23 병동, 코드블루 발생. A-23 병동, 코드블루 발생. 그곳은 내 시술을 받은 환자가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신발을 갈아 신는다는 것도 잊고 곧장 병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방 안은 혼비백산이었다. 환자는 밧줄에 꽁꽁 묶여있었고, 남자 간호사 두 명은 몸부림치는 그를 제압하고 있었다. 저 가냘픈 체구에도 저런 힘이 발휘할 수 있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때, 그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엄마,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 나! ”

  간호사가 내게 차트를 건넸다. 기록에 나와있기론 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를 기억에서 지워달라는 환자였다. 글씨를 읊는 눈을 천천히 내렸다. 나이, 주거지, 가족관계…… 문득, 보이는 그녀 어머니의 이름에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났다.

  “우선, 안정제를 투여해 주세요. 서둘러 처방을 해오겠습니다.”

  차트를 읽은 뒤로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아 방을 나왔다. 또 가슴이 내려앉아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손이 떨리고 호흡이 빨라졌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의사가 해결을 해줄 거야…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병실에서 멀리 떨어졌다.


  눈을 떴을 땐, 시술실 침상 위였다.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이번엔 왜 기억을 삭제했는지 이유가 적혀있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움켜쥐었다. 두통이 심한 걸 보니 꽤 긴 시간을 지운 모양이다. 그런데 무언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했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레지던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고글과 가운이 쥐어져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몇 번 뱉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 어… 무슨 일인가? ”

  “그냥 정리 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여기 있는 건 못 본 걸로 해줬으면 좋겠네.”

  “A-23 병동으로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

  A-23…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니 과거 기억과 동시에 오늘 그 병실에 대한 기억도 지운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시술실 안에 있는 걸 보니 다시 그곳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아, 최태진 선생이 대신 갔을 거네.”

  “……”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전에도 그 환자를 시술한 뒤, 스스로 이 침상 위에 누우셨습니다. 이번엔 제 질문에 대답을 해주셔야 할 겁니다.”

  “그냥 잘 되는지 확인했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이번에도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간 다시 저 침상에 누워야 할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머리를 기대었다. 여전히 두통이 맴돌고 있었다. 레지던트가 말 한 A-23 탓일까, 기억이 나지 않아도 서재에 꽂힌 기록서에 연신 시선이 밟혔다. 그러다 두 손으로 뺨을 연신 두들겼다.

  “아니야. 최태진한테 넘긴 환자야.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

  허리를 곧추세우고 모니터를 켰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금방 잊힐 거라 생각해 오늘 환자에 대한 차트를 꺼내 적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들린 노크소리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재용 선생님 접니다.”

  아까 시술실에 있던 레지던트의 목소리였다. 내 방을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일부로 보려고 한 건 아닙니다. 선생님 개인 서적을 본 건 죄송합니다. 그래도 계속 마주해야 할 일을 왜 피하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

  그는 종이를 내게 건네곤 서재에 가서 A-23의 차트를 뽑아 펼쳤다. 책상 위에 얹어진 종이엔 한유라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애써 지운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기억 삭제 프로그램은 학창 시절 제게 의사라는 꿈을 꾸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전, 이에 대한 실험은 다 찾아보았습니다. 한유라라는 여자가 최초로 이 시술 임상실험 대상자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녀가 도중 사망한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실험을 집도하셨잖아요.”

  “……”

  “왜 그녀의 딸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겁니까? “

  심장이 뛰는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잇따라 호흡이 점점 더 가빠왔다. 왜 기억을 삭제했어도 말을 들으면 다시 떠올려지는 걸까.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다.

  “미안하네. 기억이 나질 않아.”

  “… 이걸 직접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차트지 사이에 끼워진 종잇장을 건네곤 방을 나갔다. 세게 문이 닫히는 소리는 그가 일부로 냈는지, 실수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곧장 보이는 포스트잇의 글씨는 틀림없는 내 글씨체였다.

  ‘잊지 마. 한유라는 네가 죽였어.’

  ‘그녀의 딸인 안상은의 기억도 네가 지워버렸어.’

  ‘언젠가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포스트잇을 붙인 종이에는 임상실험을 진행했을 때, 기록과 뉴스가 붙여져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중얼거렸다. 간뇌를 포맷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남들보다 간뇌가 작았던 그녀가 감당하기엔 벅찬 시술이었다고. 일부로 안상은을 찾아가서 거짓말을 한 것도, 그녀의 기억을 지워온 것도 차례로 지워온 것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밤이었다. 당직을 핑계로 병원에 남아 하릴없이 적막한 복도를 걸었다. 어쩌면 A-23 방을 찾는 것일지도 몰랐다. 슬쩍 방을 들여다보니 잠에 들지 못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안상은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나도 무언가를 들으면 다시 떠올라버리는 기억인데 그녀는 그 공백이 얼마나 괴로울까. 내가 한 선택에 대한 무게를 감당하기엔 그녀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모레에 있을 시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그녀의 기억도 모두 지워버리겠다는 생각도 모두 내 귀를 붉게 달아오르게 했다. 천천히 병실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유리문 너머 보이는 그녀는 미동 하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손을 떼고 시술실로 향해 도망쳤다.


  ‘삭제하시겠습니까?‘

  홀로그램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침상 위에 누운 나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예, 버튼으로 검지를 뻗었다. 이번 딱 한 번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음엔 꼭 죗값을 치르도록 할게… 버튼을 누르자 섬광이 일었다. 나는 다시 눈이 떠질 때까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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