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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Feb 17. 2023

우리가 원하던 독립



  짙어진 풀내음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따스해진 햇살은 오월이 왔음을 알렸다. 길거리에는 겉옷을 팔에 걸친 사람들이 시장을 두리번거렸다. 시장의 일곱 번째 골목, 비록 폭은 좁았지만 늘 사람들로 붐볐다. 가장 줄이 길게 진 곳은 문을 활짝 열어놓은 헌 책방이었다. 생선 비린내,  사골 냄새, 튀김 냄새 등이 잔뜩 가라앉은 시장의 냄새를 뚫고 코를 간질이는 종이 냄새는 절로 발걸음을 돌리게 해 주었다. 책방 주인은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두고 혹여 책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나 감시하거나 누워서 책을 읽곤 했다. 계산을 하려는 손님들에게도 돈을 받는 것 말고는 인사 한 번 건네지 않았다.

  “아따, 이 책이 우리 일제 강점기 때 쓰인 거 아녀~ 난 챔말로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 생각혀.“

  “그 짝이 그리 생각해문 그런 기고. 그건 이백 원. “

  주인이 단호하게 손을 내밀었다. 손님도 그의 태도에 머리를 긁적이다 돈을 건네고 책방을 나왔다. 책방을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옆구리에는 책이 한 권씩은 끼워져 있었다.

  “왐마, 이거 내가 허벌나게 갖고 싶었던 건디. 이건 얼만겨? “

  “뭐시여 그건. 아, 그거 언능 안 내려놓걸랑가. 안 파는 거다.”

  주인이 남자의 손에 쥐어진 책을 뺏어 서랍 안에 넣었다. 남자는 미련을 못 버린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지만 주인은 서랍을 잠그고 팔짱을 껴버렸다.

  “아야, 그거 또 아 줄라고 그라는 겨? ”

  이번엔 주인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콧방귀에 결국 손님은 혀를 차며 책방을 나왔다.


  중천에 떠오른 해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게 했다. 주인은 책을 읽으며 부채질을 하는 손을 더 빠르게 재촉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가게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은 남자의 말에 대답도 없이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미닫이 문을 열자 젊은 남자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한껏 찌푸려진 얼굴이 점점 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따, 네 서울 가더니 억수로 멋쟁이가 됐네. 그란데 밥은 먹었는겨? ”

  “네, 아직 안 먹었어요. 아저씨도 아직 안 드셨죠? ”

  주인이 그를 와락 껴안자 그도 주인의 등을 토닥였다.

  “아저씨가 주신 책 덕분에 제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것도 죄송스러운데.”

  “아 됐다 마. 자장면 먹으러 갈텨? “

 

  일찍이 아들을 잃은 그에겐 동네 학생들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였다. 그는 안 팔리거나 교재로 쓸 만한 책들을 모두 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그중 한 학생이 명호였다. 명호는 매일 이 책방을 드나들었고 올 때마다 그가 읽었던 책의 내용과 느낀 점을 주인에게 일일이 주인에게 읊어주었다. 주인은 명호를 가장 아낄 수밖에 없었고 명호 또한 그를 곧이곧대로 잘 따랐다.

  “독재타도! 독재타도! ”

  중국집이 있는 사거리 앞에는 시민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플랜 카드를 들고 있었다. 그 앞에는 군인들이 방패와 곤봉 따위를 들고 서 있었다. 사거리를 경계로 둘 사이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 누구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누구는 머리에 떡을 이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임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은 그 모습에 혀를 끌끌 찼다. 반면에 명호는 한껏 목청을 높이는 시민들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거 다 불효다. 불효. 지 애미,애비가 저러고 있는 거 알면 뭐라고 하당까.”

  명호는 자장면을 욱여넣으면서도 중국집 창문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명치를 두드려도, 물을 들이켜도 답답한 가슴은 쉽게 내려가질 않았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낯이 익은 얼굴도 있었기에 더욱이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주인은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명호의 그릇은 이미 면이 떡처럼 잔뜩 뭉쳐져 있었지만 이미 손에서 젓가락을 놓은 지 오래였다. 명호는 물 잔을 내려놓는 주인을 보자마자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아저씨, 저는 이만 가족한테 가볼랑께 나중에 서울 가기 전에 또 올게요. 자장면 잘 먹었습니다.”

  단단히 굳어진 그의 표정에 주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탕, 울려 퍼진 총성에 주인은 눈을 떴다. 잇따라 두 번의 총성이 더 울렸고 주인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창문 밖에는 희미한 달빛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바닥을 짚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출입문을 단단히 잠그려고 하는데 쿵, 하고 누군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충격에 서재에서 책 몇 권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바깥에서 욕설을 지껄이는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데시벨이 커질수록 심장이 뛰는 속도도 비례해 빨라졌다. 걸어 잠긴 자물쇠를 확인했음에도 안도의 한숨은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서재 앞으로 가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언뜻 보이는 그림자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반쯤 숙이고 있었다.

  “아저씨… 접니다.”

  명호의 목소리에 그는 열쇠를 찾지도 않고 자물쇠가 걸린 문을 세게 열었다. 자물쇠는 그의 힘을 못 이겨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 위로는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조명 하나 없이 캄캄했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명호의 눈에 초점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미안혀요. 나는 불효자식이니께.”

  주인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다 손에 쥔 책 페이지를 뜯어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눌렀다. 명호가 가빠오는 숨을 내쉬며 실없이 웃어댔다.

  “이거, 나중에 나 대학가믄 주기로 한 책 아녀요? 한 번은 읽어봐야 했는디…”

  “말하지 말랑께. 내가 후딱 병원에 데려다 줄라당께 조금만 참으라.”

  다시 명호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눈은 감겨있었다.

  “왜 두 번이나…… 내 아들을 두 번씩이나 데려가는겨…”

  그의 옆구리에선 여전히 검붉은 피가 뱀처럼 쏟아져 나왔다. 주인의 손바닥은 그의 피로 끈적하게 물들었다. 서재에서 떨어진 책도 피로 젖어 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표지가 찢겨 나가고, 종잇장은 붉게 물들었지만 그 위에 적힌 제목은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주인은 명호의 가슴 위에 그 책을 안겨주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쩌면 명호는, 시민들은 진짜 독립을 원했던 게 아닐까. 그럼 명호가 이 책의 주인이 되는 게 더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떠오른 내일의 해 아래, 군인들은 몽둥이 대신 총을 쥐고 사람들을 향해, 이웃들을 향해, 가족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럼에도 주인은 머리에 띠를 질끈 묶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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