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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03. 2023

소멸하는 밤



  차를 팔아야겠다.

  주차장 구석에 놓인 낡은 자동차는 지나가는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보닛은 잔뜩 긁혀 있었고 차체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아 있었다. 검지와 중지를 모아 차를 한 번 쓱 훑어보았다. 거뭇한 먼지들이 손가락 지문을 가렸다. 손수건으로 손을 문지른 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화면 안에 차가 담기도록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엄지로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눌렀다. 찰칵, 소리가 주차장 안을 잔뜩 채웠다. 잇따라 서늘한 주차장 냄새가 올라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 일찍도, 늦게도 아닌 딱 적당한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장례식장에선 너무 일찍 갔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한껏 감은 아버지의 눈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혼자 남은 여생을 보낼 120 시대는 너무나도 가혹했으니까.

  내가 그에게 물려받은 거라곤 약간의 빚과 30년은 훌쩍 지난 그랜져였다. 각이 진 이 그랜져는 대한민국 어느 도로를 가도 쉽게 볼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젊었을 땐 부의 상징이라고 불린 차라고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턱 끝에서 차마 나오지 않고 일렁이던 말은 이제는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문자가 왔다.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온 문자였다. 구식 자동차 마니아 층인지 문자를 보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은 제대로 굴러가기나 할까 싶은 자동차 사진이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값보다 조금 더 얹어서 차를 사겠다고 했다.

  ‘언제 거래가 가능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번주 주말에 어떠실까요?’

  거래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부탁한 사진 몇 장을 더 찍어 보내곤 거래 중이라는 표시를 띄웠다. 마지막으로 그는 차 내부 사진을 요구했다. 나는 차키를 꺼내 운전석 문 앞에 섰다. 키는 요즘처럼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아닌 열쇠 구멍에 꽂아 돌리는 방식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시트냄새와 에어컨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잠시 냄새가 빠지도록 문을 열어두고 곧장 운전석에 앉았다. 막상 운전석에 앉으니 가슴이 먹먹 해지는 건 불가항력인 듯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핸들을 어루만졌다. 가죽과 손이 맞닿으며 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차가 마음에 드는지 토요일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가면 다시는 보지 못할 생각에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꽌 쥔 차키를 꽂아 시동을 걸었다. 처음 시도는 떨림조차 오지 않았다. 손목을 두어 번 반복하고 나서야 달그락 거리면서 엔진오일 냄새가 퍼졌다.


  강변북로에 들어섰다. 늘 차가 막히는 곳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차가 많이 없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조수석을 힐긋거렸다. 내 키가 아버지의 허리에도 닿지 않았을 때부터 교복을 입고 있었을 때, 과잠을 입었을 때,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가 앉은 운전석에는 늘 아버지가 졸음껌을 연신 씹으면서 운전을 하셨다. 한 팔을 창문에 걸치고 턱을 쉴 틈 없이 움직인 아버지였는데 지금 내가 그와 똑같은 자세를 하는 걸 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아버지와 닮아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전원이 꺼져 화면이 캄캄한 내비게이션을 바라보았다. 거뭇한 화면 안으로 비추어진 좁은 차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둘밖에 차를 타지 않았던 터라 뒷좌석에는 온통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웠었는데 유독 아버지가 자주 쓰신 조립형 낚싯대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른이 되면 낚시를 가르쳐 준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핸들을 꺾어 한강으로 방향을 틀었다. 매일 아침마다 지하철 안에서 본 한강이었는데 오늘만큼은 햇살이 비추어지는 물결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가끔 아버지는 낚싯대를 들고 한강에 나갔다가 해가 지고서야 집에 들어오곤 하셨다. 한강 얹저리에 서서 물에 반사되는 노을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속도를 낮추어도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차가 덜컹거렸다. 그러면 백미러에 걸어둔 인형이 쉴 틈 없이 흔들렸다. 다시 강변에 들어서자 길게 늘어진 자동차 테일 렘프들이 도로를 붉게 빛냈다. 노을을 머금은 한강도 같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창문에 걸친 팔로 턱을 괴고 두 장면을 번갈아 보았다. 일을 마치고 가족들의 품으로, 편안한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저들은 붉게 늘어진 강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돌아갈 곳 없는 나는 어디로 갈까. 내비게이션 전원을 켰지만 떨리는 손가락은 어떤 주소도 입력할 수 없었다. 서둘러 차를 팔고 목적지들이 정해진 대중교통을 타야지. 다리 위로 지하철이 지나갔다. 내 차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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