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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05. 2023

이교도

수선화 꽃



  바람이 불지 않았음에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겉옷 주머니에 구겨 넣은 손난로를 어루만지며 새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았다. 3월이 왔음에도 아직 차가운 공기는 쉽사리 댑혀지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버스 문이 열릴 때마다 흠칫거리며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를 반복했다. 이번엔 정류장에서 한껏 얼굴에 화장을 한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밝게 띠운 미소와 화려한 옷은 누가 보아도 그들이 신입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함께 버스를 탄 셋은 어디에 앉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둘은 뒷좌석에 하나는 내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셋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쉴 틈 없이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눈을 감을 순 없을 듯했다. 결국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키워 노래를 틀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대화소리는 음악소리 사이로 흘러 들어왔다. 대화를 엿들어 보니 우리 학교 학생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창가 쪽에 앉은 학생이 내가 내리려는 곳에서 하차벨을 눌렀다. 버스에서 내리니 교문 앞이 바글거렸다. 나는 이어폰을 빼지 않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3년 만에 학교에 돌아왔다. 2년은 군대에, 나머지 1년은 전역을 하고 여행을 다니다 보니 금세 3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덕분에 동기들은 이미 졸업을 했고 코로나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얼굴을 아는 후배마저 없었기에 학교에서 아는 거라곤 교수님의 얼굴과 고양이들 뿐이었다. 역시나 수업에 들어가도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수업을 듣는 모르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빨리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학생 식당 밥값이 올랐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치솟은 물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교직원을 향해 카드를 내미는 손이 떨렸다. 그녀는 한참을 기다리다 카드를 낚아채 단말기에 꽂았다. 육천 오백 원을 주고 산 라멘을 입에 넣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천 오백 원이나 올랐으니 맛도 올랐을 줄 알았는데 그 이하였다. 그래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학교까지 왕복 교통비에 이 밥값은  시급과 맞먹었으니까.


  자취방에 돌아오는 버스, 아직 정류장에 내리지도 않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해는 이미 기울어 가로등만이 거리를 밝혔다. 현관문을 열면 캄캄한 불빛 아래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겉옷을 벗지 않고 곧장 창문을 열었다. 냄새가 빠지는 동안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취사가 완료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나는 고소한 냄새는 나도 모르게 입을 다시게 해 주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김치와 달걀 프라이, 밥을 올려 손을 모았다. 잘 먹겠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 말고는 뱉을 말이 없을 것이었다. 겉옷 소매가 걸리적거려 한 번 접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입 안에서 밥 알갱이들이 통통 튀어 다니는 듯했다. 일인용 전기밥솥은 처음인 터라 물 조절에 실패를 한 모양이다. 국이라도 할걸 그랬나. 일부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냥 오늘이 가기 전에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었다.


  “아들, 밥은 먹었어? 별일 없지? “

  “네, 없어요. ”

  “그래. 다행이네. 반찬 필요하면 보내줄 테니까 언제든지 말해.”

  “네. 감사합니다.”

  문득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에 다행히 두 마디를 더 할 수 있었다. 아직 잠자리에 들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책을 펼쳤지만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소리를 내어 글을 읊어보아도 머릿속에 입력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빨리 잠에 들어 생생한 꿈을 꾼다면, 이 공허함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덮고 곧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잠이 오질 않아 옆에 놓은 인형을 품에 꼭 껴안았다. 이따금씩 외로움이 나를 잠식시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인형을 꼭 부둥켜안았다. 아주 조그만 인형임에도 가슴이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는 기분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게 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한껏 가라앉은 가슴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 외로운 게 아니라 심심한 게 아닐까. 인형을 내려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 쉽사리 잠에 들지도, 책이 읽히지도, 유튜브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불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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