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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11. 2023

Nightmare



  태윤은 늘 방에 누워 모바일 배틀그라운드를 했다. 재작년에 나온 모델이지만 그것마저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산 헤드셋을 끼고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지껄였다. 그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는 건 아마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일 것이다. 굳이 사양 좋은 컴퓨터가 필요할까 싶어 굳이 사두진 않았지만, 태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고부턴 수행평가니, 숙제라니 하면서 스마트폰은 필수불가결한 물건이 되어 사줄 수밖에 없었다. 남들처럼 최신형 아이폰이나, 반이 접히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줄 순 없었지만 할부로 산 구식 스마트폰으로 저렇게 잘 놀고 있는 걸 보면 씁쓸한 웃음이 나오곤 했다. 남편은 더 좋은 스마트폰을 사주자고, 중고라도 좋으니 노트북 하나정돈 사주자고 했지만 가계부를 펼쳐 보일 때마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진 가늠할 수 없었다. 문득 나타난 그는 얇은 내 목을 세게 졸랐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면 그제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거울을 볼 때마다 적나라하게 남는 목의 자국을 보면 다시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했다. 발길을 끊었던 성당에 가도, 십자가를 머리맡에 놓아도, 기도를 외우고 잠에 들어도 그는 다시 내 꿈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목에 붉은 반점이 더 진해졌다. 눈가에 붙은 눈곱을 떼기도 전에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엄마, 배고파.”

  태윤이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그의 목에는 여전히 헤드셋이 걸려 있었다.

  “응. 금방 밥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

  용무를 마친 그는 다시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방 문을 닫았다. 한껏 쳐놓았던 암막커튼을 치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햇살이 들어왔다. 시곗바늘은 벌써 오전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꿈에 나오는 날이면 꼭 이 시간에 눈이 떠졌다. 열한 시는 늘 그가 잠에서 깨어나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를 닮아가는 걸까. 팔에 닭살이 돋아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 곧 아버지 기일 아니야? “

  태윤이 된장찌개에 넣은 두부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태윤의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그 안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넌 신경 쓰지 마.”

  “엄마, 남들이 흉본다니까? 그렇다고 새아빠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집안이 우리를 이해하려고 하겠어.”

  “신경 쓰지 말라니까? “

  숟가락을 내려놓자 쾅, 소리가 들렸다. 태윤도 그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밥알갱이를 젓가락으로 휘적거렸다.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정말 태윤이 너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해.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응. 나도 미안.”

  한껏 작아진 목소리 뒤로는 한참 동안 정적이 일었다. 젓가락이 식기에 부딪히는 소리 외엔 어떤 소리도 이 거실을 채우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삭막함에 바닥에 놓인 리모컨을 쥐어 티브이를 틀었다. 까맣던 화면에 불빛이 들어오자 곧장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도, 맞장구를 치는 게스트도,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도 모두 소리 내어 웃고 있었지만 내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었다. 연신 태윤의 정수리를 힐끗거렸다. 서로 사과를 나누었다고 한들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순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젓가락질을 깨작거리며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태윤은 밥을 먹고 곧장 학원으로 향했다. 다녀오겠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아직 문을 여는 걸 허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집 안에 들리는 소음이라곤 티브이 소리뿐이었다. 나는 싱크대 위에 빈 그릇들을 놓고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덩그러니 놓인 국자엔 내 얼굴이 비추어졌다. 그제서 아직까지 눈곱을 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설거지를 하기도, 티브이를 끄기도, 눈에 붙은 눈곱을 떼기도 그 어떤 행동도 선뜻 취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티브이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언가에 홀린 듯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그러곤 그들의 웃음소리에 맞춰 실없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흐흐흐. 허허허.


  다시 그가 나타났다. 그의 두터운 손은 서서히 내 목을 향해 올라왔고 나는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목으로 향하던 손이 나의 가슴 앞에 멈추었다. 그리곤 내 파자마 단추를 하나씩 풀며 내려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혹시라도 눈을 번뜩이면 그가 사라질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그의 혀가 뱀처럼 내 입 안에서 춤추었다. 그만해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내 가슴을 조물 거리던 손이 아래로 향했다. 그는 순식간에 벨트를 풀어냈고 자신이 입은 바지와 내 파자마 바지를 순서대로 벗겨냈다.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기에 쉽게 그의 아랫도리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프다. 쓰라린다. 그가 내 목을 조른다. 숨이 막힌다. 여전히 그는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움직인다.   이 남자는 결혼을 했다면 무조건 잠자리가 허용되는 줄 알았다. 솔직히, 난 그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드레스를 입고 그의 옆에 서있는 상상을 했고, 둘을 쏙 빼닮은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고, 똑같이 새하얗게 물든 머리를 그렸다. 그러나 햇수가 지날수록 연애 때, 다정했던 그의 목소리와 행동은 내가 아닌 아들 태윤을 향했다. 이제 나는 그저 성욕을 해결하는 도구, 밥을 하는 도구가 된 듯했다. 좋은 남편은 아니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 그런 말을 원한 걸까. 당장이라도 집에 걸린 그의 사진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남편의 사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태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주먹을 꽉 쥐어질 수밖에 없었다.


  눈을 떴을 땐, 방금까지 보던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었다. 살짝 풀어진 스카프 위로는 더 선명해진 자국이 드러났다. 아랫도리도 쓰라림이 느껴졌다. 아직 해는 지지 않고 짜증이 날 정도로 내 눈을 부시게 했다. 커튼을 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햇빛이 내리쬐는 곳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겨보았다. 높은 건물의 그림자에 진 그늘, 그 사이 적나라하게 햇빛을 받는 가족사진이 그 끝에 놓여 있었다.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걸 행동으로 옮겼다. 태윤도, 남들의 시선도 상관없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손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흐흐흐, 허허허 따위의 웃음이 아닌 밝게 웃음이 나왔다. 태윤이 집에 오고 움푹 파인 그의 얼굴을 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겠지. 어쩌면 닫아버린 문을 다신 열지 못하게 굳게 잠가버릴 수 있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어헤쳤다. 검지로 붉은 자국을 따라 훑어보았다. 그래, 이 자국은 그가 죽기 전부터 있던 거야. 태윤이도 나를 이해해 줄 거야. 실없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이대로 미쳐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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