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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Apr 18. 2023

보이지 않아도



  자동차 경적 소리가 거리를 한가득 채워도 나는 내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데시벨이 올라가고,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져도 집중력이 흩트려져선 안 됐다.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릴없는 발걸음은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내 뒤로 무섭게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뒤통수를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는 내 심장을 더 빠르게 뛰도록 촉진시키는데 충분했다. 미치겠다. 앞을 가늠하는 탁, 탁 소리가 심장 박동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리가 멈추면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렸다. 끊임없이 경적이 울렸다. 나는 이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동네 곳곳에 걸렸던 플랜 카드와 반대 깃발을 무시하고 결국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주민들은 눈 깜짝할 새 터전을 잃고 방랑자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외곽 중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라 이곳까지 영향을 받진 않았다. 다만, 대가로 집이 지어지는 동안 나를 괴롭힐 소음을 감당해야만 했다.

  “형씨, 우리 없어도 잘 지내야 혀요.”

  “어휴, 걱정돼 죽겄는디 우리도 이제 더 이상 여기에 못 있게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간간이 소식 전하러 올 테니, 여기 꼭 붙어있어야 해요.”

  주민들의 목소리엔 한껏 떨림이 느껴졌다.

  “알겠어요. 조심히 가세요. 건강하시고요.”

  괜스레 그들을 따라 내 목소리도 떨리는 듯했다.

대충 계절이 네 번 바뀌었을 즈음, 그 대가는 끝이 났다. 예상외로 아파트 단지 건축은 빨랐고, 입주민들이 들어오는 속도는 더 빨랐다. 작은 이차선 도로 너머로 우람한 마천루들이 펼쳐졌다는 사실에 괜히 나도 우리 집도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주말이 되면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윽고, 강아지가 짖는 소리, 장난감 자동차의 경적소리 등이 잇따라 들어왔다. 살갗에 와닿는 햇살마저도 나를 바깥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이를 못 참은 나는 곧장 지팡이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한참 개발중일 때 마셨던 공기와는 달리 먼지 하나 콧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통해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도 한껏 선명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네를 산책하기 위해 지팡이로 앞을 툭, 툭 치며 발걸음을 디뎠다. 한 발자국 발을 디딜 때마다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익숙했던 골목을 지나고 새로운 모퉁이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턴 감보다는 이 지팡이와 노란 보도블록에 의지해야 했다. 왠지 모르게 덜컥, 겁이 났지만 연신 귓가를 맴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익숙하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캄캄한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살짝 들어보았다. 흐릿한 배경, 흐릿하게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얼굴, 일렁이는 길바닥. 그 사이를 인도해 줄 노란 보도블록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분명 단지가 들어서기 전, 굳건하게 도로 한가운데를 자리 잡았기에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던 손이 멈추었다. 나는 갈팡질팡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려도, 사람들이 내 모습에 웅성거려도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터전을 빼앗겼고, 나는 삶을 빼앗겼다. 정녕 나를 위한 나라는 없는 건가. 그럼,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 건가. 길을 걷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다. 죽고 싶다, 힘들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분명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을 것이었다. 나의 이웃이었던 이들을 위하지도, 나를 위하지도 않는데, 적어도 너희는 최소한의 행복은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은가?

  “씨발! 이 좆같은 세상! 다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

  밤이 되자 한껏 혀가 꼬인 듯한 목소리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 저들도 무언가 빼앗긴 게 있으니 저렇게 한탄을 토해내겠지. 이런 좆같은 모순은 어디서부터 시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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