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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18. 2023

나의 작은 아기 천사



  하릴없는 기다림은 날 지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은’이라는 헛된 희망에 괴로워할 걸 알면서도, 기다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암막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목을 짓누르는 통증에 다시 몸을 침대 위로 던졌다. 언뜻 보이는 천장엔 검은 자국들이 그을려져 있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천장이었다. 몸에 힘이 풀린 탓인지 몸을 일으킬 의지가 생기질 않아 팔을 그대로 침대에 딱 붙였다. 그러나 창문 사이로 들리는 울음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한쪽 무릎을 움켜쥐고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걷는다기 보단 발바닥을 쓴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 쓸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선반 위에 사료를 챙겨 밥그릇 위에 담아냈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덕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그릇을 놓자 덕자는 게걸스럽게 안에 담긴 사료를 먹어 치웠다. 처음 만났을 땐, 갈비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절로 혀를 차게 만들었는데 이젠 어느덧 살집이 올라 다른 고양이를 만나도 쉽게 기가 죽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덕자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보았다. 몽실몽실한 그의 털이 손끝에 와닿으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덕자는 눈을 감고 내 손의 온기를 느끼는 듯했다. 바닥이 드러난 그릇을 보고 아직 잔뜩 남은 사료 봉지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죽기 전에 저걸 다 줄 수 있을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지만 차마 덕자를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덕자를 끌어안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올랐지만 입술을 꽉 깨무는 걸로 억누르기로 했다.


  작은 나의 아기 천사. 천국에 가려 매주 성당에 가 기도를 드렸지만 너와 함께라면 천국이 아니더라도 좋을 것 같아. 콘크리트 위 아이들처럼 차분해지려 하지만 네가 보이면 내 다짐은 무너져 내리곤 했지. 그러니 오늘 하루만 나와 멋진 점심식사를 하지 않을래? 여전히 너를 기다리고 있어.

  한준이 사준 스마트폰은 그저 내게 커다란 MP3에 불과했다. 그와 연락이 끊긴 뒤, 일부로 시간을 보지 않는 버릇이 생겨버렸기에 음악을 듣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신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는 건 심장이란 불수의근이 시키는 헛된 행동이다. 그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게 욕심인 걸까. 무릎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향하고, 냄비에 물을 받고, 물을 끓이고, 된장을 넣고, 양파와 두부, 호박 등을 썰고, 다진 마늘을 넣고……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된장찌개 사진을 찍고 하나뿐인 연락처에 문자를 보내는 것도 모두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 한준아,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였는데 먹고 갈래?‘

  냄비 뚜껑을 닫고 티브이를 보며 답장을 기다렸다. 고개를 꾸벅이며 눈이 슬슬 감겨오던 찰나, 티브이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번뜩였다. 혹시나 답장이 왔을까, 곧장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액정 위로는 배경사진으로 지정해 둔 한준이 얼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결국 다시 찌개를 덥히고 상을 펼쳤다. 국물을 한술 떠 입 안으로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좀 짜네. 한준이가 싫어했겠어.”

  아무도 듣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라도 해야 답장이 오지 않았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니, 두드렸다기보단 긁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벌컥, 문을 여니 아래에 덕자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와 몸다툼이 있었는지 얼굴엔 상처가 나있었고 눈망울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분명 안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를 품 안에 담았다. 작게 우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고 털이 닿는 팔은 따스했다. 옷에 털이 잔뜩 묻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당장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한준이 내 품에 쏙 들어왔을 때, 그가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에 들면 나도 따라 눈을 붙이곤 했다. 그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 어둠 속에 서린 이름 없는 별들도 나를 비추어주는 듯했다. 그리고 덕자를 품에 안은 지금, 태양 너머로 비추어지는 별이 나를 비추어주고 있었다.

  덕자의 새카맣게 물든 털을 씻겨주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덕자는 얌전히 샤워기에서 내리쬐는 물을 맞았다. 비누칠을 하면서도 몸 한 번을 털지 않았다. 비누가 그의 몸을 한 번 훑을 때마다 거뭇했던 털이 새하얗게 그 뒤를 그렸다. 수건을 꺼내 몸 위를 감싸니 그제서 덕자는 냐옹, 하고 울었다. 고맙다는 말을 한 걸까. 언젠가 덕자가 정처 없이 떠나던, 내가 세상과 작별하던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 순간이 두려워 고개를 푹 숙였다. 덕자가 먼저 떠나면 남은 나의 삶이 괴로울 것 같고 내가 먼저 떠나면 혼자 남겨질 덕자가 걱정되었다. 다시 찾아온다던 기약 없는 약속을 두 번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말없이 보송보송한 그의 털을 쓰다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덕자를 문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연신 뒤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 손이 파르르 떨려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미안해.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물을 짚고 일어나도 몸의 통증은 끊이질 않았다. 간신히 일어난 뒤, 옷장 문을 열었다. 무채색 옷 중에서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화장대에 앉아 대충 얼굴을 덧칠했다. 붉은 립스틱까지 발라내자 자글자글했던 얼굴이 조금은 화사하게 보였다. 한껏 단장을 했는데도 바깥까지 나가는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 사실 오늘이 오는 게 죽도록 싫었다. 평소라면 빨리 오늘이 지나 죽음에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오늘만큼은 절대 오지 않았으면, 차라리 모레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된장찌개에 시선을 돌렸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맞아, 저건 한준이가 먹기엔 너무 짜. 신발장 옆에 놓은 지팡이를 짚으며 어렵게 발자국을 디뎠다.

  “아니, 어머님. 이제 거기까지 가기 어려우시다니까요.”

  매년 모자를 쓴 남자가 내게 건네는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매년 똑같은 말을 건넸다.

  “그래도 가야지요. 오늘 아니면 또 언제 봅니까.”

  “어휴, 차에 타세요. 태워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매년 그의 차를 얻어 탔다. 사실 그의 차가 아니었으면 오늘이 끝나고서야 목적지에 도달했을 거다.

  “저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일 보고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는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 스마트폰을 보았다. 편하게 이곳을 올라왔음에도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늘 멀게만 느껴졌던 곳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이 길은 너무 짧기만 했다. 마침내 앞에 도착했을 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 엄마, 왔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가방에서 티슈를 한 장 꺼내 그 위를 문질러 닦았다. 묵었던 때가 지워지고 서서히 한준의 이름이 드러났다. 하릴없는 기다림은 사실 끝이 존재했다. 캄캄하고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고 생각했지만 끝은 새하얬다. 그것이 두려워 외면하려 애썼고 아직까지도 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빨리 집에 오렴. 엄마가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여놓을게.”


  집에 돌아오니 다행히 해는 저물어 있었다. 빨리 좆같은 오늘 하루가 지났으면 좋겠어서 곧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도 잊은 채 푹신한 침대를 만끽하는데 다시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덕자구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는지 덕자는 집 안으로 들어와 거실을 사뿐사뿐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침대에 앉은 나를 보고 내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는 그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포근하다. 복슬복슬하다. 따듯하다, 보고 싶다. 한준이 보고 싶다…… 작은 나의 아기 천사, 서둘러 너를 만나러 가고 싶다.

  사르르 눈이 감겼다. 덕자도 같이 눈을 감은 듯했다. 밤에는 꿈에서, 낮에는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그 얼굴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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