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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13. 2023

닿는 순간



  “도우미 분들은 무언가를 훔쳐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미안합니다. 습관입니다.”

  카운터에 선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면서도 청소를 하는 도우미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들 뿐 아니고 정말 믿을 수 있죠? ”

  “저희 보육원은 24시간 내내 복도에 시시티브이를 틀어놓기 때문에 보안에 관해서 걱정하실 점은 전혀 없습니다.”

  분명 그녀는 한껏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떨리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영수증을 지갑에 넣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뒤를 돌아 건물 오 층을 향해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저 언저리에 우리 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져 갔다. 분명 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십 년은 걸은 듯했다. 갑자기 실없는 웃음이 터저버렸다. 십 년…… 십 년이나 걷는다. 쉴 새 없이 중얼거리자 주변 사람들의 힐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는 사람들인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어지럽다. 눈앞이 빙글거린다. 티브이 옆에 올려둔 십자가를 향해 기어가 무릎을 꿇었다. 이걸로 내 공허를 채운다는 사실에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몰려오는 죄책감, 나 때문이라는 손가락질이 머릿속에 잔뜩 피어올랐다. 치켜올려진 손가락을 지워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릿속을 맴도는 삿대질은 쉽사리 사라지질 않았다.  이 좆같은 후유증은 마치 숙취와도 같다.

  잠에서 깨어나니 지끈거리던 두통이 조금은 가신 듯했다. 누웠던 소파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칙칙한 무채색의 옷들 사이 그나마 화려한 색상의 옷을 골라 입었다. 거울을 보니 괜스레 느껴지는 어색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보육원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에 절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육원 건물이 보이고부터는 아예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부끄러움에 입술을 꽉 깨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성주 학생 보호자분 맞으시죠? “

  자동문이 열리고 때마침 앞을 지나가는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걸 보니 그녀도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모양이었다.

  “지금 올라가도 될까요? 조금 일찍 왔는데. “

  “네. 만남의 광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를 뒤따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 살배기 아이부터 수염이 삐죽 자란 아이까지 별별 아이들이 건물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성주의 실루엣이 보였다. 성주를 인솔하는 직원 뒤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천천히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성주를 마주한다면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할지, 눈물을 떨어트려야 할지 헷갈렸다. 그러나 성주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아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나는 결국 활짝 웃지도, 눈물을 떨어트리지도 못하고 멋쩍게 입꼬리만 살짝 올릴 수밖에 없었다.

  “성주 학생, 아버님 오셨어요.”

  “……”

  “괜찮습니다. 이제 저희 둘이 시간을 보낼 테니 잠시만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을까요.”

  직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들어왔던 복도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성주는 내가 아닌 시계를 보면서 나를 힐긋거렸다.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걸 보니 증상이 더 심해진 듯했다.

  “여긴 어때? 지낼만해? ”

  “…… 누구세요? ”

  찰나의 정적. 그 순간은 참을 수 없이 무겁기만 했다. 고작 쥐어짜 나오는 거라곤 볼멘소리였다. 우리는 서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내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을 감싸 안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성주를 따라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옆에 놓인 직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성주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도통 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동행해 주실 수 있습니까? ”

  그녀는 눈동자를 여러 번 굴리다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거뭇한 화면을 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껏 딱딱해진 그의 목소리는 간신히 뛰는 내 심장을 수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오진을 내린 것 아니냐고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싶었다. 그러나 성주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의사의 말은 점점 진실에 수렴되었다.

  “이봐요. 의사양반. 아직 중학생입니다. 그런데 왜 그게 벌써부터 오냐고요.”

  “저로선 해드릴 말씀이 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성주의 알츠하이머 증세는 최근이 아닌 적어도 유아기 때부터 발현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아직 젊잖아요. 그럼 충분히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아직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 등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은 아직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성주가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게...”

  “......”

  어디서부터 이런 모순이 찾아온 걸까. 아니, 그 모순을 물려준 건 나다. 성주가 더 좋은 아버지를 만났다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치매에 걸릴 리 없을 것이다. 씨발......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었다. 몇 달 뒤에 내 심장이 멈추면 성주는 누구에게 기대어야 하나.


  술잔을 연신 들이킬 때마다 체온이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겉옷을 소파 위에 얹어두고 병 째로 술을 들이부었다. 모순, 모순...... 개좆 같은 모순. 아니다. 반대로 내가 치매에 걸리고 성주의 심장이 멈추어버리는 게 어쩌면 더 비참할지도 모른다.

  문득 내가 담긴 성주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텅 비었고, 요동쳤고, 흐릿해져 갔다.

  “아빠, 왜 그렇게 술을 마셔. 좀 적당히 마셔.”

  “술 끊으면 장수하리? 어차피 내 심장을 멈추게 하는 건 술이 아닌데? “

  눈을 잠시 감았을 뿐인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성주의 얼굴이 일렁였다. 단지 백일몽일까, 과거의 회상일까. 홀연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짧은 탄식이 나왔다. 나의 자랑, 나의 행복. 죽고 난 뒤, 땅속에서도 너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축축하고 어둡겠지만 따듯하겠지. 그럼 나는 거기서 너를 실컷 만끽할래.

  실없는 미소가 끊기질 않는다. 나, 이대로 미쳐버린 걸까.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마른기침이 나왔다. 그 뒤로 연거푸 새어 나오는 쇳소리에 이제 슬슬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아드님 한 번 만나뵙는 게 좋지 않을까요? ”

  “……”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통장 하나와 봉투를 건네고 등을 돌렸다.

  “믿겠습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오 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 언저리에 그가 있다. 성주에게 와닿을 진 모른다. 그래도 한 번도 그에게 건네지 않은 것 같은 말을 작게 읊조렸다.

  “너는 내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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