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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06. 2023

내 안에 늘



  가끔 그의 죽음에 대해 떠올렸다. 남자의 기분 좋은 팔도, 새하얀 피부도 언젠가 죽어 없어질 거란 게 견디기 힘들었다.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편이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선 좀처럼 그러지 못했다. 가끔 남자가 지나치게 느리게 숨을 쉬며 잠을 잘 때, 코밑에 손을 대어보곤 했다. 잠버릇이 시끄러운 사람이었다면 더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는 없다. 그가 떠난 뒤 공허해진 집은 따스했던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셋을 셌다. 하나는 그를 처음 만난 날, 둘은 그와 결혼을 약속한 날, 마지막 셋에는 식을 올린 날을 떠올렸다. 다시 눈을 뜨면 여전히 온기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떠오르는 그의 생각에 떨리는 가슴이 멈추곤 했다.

  “요즘은 재혼해도 아무런 문제없어. 그러니 그 남자는 잊고 새로운 남자를 찾는 건 어때? ”

  시어머니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우리 사이엔 아이도 없었기에 나만 등을 돌리면 모든 게 끝날 관계였다. 그녀도 내가 등을 돌리긴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실 한편에 걸린 액자 속 그가 언제 다시 내게 말을 걸지 모른다는 생각 탓일까. 가늘게 눈을 뜬 그를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언제 내게 말을 건네줄 거냐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내일은 무엇을 할 건지, 고생했다고, 행복하자고 언제 물어볼 거냐고. 아니,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어제는 ‘구의 증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구의 시체를 먹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책을 덮자마자 남편의 사진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당신을 먹을 걸 그랬나 봐.’

  혼잣말임에도 나도 모르게 팔에 닭살이 돋았다. 어차피 화장터에 들어가면 불에 타 없어질 몸인데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당신을 먹어 늘 내 안에 함께 있도록 할 걸 그랬어. 차마 이 책을 오랫동안 집에 둘 수 없을 것 같았다. 커튼을 쳐 햇볕이 잘 들게 했다. 그리고 선반 위에 책을 놓아 사진이 잘 찍히게 두었다. 찍은 사진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리려는데 가격을 입력하는 칸에서 손이 잠시 멈칫했다. 알라딘에서 중고로 샀으니 좀 더 싼 가격에 올려야겠지. 결국 책을 오천 원에 올렸다. 어차피 돈을 벌 생각보단 이 책을 집에 두고 싶지 않았기에 가격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업로드가 되자마자 곧장 세 명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세 명 중에 직거래가 가능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 바로 거래 괜찮을까요? ‘

  ‘저녁에 퇴근하고 바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스타벅스 앞에서 뵙겠습니다.’

  스마트폰 액정 위로 떠오른 말풍선은 고작 세 개가 전부였다. 우리는 엄지가 이루는 찰나의 순간으로 만남을 약속했다.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예인들의 웃음소리에 그저 하릴없이 따라 웃었다. 이렇게 웃다 보면 금세 내일이 오겠지. 또 내일이 오면 금세 일주일이 지나고 점점 그와 만나는 시간이 가까워지겠지. 오늘도 나는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다 잠에 들겠지.


  약속 시간에 맞춰 스타벅스 앞에 섰다. 어디에 계시냐고 문자를 보내려 하려는 찰나,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틀림없이 그녀가 거래 상대라는 걸 직감했다.

  “저…… 책 거래 맞으시죠? ”

  “아, 네.”

  곧장 쇼핑백 안에 넣어둔 책을 꺼내 보였다. 그녀는 책 상태를 확인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현금 오천 원을 꺼내 건넸다.

  “재밌게 읽으세요.”

  현금을 지갑 안에 넣으면서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재밌게 읽기엔 좀 암울한 내용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책 뒤표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공허한 그녀의 눈은 마치 당장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그저 볼멘소리만 내었다.

  “농담입니다. 사실 이 책 읽어봤어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왜 굳이…“

  그녀는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공백을 채워나갔다. 뒤를 돌아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안쓰러워 보였다. 그녀도 뒤를 돌아 나를 한 번 힐끗 돌아보았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여전히 밤공기는 내 살갗을 차갑게 어루만졌다. 앞섶을 여며 바람을 막으려고 했지만 단추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마저 막을 순 없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앞에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 없이 따듯한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얼음 하나 없는 커피는 쌉쌀하기만 했다. 그는 카페에 오면 늘 따듯한 커피를 주문했다. 모두가 한 손에 아이스커피를 쥐고 출근길을 오갈 때 그는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따듯한 커피를 홀짝였다. 나도 그를 따라 따듯한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 마셨던 커피는 시럽을 넣지 않아도 달달하기만 했다.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잔 위로 오가는 대화는 커피보다 더 달콤했다. 인상을 찌푸릴 일도, 눈시울이 붉어질 일도 없이 그저 입가엔 미소만 번졌다.

  두 손으로 잔을 쥐고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정말로 당신을 먹었다면 지금 마시는 이 커피도 달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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