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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r 05. 2023

비가 오면



  “당신, 왜 이렇게 비를 맞았어요? “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던 어머니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어머니는 마른 수건을 내 머리에 감싸주었다. 부드러운 수건에서 은은한 세제 냄새가 났다. 축축했던 머리가 마르니 눈이 사르르 감겼다. 티브이에선 예능 MC와 패널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쯤 열린 창문 탓에 바닥은 빗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갑작스레 내린 비였기에 티브이를 보다 창문을 닫는다는 건 충분히 잊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신발을 벗으니 젖은 양말에서 물이 떨어졌다.

  “저 아직 밥 안 먹었어요.”

  머리를 털어주던 어머니가 손뼉을 쳤다. 그러곤 종종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티딕, 가스불 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고 머리를 턴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책가방 지퍼를 여니 교과서들이 흠뻑 젖어있었다. 오늘 수업을 들었던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역시나 필기한 글씨가 번져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교과서 표지는 너덜너덜해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여전히 티브이에선 웃음소리가 났다. 티브이로 고개를 돌려보니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MC를 비웃는 소리였다. 그는 멋쩍게 미소를 보이다 이내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매를 손바닥까지 잡아당겼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의 손바닥에 맺힌 핏방울을 보였다. 남자는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끊길 때까지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소매로 가린 그의 손바닥을 계속 지켜보았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냄새에 이끌려 자리를 식탁으로 옮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과 갖가지 반찬들이 식탁 위에 오르자 절로 입맛을 다셨다. 어머니는 오븐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앞에 국그릇을 올려 두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김이 나는 된장찌개를 보았다. 구릿빛 국물 안에 호박과 양파, 두부 등이 잔뜩 담겨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두부를 쿡 찔러보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우리 집 된장찌개는 늘 두 그릇에 담겼다. 그는 무조건 된장찌개에 두부가 들어가야만 했지만 나는 두부를 먹지 못했다. 따로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두부를 먹는 날이면 밤마다 구토와 설사 따위를 했기에 내 앞에 놓인 국그릇에는 늘 두부가 빠져 있었다. 나는 괜히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번에 첫째 언니가 준 된장으로 끓인 거예요. 전에 언니네 된장이 제일 맛있다고 하셨잖아요. 참, 밥 다 먹으면 잘 먹었다고 전화 한 통 해야겠어요. “

  어머니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차마 재작년에 첫째 이모가 이모부와 한 사업이 망하고 형제들에게 돈을 빌렸다 연락이 두절됐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된장찌개를 한 숟갈 입에 넣을 때까지 그녀는 턱을 괘고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천둥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이 불빛으로 번쩍였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의 세기가 커질수록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내가 잊히는 듯했다. 나는 묵묵히 숟가락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일부로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크게 냈다. 뭔가 바깥에서 들리는 저 소리를 최대한…… 묻어버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이렇게 비가 내렸고 번개가 하늘을 밝혔다. 어렸던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벌벌 떨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정한 손길이 머리칼을 스치면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그럼 번개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요한 어머니의 자장가만이 내 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검은 상복을 입고 번쩍이는 하늘을 바라보았을 땐, 나는 몸을 벌벌 떠는 대신 멍하니 번개를 관찰하였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여러 갈래로 뻗은 번개와 우렁찬 천둥이 화려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제우스는 천둥과 번개의 신이라고 했는데, 그가 우리 아버지를 반긴 걸까. 참 사람을 요란하게 반기는 신이구나. 그래서였을까. 나는 제우스가 싫었다. 수업 중에도 책이나 교과서에 제우스란 이름이 보이면 펜으로 여러 번 그었다. 데려갈 거면 아버지가 가진 모든 걸 함께 가져갔어야지. 그는 오롯이 아버지만을 데려갔다. 결국 나와 어머니의 품엔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빚만이 고스란히 안겼다. 이런다고 빚이 사라지는 게, 어머니의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나는 그 세 글자 위를 더 세게 박박 그었다.


  “강우야,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고 이제 학업에 집중하는 건 어떠니. 좋은 대학에 가서 멋진 직장에 취직해 돈 많이 버는 게 가장 효도하는 거야.”

  담임이 안경을 고쳐 썼다. 꼰 다리 위에는 내 성적표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진로 상담이라는 핑계로 잔소리를 일삼았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그가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엔 마우스 위로 손을 얹더니 글과 숫자가 빽빽하게 나열된 표를 하나 화면 위로 띄웠다.

  “솔직히 지금 강우 성적으로 4년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아직 1년이 넘게 남았잖아?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한다면 충분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어.”

  나는 일부로 화면 가까이에 고개를 들이댔다. 눈살을 찌푸려가며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그의 말을 들어주는 척했다.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족한 대답이 나왔는지 담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교무실 문을 나오니 다음 학생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지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피하지 않았다. 중간 자리 즈음에 앉았던 애였나.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던 아이. 문이 닫히고 나서야 따가웠던 시선이 사라졌다. 나는 곧장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볼일이 급한 건 아니었고 그냥 교실에 들어가면 내게 몰릴 시선이 싫었다. 담임이랑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묻는 질문도 듣기 싫었다. 양변기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면 늘 버릇처럼 은행 앱에 들어간다. 이번에도 나는 가장 먼저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오늘 새벽, 월급이 입금되었다. 조금씩 불어나는 숫자는 내가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다만, 다시 내일이 되면 이 돈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깐이나마 느끼는 행복은 찰나의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종이치고 나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학생, 뒤에 모여들어 수다를 떠는 학생, 그 짧은 시간 동안 캐치볼을 하겠다고 운동장으로 나가는 학생으로 나뉘었다. 나는 그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냥 창가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내 쉬는 시간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종례시간이 되면 나는 담임은 물론 주변 친구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오늘 야자 쨀 생각하지 말고 충실히, 학생의 본분을 다 할 수 있도록.”

  탄식이 빗발쳤다. 학원을 가는 학생은 조퇴 사유서를 작성하러 교무실로, 야자를 하는 학생은 야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교무실도, 야자실도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였다.

  “강우야, 아까 상담한 거 기억나지? 오늘은 도망치면 안 된다.”

  눈을 질끈 감았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감시망이 많아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는 걸로 그 시선들을 피하려 했다.

  담임이 나가면 애들도 하나둘씩 책가방을 챙겨 교실 밖을 나갔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한 번 보았다. 서둘러 가게로 출발해야 했다. 늦으면 분명 하루종일 사장의 핀잔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저 남자애는 빨리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지?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서서히 내게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아까 진로 상담을 한 뒤에 나 다음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억지로 눈을 피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너 산책로 끝에 있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지?”

  책상 모서리에 그의 손이 얹어졌다. 그는 살짝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있었다.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엄마랑 외식하는데 널 봤었거든. 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술술 대답했다. 당연하다. 기억은커녕 이름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야자를 째는지 지켜보는 감시자는 아닌 듯했다.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그가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뭘 달라는 거지.

  “휴대폰. 내 번호 줄게.”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당장 출발해도 정각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은데.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그때, 그가 내 휴대전화를 덥석 낚아채더니 검지를 두드렸다. 전화를 거는 걸 보니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려는 듯했다. 다시 휴대전화를 건네받았을 땐, 액정 위로 ‘설이‘란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내 이름이야. 정 설. 너는 성이 한 맞지? 한강우. “

  정 설. 특이한 이름에 그의 이름을 몇 번 곱씹었다. 설이 본인의 휴대전화를 두드리다 내 얼굴에 화면을 들이댔다.

  “이름이랑 번호 이거 맞지? 학기 초부터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잘 부탁해. 나는 이제 그만 갈게. 너도 일 열심히 하고. “

  그가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따듯한 온기가 내 손을 타고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다 설은 책가방을 올려 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도 잇따라 교실을 나와 야자실과 교무실이 있는 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 설. 가게로 가는 내내 여러 번 그 이름을 읊조렸다. 그 애는 왜 내 번호를 받아간 걸까.


  이번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일기예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였다. 적어도 일주일은 그녀가 나를 아버지로 착각할 터이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국을 끓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녀의 어깨가 더 축 처져 보였다. 팔뚝도 더 얇아진 것 같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듬성듬성 난 새치도 보였다. 문득 덜컥 겁이 났다. 지금은 비가 올 때나 아버지와 착각하지만 나중엔 매일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시면 어쩌지. 괜히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어제 이번 달치 돈 납부했어요. 어머니도 하셨죠?”

  “그래. 그런데 강우야, 너는 정말 돈 안 내도 괜찮다니까. 엄마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딱 재작년이었다. 빚을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한 어머니는 어느 날 계산을 하다 갑작스레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돼 받은 결과는 과로와 치매 초기였다. 첫째 이모의 두절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어머니의 착각은 시작되었다. 삼 일간의 입원을 한 결과는 수납처 앞에 선 어머니의 손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떨리는 손이 보기가 싫었다. 결국 어머니는 마트에서 해고당했고 다시 일을 찾았으나 밤에도 일을 하려는 걸 내가 간신히 말렸다. 대신 나이가 되면 일을 시작해 돈을 보태기로 다짐했었다. 아직 대출금이 지워지기까지 많은 숫자가 남아 있다. 그렇기에 돈을 버는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먹구름이 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릿한 비냄새도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왔다. 비 냄새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내 불안도 커져만 갔다.

  “비가 오려나.”

  어머니가 허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주먹이 허리에 닿을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살짝씩 위로 떠오르는 그녀의 흰머리가 더 돋보였다.

  알람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잠에서 깬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곤히 잠에 든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입가에 진 주름이 더 많아졌다. 시간은 알람이 울리기까지 오 분도 남지 않았다. 다시 잠에 들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결국 이불 안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개는데 신경이 예민해진 탓인지 어머니도 눈을 번뜩 떴다.

  “비가 오네……”

  그녀는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무릎 위에 얹어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아침식사 하시겠어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천천히 초점이 흐려졌다.

  “아니에요. 제가 준비할게요. “

  시작됐다. 내가 등을 돌리기도 전에 어머니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잰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가스불 켜는 소리가 빗소리를 연상케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밥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가 올 때마다 당신이랑 갔던 공터가 떠올라요. 그때도 갑자기 비가 내렸지만 그만큼 더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요. “

  어머니가 주걱으로 밥을 퍼올리며 말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더 가봤으면 좋겠어요.”

  어디를 말한 걸까. 우선 내가 부모님과 함께 비 오는 날 어디론가 간 일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내가 태어나기 전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찍었던 가족사진을 보며 밥을 한 숟가락 퍼 올렸다. 눈에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아버지였지만 방긋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옆에는 나를 안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정말로 아버지를 사랑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까지 빚이 많은 걸 알았음에도 결혼을 택한 건 사랑 말고는 이유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좀 빨리 왔네?”

  설이가 내 책상 앞으로 와 말했다. 교실에서 조용히 먹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는 바람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내 앞자리에 아예 엉덩이를 붙여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번주에 집은 잘 들어갔어? 오늘 비 와서 그런지 너무 꿉꿉하다. 그렇지?”

  질문이 끊임없이 나왔다. 어떤 걸 먼저 대답해 줄지 하다 결국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방이나 옷자락 따위가 잔뜩 젖어 있었다. 복도에서 우산을 털지 않고 들어온 학생들 탓에 교실 바닥이 물로 흥건해졌다. 괜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이는 내 시선을 한 번 보더니 젖은 우산을 들고 들어온 친구를 향해 검지를 세웠다.

  “야, 우산 털고 와. 바닥 미끄럽잖아.”

  설이의 말을 들은 아이는 곧장 복도로 나가 우산을 털었다.

  “웬일이냐. 네가 교실 바닥을 다 신경 쓰고.”

  “이제 좀 쓸 때 됐잖아. “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참 동안이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당장 다음 주라고 했다. 담임의 안내를 해주고 반 학생들 중 뒤로 나가 떠들거나 나가서 캐치볼을 하는 학생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 대부분 교과서와 노트를 펼쳐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가만히 있기는 민망해서 수업시간에 애들을 따라 쓴 수업 필기를 조금씩 읽었다.

  “강우야, 너 공부해?”

  수학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이곳은 한국인데 영어와 숫자가 훨씬 많은 교과서를 보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던 찰나 설이가 내 옆으로 왔다. 그는 내가 대충 적었던 필기들을 소리 내어 읽다가 ‘연습 문제 3-1’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너 이거 풀 수 있겠어? “

  그가 손가락을 가리킨 문제를 읽어 보았다. 삼각형 그림에 여러 갈래로 이어진 선분, 문제는 빈칸에 들어갈 숫자를 적으라고 했다. 볼멘소리를 내다 그냥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이가 잠시만, 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노트와 펜을 들고 다시 내 앞으로 왔다.

  “자, 봐바. 이런 문제는 보조선을 긋는 게 정말 중요해. 여기 이렇게 보조선을 그으면 직각 삼각형이 나오지? 그럼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이용해서 이 길이를 구해. 반대편도 똑같이 하면 보조선과 선분이 닿는 점을 중심으로 양 쪽의 길이가 구해지지? 그럼 이 두 값을 더하면 돼.”

  말을 마친 설이의 어깨가 으쓱였다.

  “좀 멋있었냐?”

  그가 손가락으로 코를 쓱 훔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부러웠다. 책에 나와있는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그저 실없는 글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부러움이 드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때로는 성적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모르는 문제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일부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었다. 그러곤 한 번도 빠짐없이 한숨이 나왔었다. 평범하게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대학에 가고 직장을 얻는다는 그 평범함이, 나는 부러웠다.

  “고마워. 알려줘서.”

  서로 문제를 물어보는 학생들을 봤을 때, 그들은 늘 풀이가 끝나면 이런 말을 건네곤 했었다. 나도 한 번 그들을 따라 설이에게 이 말을 해보았다. 고개를 드니 설이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일부로 감정을 숨기는 듯했지만 어깨까지 들썩이는 바람에 쉽게 숨겨지진 않았다.

  “그, 그래! 또 안 풀리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그가 뒤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뒤에서 보이는 그의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강우야, 급히 2학년 교무실로 와야 할 것 같다. “

  역사 시간이었다. 역사 선생님은 늘 종이치고 약 삼 분 뒤에 교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종이 울리고 오 분 가량 뒤에 교실 문이 열렸다. 매일 그는 교탁 앞에 서면 기다란 회초리를 칠판에 두드렸는데 오늘은 곧장 나를 불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반 학생들의 시선에 모두 내게 쏠렸다.

  교무실까지 가는 길은 어딘가 어수선했다. 교실 곳곳에는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선생님의 수업 소리가 흘러나왔고 창밖은 빗소리가 은은하게 귀에 들어왔다. 먹구름이 낀 탓에 모든 복도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다. 한 발자국 발을 디딜 때마다 복도에 남은 물기 때문에 삑, 삑 소리가 났다. 아침보다 비가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모든 냄새의 농도가 더 짙어진다. 냄새뿐 아니라 감정과 무기력함의 농도도 한층 더 짙어졌다. 그리고 교무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공기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내린 덕분에 그 무게는 평소보다 더 무거워진 듯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수화기를 든 담임의 앞에 서서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도 내가 왔음을 알고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가 갑자기 펜을 꺼내 포스트잇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책상을 보니 주소 같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게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넸다. 그가 의자를 돌리고 허리를 숙여 양 팔꿈치를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다.

  “강우야, 조퇴증 써줄 테니까 여기로 서둘러 가봐야 할 것 같다. “

  포스트잇을 들여다보았다. 구파발이면 엄마가 일하는 마트다. 그 옆에는 병원이란 단어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교통비 있지? 교실로 돌아가서 가방 챙기고 나오렴.”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어렴풋이 짐작은 갔다. 분명 비가 내 감정을 증폭시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차분히 내려앉았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 가방과 짐을 챙길 때도, 모든 반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쏠릴 때도, 조퇴증을 보일 때도, 이른 오후에 교복을 입고 버스에 올라탈 때도, 내 심장 박동은 평소보다 더 천천히 뛰었다.

  

  “김애란 씨 아드님 되시죠?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새하얀 유니폼을 입은 그녀가 나를 인솔한 곳은 뇌신경 센터였다. 진료 대기석에는 혼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자식과 팔짱을 끼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등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곳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한 병실 앞에서 멈추었다. 문이 열렸을 땐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근무 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으셨어요. 혹시 어머님께서 치매를 앓고 계셨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내뱉어졌다. 비가 오는 날마다 나를 아버지와 착각하는 것, 어쩌면 그게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었던 걸까. 입을 열려다가 그냥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료 기록을 보니 2년 전에 치매 초기를 진단받으셨는데 그 뒤로 내원을 하지 않으셨어요. 이게 증상이 급격하게 더 심해지셨거든요. “

  그녀가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내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킬 수 없는 건 어머니가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도 아닌, 2년 전에 치매를 진단받았다는 사실도 아닌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냐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였다.

  “깨어나시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우선 지금은 진정제를 투여해서 조금은 걸려요. 아마 내일 오후 전에는 일어나실 거예요. “

  “네. 감사합니다. “

  간호사는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 병실을 나갔다. 굳게 닫힌 문을 보자 수납금이 얼마인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러나 밖으로 나간 그녀를 쫓아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어머니가 누운 침대 옆에 간이침대를 꺼내 앉았다. 편안해 보였다. 빗줄기가 창문을 거세게 두드리는데도 어머니는 몸 한 번 움찔거리지 않았다. 빗줄기와는 달리 어머니의 팔부터 연결된 링거액은 아주 천천히 떨어졌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하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 본 간호사였다. 그녀는 잘 개어진 옷가지를 내게 건넸다. 누렇게 떼가 탄 흰 티, 다 해져서 하얗게 드러난 청바지. 어머니가 출근하시며 입었던 옷이었다. 물에 젖어 무게감이 있었지만 아직 어머니의 향이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옷을 한 번 털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이번엔 청바지를 잡고 세게 한 번 털었다. 그런데 바지 주머니에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황금빛을 띤 기다란 줄 끝에는 둥근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펜던트를 주워 옷 앞섶으로 문질러 닦아 보았다. 뚜껑 안에 자그만 사진을 넣을 수 있는 펜던트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는 주름과 하얗게 뻗친 머리가 하나도 없는, 젊은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우산을 쓰지도 않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함께 담긴 풍경을 보자니 공원 내지 숲 같았다. 그때, 문득 어머니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나는 펜던트를 꽉 쥐었다.


  그날 밤, 늘 잠잠하던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 위로는 정 설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누군가 통화를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벨소리가 연신 울리도록 내버려 두었다간 어머니가 잠에서 깰 것 같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밥은 먹었냐?”

  그 말을 듣고 곧장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숫자 일 모양을 띄고 있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점심도 먹지 못 해서 배가 고플 법도 한데 배꼽시계가 고장이 났는지 딱히 알림이 울리지는 않았었다. 나는 그냥 왜,라고 물었다.

  “왜긴 왜야. 원래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끼리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식사 여부잖아. 안 먹었으면 나와. 앞이니까. “

  그의 말에 볼멘소리를 내다 손차양을 하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낮지 않은 층수에 설이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기 서있는 남자가 설이라는 걸.

  “어휴, 야자는 조퇴 신청서 냈으니 합법적인 외출이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나와. “

  “응……”

  통화가 끊기고 침대에 누운 어머니를 보았다.


  회전문을 타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위에서 보였던 설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설이가 장난을 쳤고 우연히 그와 닮은 다른 사람과 착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회전문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왁! 하고 나를 놀라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며 짧게 비명을 질렀다. 설이었다. 그는 반응에 만족한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등에 맨 커다란 책가방은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다시 표정이 돌아오자 그도 웃음을 멈추었다.

  “너 제육 좋아해? 여기 우리 집 근처라 내가 맛집이란 맛집은 전부 알고 있거든. 근데 저기 건너편에 있는 기사식당 제육볶음이 제일 싸고 맛있어.”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가 앞장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커다란 몸과 책가방에 비해 그가 든 우산은 실없이 작았다.


  설이는 가게를 들어서부터 식당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모, 사장님이란 호칭도 아닌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아들내미 왔다고 크게 말했다. 식사 중이던 기사님들도 설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문득, 그가 어머니와 외식을 왔다가 나를 만났다는 말이 떠올랐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을 테지만 누가 보아도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보였다.

  “설이, 너 곧 시험이라고 하지 않았니?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이 양반아, 그게 중요해? 난 설이가 건강하게만 자라는 것만으로 충분해.”

  이윽고 주방 안에서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잰걸음으로 나왔다. 그녀는 아들, 하면서 설이를 껴안았다. 그러곤 시선을 내게 돌리더니 설이 친구냐고 물었다.

  “같은 반 친군데 여기 한 번쯤은 데려 오고 싶었어요.”

  “어휴, 설이 친구면 너도 내 아들이나 다름없지.”

  그녀가 다가오더니 내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의 앞치마에서 온갖 채소와 고기 냄새가 풍겼다.

  “그럼 저 얘랑 제육 먹게 제육볶음 두 개만 주세요.”

  “기다려봐. 아들내미 저녁상인데 제일 맛있게 해 줘야지.”

  설이의 말에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설이는 주방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책가방을 내려놓자 바닥에 물이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그의 앞으로 가까이 들이밀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기 너희 부모님 가게야?”

  “아니? 나 엄마 아빠 모두 어렸을 때 돌아가셨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처음 들은 사실이다. 물론 그와 제대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기에 모를 법도 하지만.

  “아, 몰랐겠구나. 아무튼 부모님 돌아가시고 곧바로 센터로 가긴 했지만 거기 수녀님들보다 여기 사장님이 더 나를 챙겨주고 예뻐해 주셨어. 그러니 우리 엄마랑 다름없지.”

  보통 내가 알기론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아이들은 불량아가 되거나 음침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런데 설이는 그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렇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고기가 익는 냄새가 풍겼다. 그 모든 자극들은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내 감각들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일으킨 반응은 침샘에서 아밀레이스가 분비되었다. 침을 삼키거나 입을 다시는 걸로 고인 침들을 빼려고 했지만 금세 다시 고이기를 반복했다. 두 번째로는 연신 주방으로 돌아가는 고개를 멈출 수 없었다. 내 몸이 서둘러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결국 나는 아예 주방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설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의 어머니와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고개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번뜩이게 한 건 설이의 볼멘소리였다.

  “담임이 알려줬어. 네 어머님께서 입원하셨다는 걸. 내가 따로 가서 물어본 거니 걱정은 하지 말고. 암튼…… 그래서 좀 걱정이 돼서 찾아왔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려는데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육볶음이 올라왔다. 불향을 입은 돼지 앞다리살과 양파, 파 위에는 깨가 얹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설이에게서 제육을 향해 옮겨졌다. 설이도 이미 젓가락을 집어 든 지 오래였다.

  “근데 설이 친구 이름을 내가 못 물어봤네. 아들은 이름이 뭐니?”

  고기를 씹다가 그녀의 질문에 턱관절을 빠르게 움직였다. 덜 씹힌 고기가 힘겹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강우입니다. 한. 강. 우”

  “강우? 어째 설이랑 이름도 비슷하네. 눈이랑 비. “

  나는 설이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아, 맞아. 이거 너 줘야 해.”

  설이가 밥을 먹다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축축한 가방 안에서 물기가 묻은 종이 쪼가리가 꺼내져 나왔다. 잉크가 살짝 번지긴 했지만 희미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번 시험범위랑 금요일까지 제출할 숙제야. “

  포스트잇에는 각 괴목마다 교과서 페이지가 적혀 있었고 종이에는 수학 문제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마다 자그마한 숫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정 모르겠으면 거기에 보이는 답만 써. 어차피 풀이과정은 노트에 썼다고 하면 되니까. 아마 틀린 답은 없을 거야. “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설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시선을 피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숨기지 못했다.

  “그냥…… 돌잡이 때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할 거라고 하잖아. 내 돌잡이 때 내가 무엇을 잡았는지는 몰라. 그런데 아무리 어렸던 나라도 부모님의 장례식날 처음으로 손에 쥔 게 연필이었다는 건 기억이 나.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라고 생각을 했어.”

  “대학에 가면 뭘 하는데?”

  “어……음…… 거기서도 공부를 하겠지? CC도 해보고 미팅도 해보고 캠퍼스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도 읽고…… 결국엔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겠지?”

  연신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설이도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말을 돌리려는지 갑자기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너는 대학에 갈 생각 있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목표로 삼았고 그 목표를 이루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그런 환경에서 그런 학생들을 봐왔기에 나도 대학에 대한 호기심은 없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이 졸음을 깰 겸 내뱉는 말은 대부분 선생님의 대학생 때 일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그러나 그 상상은 곧 커다란 빚더미에 눌려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 번은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빚에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면…… 거기에 이자를 빼고 계산을 하더라도 내가 퇴직을 하기 전까지 돈을 끌어 모아야만 했다. 그럼 이 상상을 하고 싶어도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그냥……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하루빨리 이 빚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우리에게 빚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라는 질문이 피어올랐다. 그럼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저렇게 되지 않으셨더라면?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퉁명스러운 대답에 설이는 다시 고기와 양파를 함께 집어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택시 기사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설이는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어질러진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도 주방에서 나와 그를 도왔다.

  “다 먹고 치우지.”

  “곧 퇴근하는 직장인들 저녁 시간인데 손님들 몰려오면 엄마 힘들잖아요. “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다가 다시 식탁을 빠르게 치웠다. 나도 괜히 보고만 있기 민망했다. 젓가락을 내려두고 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인기척과 동시에 둘은 괜찮으니 마저 먹으라고 손사래를 쳤다. 설이가 나를 식탁에 앉혔다. 그런데 왠지 둘의 모습을 보자니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분명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 모자관계처럼 다정하고 따듯해 보였다.

  “근데 설이, 공부는 잘 돼가니.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운동도 좀 하고 책도 좀 사 읽고 해.”

  그녀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에서는 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가 꺼내져 나왔다. 설이는 고개를 여러 번 가로저으며 몸을 돌렸지만 그녀는 억지로 설이의 주머니에 지폐를 넣어버렸다.

  “엄마, 이런 거 안 주셔도 된다니까요? 그냥 엄마 예쁜 옷 사 입으세요.”

  “맨날 여기 박혀서 일만 하는데 옷이 뭐 필요해. 그냥 아르바이트비라고 생각하고 가져가.”

  설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얘기를 해봤자 그녀를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아는 듯했다.

  다시 설이가 앉았을 땐, 주변 식탁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제육볶음에는 김이 모두 식었지만 그는 처음 먹는 것처럼 고기를 욱여넣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설이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하고 싶어서?”

  “응. 하고 싶어서. 너도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수업 마치고 바로 아르바이트도 가고 그렇겠지. 똑같은 거야. 너랑. “

  “어……”

  나랑 똑같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내게 꽂히는 말인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설이를 바라보았다. 입이 씰룩였다. 단 한 번을 털어놓지 못 한. 턱 끝에서 삼킬 수밖에 없었던 말이 일렁였다. 그 파도가 해일이 되어 덮쳐진 건, 알 수 없는 울컥함이었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 어머니가 건강해지고 빚을 빨리 갚고…… 학교에서 다른 애들처럼…… 공부라는 것도 해보고 싶어. “

  말을 뱉고도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설이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시선을 내 콧잔등에 고정시켰다.

  “그래. 나도 네가 같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그럼 네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보자.”

  띠링,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렸다. 그 뒤로는 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들어왔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바짓단이 빗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서둘러 먹자. “

  설이의 저작운동이 훨씬 빨라졌다. 나도 그의 속도를 따라 젓가락질을 하는 속도를 높였다.

  병원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말했지만 점점 몰려오는 손님들에 그의 동공은 미친 듯 흔들렸다. 안 데려다줘도 괜찮으니 그녀를 도우라고 했다. 설이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곤 우리가 먹은 식탁을 치웠다. 여전히 은은하게 풍기는 비냄새는 비릿하기만 했다.


  비가 그쳤다.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도 비가 그침과 동시에 멈추었다. 먹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달빛이 내려왔다. 나는 펜던트를 손에 쥔 펜던트를 연신 매만졌다. 손바닥엔 쇠냄새가 났다. 빗소리가 멈추니 어머니의 팔괴 연결된 링거에서 약물을 섞은 액체 포도당 떨어지는 소리가 천천히 들렸다.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쉽사리 눈이 감기지는 않았다. 천장에 보이는 얼룩무늬 개수를 세어보아도, 링거액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호흡을 해보아도 머릿속을 맴도는 설이의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 우선,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일단 뒤로 밀어냈다. 그럼 어머니가 낫는 것과 빚을 빨리 갚는다는 전제가 남는다. 그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뭘까. 창밖이 고요하니 병실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증폭되는 듯했다. 어머니의 숨결 소리, 링거액 소리, 복도에서 울리는 발소리와 휠체어를 끄는 소리. 이성이 끊어지기에 충분한 소음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엄지로 펜던트를 더 매만졌다. 설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엄마라고 부르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 늦은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 빚을 모두 갚은 우리 집, 아버지를 찾지 않는 어머니. 그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다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잠에 들고 싶다. 빨리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빨리 정하고 싶다. 아니, 누가 정해줬으면 좋겠다. 무엇이 옳은 선택지인지.

  남은 두 선택지를 저울질하기엔 도무지 한쪽으로 가라앉은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붕 떠버린 쪽은 다신 휘어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늘 담뱃갑에 어머니의 사진을 끼워 넣으셨다고. 그래야 적어도 하루에 스무 번은 얼굴을 보지 않냐면서. 너무 어렸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었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에 왜 어머니의 사진을 넣은 거지? 그런데 지금 비가 오는 날마다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릴없는 기다림은 그만큼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버지처럼? 그러기엔 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럼 마냥 아들처럼? 그러기에도 비가 오면 나는 아들이 아니게 된다. 그럼 나는 뭐지? 해가 뜨면 아들, 비가 오면 아버지인가? 그러면 아버지만큼 난 어머니를 사랑하나? 자식 간의 사랑과 부모 간의 사랑이 같을 수 있나? 그럼 나는 어머니의 아들임은 불변의 전제이다. 그럼 오롯이 나는 어머니의 아들뿐인가? 나는 누군가의 지인일 수 있다. 고깃집 사장님의 아르바이트생이자 담임의 제자이자 설이의 같은 학급 친구이다. 그런데 이건 모두 남이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에게 나는 누구일까. 서둘러 빚을 갚고 싶어 하는 사람? 비가 오는 날마다 어머니를 모른 척하는 사람? 대학이란 곳을 가보고 싶은 학생? 도무지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박동수가 빨라질수록 소리는 점점 데시벨을 높여갔다. 다행이다. 이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소음들이 심장의 소리에 묻혔다. 질끈 감았던 눈에 힘을 스르륵 풀었다. 똑딱거리던 시계는 어느덧 새벽 세 시를 가리켰다. 무언가 번뜩이는 듯했다. 이는 이윽고 내 두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사장님, 집에 사정이 있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동안 일 한 월급은 내일까지 보내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의 육두문자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분이 덜 풀렸는지 전화가 끊어졌음에도 전화벨은 세 번을 더 울렸다. 다시 내리는 비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다 큰 어른이 학생한테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다니. 뭐, 상관은 없었다. 아직 둘째 주도 넘기지 않아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굳이 받아도 상관이 없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퇴원을 했지만 여전히 나를 당신이라고 불렀다. 장마가 그치기까진 아직 이틀이 남았다. 나는 아직까지 울리는 스마트폰을 뒤집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지구과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름에 장마는 두 번 온다고 했다. 한 번은 기온이 올라가서, 다른 한 번은 기온이 내려가서. 즉, 장마는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었다.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비였다.

  “당분간 일 나가지 마세요. 저랑 갈 곳이 있어요. “

  어머니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일이다. 나는 펜던트를 꽉 쥐었다.

  역시나 담임은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부모님 동의를 얻어오라는 말에 곧장 어머니의 서명을 보였다. 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강우야, 이런 건 부모님뿐 아니라 선생님이랑도 상의를 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거야.”

  도무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가방을 챙기려 교실로 돌아갔다. 나를 본 설이는 눈을 둥글게 뜬 채 책상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지만 쉽사리 그의 입술이 떼지 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침을 크게 한 번 삼키고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기다린다.”

  “응…“

  설이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로 어떤 말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부릅뜬 눈을 보니 내 생각을 모두 읽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가방을 올려 매고 꽂아둔 우산을 꺼냈다. 학교 운동장은 비에 젖어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교문으로 향하는 내내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곤 했다. 우리 교실이 있는 층, 그 창문에는 설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나는 덥석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갈 곳이 있습니다. 어서 준비하세요.”

  어머니가 직장에 돌아갈 때까지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분주한 내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 비가 그치기까지, 하늘에 떠오른 저 먹구름이 내게는 일종의 카운트다운이었다.

  “당신, 일은 어쩌고 벌써부터 집에 와요?”

  “연차 냈어요. 그러니 서둘러 옷 갈아입으세요. “

  “… 옷이요? “

  “네. 기왕이면 옷장에서 가장 예쁜 옷으로 입으세요.”

  어머니가 비 내리는 창문을 한 번 바라보았다. 무언가 거짓말을 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 어머니의 눈을 살짝 피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 짐들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가방을 올려 매니 어깨가 축 처지는 듯했다. 몸을 한 번 들어 올리는 걸로 흘러내리는 가방을 고쳐맸다. 옷을 갈아입은 어머니가 나왔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입은 새하얀 원피스는 펜던트서 보았던 그 옷과 같은 옷이었다.

  “예쁜 옷이네요. 밖에 비 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어머니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절로 눈이 감기게 하는 냄새였다. 포근하고, 따듯하고…… 편안했다. 나는 잠시 이 냄새에 취해 있기로 했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나세요?”

  신발을 갈아 신기 전에 어머니에게 펜던트를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이 어디에 멈춘 건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다트 바늘처럼 꽂히는 예감은 쉽사리 빼낼 수 없었다. 이 장마가 지나기 전에…… 이틀 남짓 남은 이 시간 안에 어머니를 그곳에 데려가야만 한다.


  끈적이는 공기가 살갗에 와닿았다. 비릿한 비냄새는 향수의 진한 향기를 덮기에 충분했다. 차들이 도로마다 고인 빗물을 지날 때마다 색이 점점 까맣게 물들었다. 나는 한 손에 펜던트를 쥐고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단서가 될 만한 건 굵직한 소나무와 그 주변을 채우는 나무 울타리. 그게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우선 동네 공터를 모두 가보았지만 일치하는 장면은 없었다. 오래간만에 오랜 산책에 어머니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시곗바늘은 벌써 저녁 식사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아직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마를 짚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민망해진 나는 그녀를 따라 웃었지만 이윽고 그녀의 배에서도 같은 소리가 울렸다.

  “식사, 하실래요?”

  때마침 눈앞에 어머니가 입원했던 병원이 보였다.

  “어머, 여기에 병원이 지어졌네요? 되게 크다……”

  어머니가 우산을 살며시 들고 높은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굵어진 빗줄기가 신발을 흠뻑 적신다는 것도 모르는 듯 그녀는 병원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본인이 일을 하다가 입원한 곳이라는 것도 모르고……

  “밥 먹고 가요. 근처에 소개받은 맛집이 하나 있어요……

  무작정 어머니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는 내게 끌려가는 중에도 처음 상경을 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지역이 재개발이 된 지 얼마 안 됐다고는 들었는데 그녀의 시간은 아마 재개발이 되기 전에 멈추었다고 추정했다. 병원 앞에 쇼핑몰도 재개발이 된 후 생겼고 더 높은 급여를 준다는 말에 최근에 일터를 옮겼으니 아마도 직장이 저 큰 쇼핑몰이라고는 당연히 알지 못할 거다. 어머니는 쇼핑몰 주차장에 시선을 떼질 않았다.

  “나중에 저기 한 번 가볼래요? 당신 전에 정장 다시 하나 맞춰야 한다고 했잖아요. 저기 가서 보는 거 어때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난 그녀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아버지…… 정장……


  “이게 누구야! 전에 온 설이 친구 아니냐?”

  식당 문을 열자마자 아주머니가 밝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비에 젖은 우산을 털고 통에 넣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였다.

  “사복 입은 모습은 처음이네. 밥 먹으러 왔어?”

  설이가 그녀 옆에 서서 말했다. 그는 음식물 찌꺼기와 물기에 젖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들어온 어머니를 보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어머니도 그를 따라 허리를 반쯤 숙였다.

  “당신 친구예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

  당신이란 말에 설이가 잠시 눈을 둥글게 떴다. 놀란 그를 보고 나는 손사래를 쳤다. 다행히 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치가 빠른 설이었기에 더 이상 나와 어머니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진 않을 것이다.

  “넌 당연히 제육일 테고, 어떤 걸로 드신대? “

  설이가 손바닥으로 어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제육 두 개.”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을 향해 브이자를 보였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재워둔 고기를 꺼냈다. 설이는 음식이 나오기까지 어질러진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다. 차곡차곡 그릇을 쌓고 있었지만 그의 곁눈질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칠 때면 실소를 터뜨리곤 했다. 무언가 잘못 생각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설이를 정식으로 어머니께 소개해줄걸. 아들의 첫 친구라고. 문이 열리며 들리는 종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나가면서, 다시 들어오면서…… 설이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도 남들이 이렇게 안쓰럽게 바라봤겠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빨리 의자에 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또 문이 열리며 단체 손님이 들어왔다. 설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설이라도 힘들고 싫은 일이 있구나.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공깃밥 두 개와 제육이 놓였다. 전에 먹었던 밑반찬에 달걀 프라이가 추가되었다. 나는 프라이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음식을 내려놓는 설이를 보았다.

  “원래 이것도 줬어?”

  “아니, 원래는 안 주는데 특별 친구 서비스.”

  설이가 웃으며 말하다 곧장 손님이 들어온 곳을 향해 잰걸음으로 갔다. 시장에서 팔 법한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설이야, 하고 부르는 걸 보니 택시 기사들의 자리였던 것 같았다. 그때, 그들이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얼굴을 어머니 가까이에 들이대고 그들이 보이지 않게 손차양을 했다.

  “잠시만 식사하고 계세요. “

  주머니에 넣어둔 펜던트를 꺼냈다. 그리고 무작정 그들에게 사진을 들이 밀어 보였다.

  “실례지만 혹시 이 사진에 보이는 곳이 어딘지 아실까요?”

  “어휴, 우리가 그것만 보고 아나.”

  “그래도 저보단 많은 곳을 다녀보셨을 거 아니에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볼캡을 쓴 남자가 마지못해 인상을 찡그리며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옆에 있던 기사들도 사진에 시선을 돌렸다.

  “음,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박 씨는 알겠어?”

  “내도 처음 보는 곳인데. 이것만 보고는 몰려.”

  그들이 앉은 식탁 위로 제육볶음과 고등어 정식 등이 올라왔다. 이미 고개를 돌린 기사들은 숟가락을 들고 콩나물국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한 명, 조 기사라고 불리는 남자가 음식이 온 것도 모른 채 연신 사진을 바라보았다. 중간중간 볼멘소리를 넣던 그는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여기 거 아이가? 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여기서 웬간 남자 하나랑 여자 하나가 비에 잔뜩 젖어가지곤 내 택시에 탔다 아이가. 내가 그 시트 닦느라고 빼 빠지게 고생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을 조 기사 가까이에 기울였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내 하도 오래돼서 이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데. 그 짝이 재개발이 된다카면서 어지간한 공터라곤 다 갈아 엎었는디 아직 거가 남아있는 건 나도 잘 모른다. “

  “괜찮아요. 어디에 있는 지만 알려주세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연신 움찔거리는 그의 입술에 차마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조 기사가 혓바닥을 날름거릴수록 손은 더 빠른 속도로 떨려왔다.

  “이…… 근데 이기 서울은 아니데. 내가 소싯적에 부산에서 택시 했을 때 갔던 곳인디, 와 자꾸 묻고 그라노? 갈라꼬?“

  빈 그릇을 치우는 설이가 안절부절못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선뜻 내가 던지는 질문을 말리지 못하는 듯했다. 점점 더 조 기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야가 밥 먹을 땨는 개새끼도 안 건드린다 카던데 와 이리 말이 많노. 암튼 젖은 시트 닦느라 좆같었다는 거 말고는 해 줄 말 없다. 그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밥 좀 먹자. “

  그가 언성을 높이다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더 이상 질문을 던졌다간 젓가락을 쥐고 있는 저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올 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물어 어머니가 계신 자리로 돌아갔다.

  “어머니, 서둘러 먹읍시다. 좀 멀리 가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이고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남은 잔액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최근 거래 기록이 새하얀 여백이었다. 사장이 월급을 보내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잘 먹었습니다.”

  아주머니와 설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냈다. 아주머니는 돈을 받지 않으려 내 손을 밀어냈다. 결국 나는 설이의 앞치마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고 손을 흔들었다.

  “야, 우산 가져가야지.”

  가게 문 틈 사이로 설이가 우산 두 개를 쥐고 흔들었다. 어머니를 잠시 상가 옆에 서 계시라고 한 뒤 우산을 받으러 갔다.

  “고맙다. 헛걸음할 뻔했네.”

  “고마우면…… 아니다, 아니야.”

  “뭐야, 싱겁게.”

  “돌아오면 잠깐 우리 집 들려. 다 푼 문제집 몇 권 줄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굵었던 빗줄기가 조금은 얇아졌다. 근처 구파발역까지는 오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무언가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찰박거리는 바닥 때문일까,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일까.

  고속버스 터미널역까지는 환승 없이 바로 갈 수 있었다. 환승을 어려워하는 어머니였기에 차라리 돈이 없어 기차 대신 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인 듯했다. 곧장 이십 분 뒤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지만 우등 고속이었기에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일반 고속을 타기로 했다. 어머니는 오랜 걸음에 지쳤는지 승객 대기석에 앉아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트렸다. 미끄러운 길 탓인지 버스는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좌석에 앉아 멀뚱히 버스 시간표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나도 오랜만에 내디딘 오랜 걸음이었기에 몸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눈이 조금씩 감겼지만 그럴 때마다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러나 내 의지보다 눈꺼풀이 더 무거웠는지 한 번 감긴 눈이 쉽사리 떠지질 않았다. 그래, 잠깐 눈 붙이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잠깐이니까……


  눈이 떠졌다. 아직까지 주변은 어둡기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곧장 시계가 있는 전광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시곗바늘이 완전히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짧은바늘은 새벽 세 시를 가리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군다나 옆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고개를 숙이고 잠에 들어있어야 할 어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팔걸이 위에 걸쳐둔 우산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새벽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장 선잠에 빠진 사람들을 깨워 어머니를 보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통화 연결음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이 시간에 지하철이 운행하진 않기에 집으로 돌아갔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먼저 버스에 탔다기엔 표가 나한테 있었다. 그럼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머리를 쥐어박았지만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방과 우산을 챙겼다. 그리고 우산을 펼친다는 것도 잊은 채 터미널 주변을 뛰어 돌아다녀보았다.

  숨이 헐떡거렸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머리칼은 눈앞을 가렸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가봐야 하나. 도무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야속한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렀고 먹구름은 점점 개고 있었다. 아아, 이대로 끝인 걸까. 오늘이 지나면 장마가 끝이 난다. 무더운 여름의 시작. 여름은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왜…… 신은 나를 돕지 않는 거지. 아직까지 새벽의 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안내 데스크로 가 어머니의 행방을 물었다. 새벽임에도 단정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나는 젖은 머리를 닦기 전에 시시티브이를 확인할 수 있냐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보통 새벽 시간에는 시시티브이 화면을 꺼놔서요.”

  여자는 괜스레 내 눈을 피했다. 적어도 어머니가 언제 자리를 떴는지 그거라도 알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잡히는 정보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빗줄기는 점점 얇아졌고 아침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머니를 찾는 건 어려워진다. 나는 닦지도 않은 수건을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터미널을 다 둘러보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으니 분명 바깥이다. 우산을 펼치고 터미널 밖을 나왔다. 우산 위로는 성모병원과 신세계 백화점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었다. 말고는 층이 낮은 상가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기에 비가 그치기 전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산을 쓰지 않은 40대의 여인. 아직은 새벽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으니까…… 나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심장 박동은 느려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가 아득바득 갈렸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드높은 마천루들만이 시야를 가릴 뿐이었다. 앞으로 고개를 돌려도 넓은 도로와 뒤죽박죽 엉킨 횡단보도, 어지럽게 널려있는 간판들이 눈을 아프게 했다. 우산을 든 팔이 점점 저려왔다. 오른팔, 왼 팔 번갈아 우산을 쥐어도 오랜 시간 우산을 쥔다는 건 팔을 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끈끈함이 살갗에 달라불을수록 인상은 점점 더 찌푸려졌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개지 않았지만 이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건 나뭇잎에 맺힌 이슬뿐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 벌써 지하철 첫차가 다닐 시간이다. 여차하면 어머니가 지하철을 타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을 더 바쁘게 굴렸다.

  어디지. 어디에 가 계신 거지. 아니, 우선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비가 그쳤음에도 한동안 우산을 접는다는 걸 잊고 있었다. 장마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하지만 서늘한 아침 공기는 내 살갗에 닭살을 돋게 했다. 양손에는 각각 우산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하나는 내 우산, 다른 하나는 주인을 잃은 우산.

  문득 비가 머리칼을 적시는 것도 모른 채 하릴없이 걷기만 했을 이 우산의 주인이 떠올랐다. 비가 그친 아침에도 이렇게 쌀쌀한데 흠뻑 젖은 옷으로 이 새벽을 지새우느라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드높은 서울의 마천루들은 흔히 보인다는 산도 가렸다. 이것이 우산의 주인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내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속버스 터미널과 떨어진 지는 한참이 지났다. 이따금씩 비추어지는 햇살이 젖은 내 머리칼을 말렸다. 옷에선 퀴퀴한 냄새가 올라와 코를 막고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홀딱 젖은 옷, 양손에 쥐어진 우산, 그들이 어떤 생각을 읊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어라 하는지 알 것 같아 일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머리칼에선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차도에는 이제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클락션을 울려댔다. 짧지만 크고 우람하게 이 공간을 채우는 소리. 마치 천둥을 연상케 한다. 머리를 쓰다듬어 준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아까도 흠뻑 젖은 여자가 돌아다니지 않았어?”

  문득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 둘이 나와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곧장 둘에게 다가갔다. 물이 마르며 나는 냄새 탓에 둘은 내가 다가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여자, 지금 어디에 있죠?”

  “모르죠. 그냥 한강 방향으로 걷기만 하셔서. 한 십 분 됐나? “

  단발로 머리를 자른 여자가 친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응. 십 분 정도 지났어. 눈이 되게 퀭했어.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아,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이 말 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깜이는 신호등도, 자동차 클락션 소리도, 저려오는 다리도 모두 무시하고 그저 앞만 바라보았다. 숨이 벅차올라 가래가 들끓어댔다. 구역질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찰나, 익숙한 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옷과 머리칼은 흠뻑 젖어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듯했다. 나는 뛰던 다리를 멈추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었다.

  “어머니, 여기 계셨군요.”

  “강우니? “

  시간이 멈춘 듯했다. 어쩌면 내가 멈추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숨을 골라도 뛰는 심장은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비를 쫄딱 맞았어?”

  그녀는 옷소매를 길게 내빼어 내 머리를 닦아주었다. 나는 그냥 말없이 여전히 그녀의 살결에 남은 향수냄새를 맡기만 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여기에 있을까. 무언가 분명…… 아늑한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는 점심이 되고서야 다시 내리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어림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소리가 난 내 배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밥 안 먹었니.”

  “네.”

  “밥 먹으러 가자.”

    탑승을 못 한 버스는 결국 환불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먹구름은 하늘을 광활하게 채웠고 비릿한 비냄새가 사방에 가라앉아 있었다. 당장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비릿한 냄새를 가린 건 뚝배기 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콩나물국의 냄새였다. 날달걀을 깨트려 국 안에 넣으면 보글보글 끓는 국물과 함께 달걀의 흰자가 서서히 변성되어 갔다. 나는 약간의 국물과 콩나물, 파 등을 숟가락 위에 올려 입 안을 욱여넣었다. 절로 입바람을 불게 만드는 뜨거움이었지만 텅 빈 위장 안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

  “응? 그게 무슨 말이니. “

  “그냥…… 어머니와 가고 싶은 곳이 있었어서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안 그래도 이렇게 흠뻑 젖었는데 감기 걸린다.”

  당장이라도 어머니에게 그 장소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 주머니 안에 든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알아서 찾아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강우는 어디를 가고 싶은데? 강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난 다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다시 빗방울이 천천히 유리창을 두드렸기에.


  식사를 마치고 곧장 시간이 가장 빠른 버스표를 예매했다. 아직까지 하품이 나왔지만 이번엔 눈을 감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어머니도 고개를 꾸벅거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대기석이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누구는 통화를 하고 있고 누구는 게임을 하고 있고 누구는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북적이는 대기석 사이에 오가는 말이라곤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문득 설이의 식당이 떠올랐다. 분명 같은 시대인데 그곳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말을 걸고, 사람 머릿수가 더해질수록 주변 소음의 데시벨도 올라갔다. 분명 20킬로 미터가량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이상하게 가슴 한 편이 시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번엔 다행히 제시간에 맞게 디지털 탑승표를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멀미를 하시니 창가 쪽에 앉히고 나는 그 바깥쪽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어가 고인 빗물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에 눈꺼풀이 연신 감겼다. 이미 어머니는 고개를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점점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끈적거림은 더 짙게 느껴졌지만 처음 보는 바다는 절로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어머니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초승달을 연상케 하는 눈웃음을 지었다. 파도가 치는 가운데 빗방울이 떨어져 여러 개의 원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장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주변 공터를 모두 검색했다. 수백 개의 공터들이 떠오르고 이마를 탁 짚었다. 가까운 곳부터 차례로 가자기엔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상태였다. 비는 해가 지는 동시에 그친다고 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요. 시간이 촉박해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곧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우산을 삐져나온 옷 소매가 천천히 물에 젖어갔다. 손목이 무거워진 사실을 알고 나서야 흠뻑 젖은 소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터미널과 가장 가까운 공터에 도착했다. 주머니에서 펜던트를 꺼내 주변과 비교를 해보았지만 결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하나 더 있었다. 주변에 택시 정류장도 있으니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한 손으론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지도를 쥐면서도 뒤따라 걷는 어머니를 향해 연신 고개를 돌렸다.

  큰 도로에 여러 대의 택시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움켜쥔 우산을 더 세게 쥐었다. 머릿속은 제발 이곳이 맞기를 읊어댔다. 손님을 기다리는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워댔다. 비는 냄새의 확산을 더 짙고 넓게 퍼트린다던데, 평소보다 더 새하얀 연기들이 피어오르다 은연중에 사라졌다. 옛날에 저 중에 조 기사란 사람도 있었겠지. 문득 설이네 식당이 떠올랐다. 설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마 걷지 않아 곧장 공터가 보였다. 나는 발걸음의 보폭을 넓혀 더 빠르게 공터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소나무는커녕 주변 잡초밭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였다. 절로 나오는 한숨은 쉽사리 멈출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래도 좌절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다음 장소로 향하려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문자 발신자 명에는 설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문자는 짧은 글이 아닌 긴 텍스트와 사진 하나였다. 그 위에는 선명하게 부고장, 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곧장 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강우야.”

  “무슨 일이야? “

  “응…… 식당 엄마가 돌아가셨어. 역에서 식당까지 오는 계단 알지? 아침에 출근을 하시다가 빗길에 넘어지셨나 봐…“

  그의 풀 죽은 목소리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볼멘소리밖에 낼 수밖에 없었다.

  “못… 오겠지? ”

  “응? “

  “우리 엄마 장례식. 내가 상주 서기로 했거든. “

  스마트폰을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생각을 했었다. 이런 비극을 내 주변 누군가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빌어먹을 하늘은 도무지 내 소원을 들어주질 않았다. 발가락을 웅크려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입술에 침을 한 번 묻히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끝나면…… 꼭 갈게. 그러니까 어머님 곁을 잘 지켜드려.”

  “응. 고마워.”

  잃는다는 건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게 하는 것. 몸이 떨리면 잇따라 눈이 텅 비워졌다. 나는 두려움이 드러나는 게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몸이 떨리는 건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자동차가 고인 빗물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비는 냄새만 확산시키는 게 아니었다. 소리도, 감정도 안개처럼 홀연히 공기 중을 떠돌게 했다. 증폭된 것들이 내 살갗에, 귓바퀴에, 눈동자에, 코에 맴돌 때마다 우산을 꽉 움켜쥐었다. 손이 천천히 파랗게 질려갔다. 땀이 손바닥을 흥건하게 적셨지만 쉽사리 손에 힘이 빠지질 않았다.

  설이의 텅 빈 눈동자가 떠오르면 절로 그의 눈을 따라 눈앞에 초점이 흐려지는 듯했다. 그 두려움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론 위로가 되지 않는 것도 안다. 어깨를 토닥이는 것도 내 감정을 전할 순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여보, 무슨 전화예요? “

  어머니가 떨리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어찌나 손이 떨렸는지 내 손 위로는 어머니의 자글자글한 두 손 모두 덮여 있었다. 바닥엔 어머니의 우산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적시면서도 내 떨리는 손을 꼭 붙잡았다. 심호흡을 몇 번 내쉬었다. 덕분에 금방 진정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어머니 같은데 왜 내가 위로를 받는 걸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괜찮아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서둘러 움직입시다. “

  억지로 미소를 보이자 내 손을 쥔 자글자글한 어머니의 손의 힘이 약해졌다.


  다음 보이는 곳은 깨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땀이 옷을 적시고 있었다. 어머니도 슬슬 숨을 헐떡이고 계셨다. 오랜 걸음이 지루했는지, 헐떡이는 숨을 감추려고인지 어머니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문득,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어디로 가신 건지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괜스레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다 어렵게 입을 떼었다.

  “어머니, 근데 아까는 어디로 가시려고 한 거예요? “

  “당신, 앉아서 주무시면 늘 목 아프다고 목베개를 끼우고 주무셨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베개를 파는 곳이 있나 찾아다녔죠.”

  “……”

  “그나저나 당신 앉아서 주무셨을 텐데 목은 좀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베개 하나 가져다 드릴까요.”

  진심 어린 어머님의 눈빛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 무뚝뚝하다던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와 결혼을 할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천둥소리가 머리 위로 크게 울려 퍼졌다. 놀란 어머니는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고 나는 덜컹거린 가슴을 잡아 진정시켰다. 천둥소리를 시작으로 빗줄기가 훨씬 더 굵어졌고 빠르게 떨어졌다. 빗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차도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소리를 훨씬 더 크게 키웠다. 라이트의 빛 번짐이 행을 이루며 퍼졌다. 그 뒤에는 바다의 짭짤한 냄새, 잠깐동안 이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구름은 장마를 끝나기 전에 남아있는 물들을 모두 쏟아낸다고 했다. 서둘러 찾아야만 한다.

  우산이 앞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세찬 비마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간신히 다음 공터에 도착은 했으나 도무지 펜던트 안에 사진과 비교를 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간다면 보이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천천히 빗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종이 다른 나무, 모두 가지가 쳐진 잡초들. 아무리 봐도 사진과는 다른 장소였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마를 탁 짚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사람이 설이 말고는 없을 텐데.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떠오른 이름을 확인했다. 담임의 전화였다.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우선은 전화를 받기로 했다.

  “강우니? ”

  “네, 무슨 일이신가요? “

  “설이가… 이상해서. 잠시 장례식에 왔는데 애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벽지를 뜯고 있어. 어떻게 된 건지 네가 아니? ”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설이가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

  “하. 내가 이 녀석에게 괜히 그런 부탁을 해서……”

  설이의 한껏 높아진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괜스레 나는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워 스마트폰을 쥔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워낙 네가 애들이랑도 잘 못 어울리고 집안도 어려우니까 성격은 다르지만 처지는 비슷한 설이한테 부탁을 좀 했거든. 강우 너 좀 잘 챙겨달라고. 그러면서 애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 혹시 내가 어려운 부탁을 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해서……”

  “끊겠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점점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줄어들고, 아직 지도에 표시해 둔 공터는 한참이 남았는데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걸까. 어머니는 여전히 두 손으로 우산을 꼭 쥐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모든 의욕이 떨어지는 이 빗방울처럼 뚝 떨어지는 듯했다.

  어쩌면 설이의 가슴에도 흉터가 남아있는 걸까. 어머니가 변한 뒤 내 심장박동이 느려진 것처럼 설이도 부모님을 일찍이 여의고 무언가 가슴 깊은 곳에 박혀버리게 된 건 아닐까. 어차피 표현은 본인의 자유이다. 감추어도, 드러내도 잘못된 건 절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각박한 세상은 그 두 가지 모두를 틀렸다고 말하니…… 그가 좌절에 잠긴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될 것 같다. 어머니가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롯이 내 생각뿐이라고는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 구름은 이제 남은 모든 빗방울을 모두 털어내었다. 구름이 개는 속도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빨랐다.

  “강우야, 여긴 어디니……? 분명 한강 부근에서 밥을 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어머니가 머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늦었구나. 이제 이 모든 행보를 돌이킬 수는 없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머니에게 장마철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말해드렸다. 어머니는 처음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글게 떴다가 점점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그곳에 가볼래? 아직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거든. 너희 아빠랑 처음으로 만난 곳이니까. “

  그녀가 펜던트를 쥔 손을 꽉 쥐었다. 그러곤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내 앞으로 섰다. 나는 한껏 들뜬 어머니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발걸음이 멈추었을 땐, 펜던트 안 사진과 똑같은 배경이 펼쳐져 있었다. 비가 온 탓에 공터 아으 텅 비어있었지만 광활하게 솟은 나무, 물방울을 머금은 모래와 흙, 물에 젖어 훨씬 진해진 바닥. 분명 와보지 않은 곳이었지만 처음으로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는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대로인 공터가 고맙다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래도 한편으론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연신 공터 곳곳을 소개했다.

  “이곳은 너네 아빠가 나한테 만나보자고 고백한 곳, 여기는 어떤 여자랑 있길래 바람을 피운 줄 알고 소리쳤다가 알고 보니 너네 고모였음을 알게 된 곳, 여기는…… 평생 함께 하자고 약속한 곳인데…… 결국 지키질 못 했네. “

  ”아버지가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

  “아니, 내가 더 사랑했던 것 같아.”

  나는 하릴없이 평생을 약속했다는 곳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당장 그녀의 옆에 내가 아닌 아버지가 계셨어야 할 텐데.

  “비가 올 때마다 강우를 남편으로 착각했다며. 아직 예보상으로 비가 온다고 하니 어쩌면 남편이랑 같이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

  “……그럴 수 있겠네요. “

  “다행이네.”

  “감사해요. 아버지를 사랑해 주셔서. 그리고 절 태어나게 해 주셔서.”

  “다 컸네. 우리 강우. 이제 슬슬 친구한테 가보아야 하지 않니? 서둘러 준비하자.”

  

  설이가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달빛만이 우리의 길을 밝혀주었다. 계단을 오르기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댔다. 절로 빨라지는 발걸음에 숨이 헐떡였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도착했다. 반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고 설이는 어깨에 노란 견장을 차고 잠에 들어 있었다. 계단에서 소리가 울렸던 건 그가 잠꼬대로 괴성을 지르는 소리였다.

  “너 강우 아니야? 설이 지금 자는데……”

  내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고개를 든 건 설이의 친구 한성이었다. 같은 반이었음에도 한 번을 말을 섞어보진 않았지만 설이가 내게 다가오기 전까지 그와 늘 붙어 다녔던 친구였다.

  “잠에서 깰 때까지 그냥 여기 있을게.”

  “그래. 설이가 너한테 신경 많이 써줬는데 그 정도야 못 해주겠어. 같이 있자. 나도 같이 있다가 아침에 바로 학교 가려고.”

  “그럼 안 피곤해? ”

  “피곤하지. 그래도 같이 있어야지. 혼자 슬픔을 감당하기엔 벅찰 텐데 나라도 옆에 있어줘야 할 거 아니냐.”

  “설이는…… 좋은 친구구나.”

  한성이 눈을 비비며 다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면 당장이라도 코를 골아버릴 듯했다. 나도 어쩔 줄 몰라 그냥 그의 옆에 앉았다.

  “너도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는 아프시고. “

  “응……“

  “솔직히 나는 공부하기도 바쁜 자기 시간도 할애하고, 나한테도 어렵게 소개해드린 식당 아주머니를 너한테 대뜸 소개해줬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어. 멀쩡한 환경에서 자라온 평범한 고등학생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질투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오늘 설이가 저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걸 보니까 조금은 이해가 가더라. 얘가 왜 너한테 유대감을 느꼈는지.”

  “나도 아직 설이를 완전히 이해하기엔 부족한걸.”

  “설이의 친구라면 곧 내 친구나 마찬가지야. 비록 우리의 첫인사는 이렇게 상복을 입고 하게 됐지만 다음엔 셋이서 재밌는 거리를 찾아다니자. 너 어머니 때문에 자퇴한 것도 대충 듣긴 했어. 그럼 검정고시 준비할 거 아니야? 설이 시간 안 되면 내가 공부 알려줄게. “

  설이의 나른한 숨소리가 들리다가도 중간마다 들리는 비명에 쉽사리 잠에 들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따듯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머니의 문제가 해결이 된 것도, 설이가 슬픔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데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나마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거라곤 이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잘하고 와라.”

  “뭐야, 너희 수능 얼마 안 남았잖아. 이렇게 와도 괜찮은 거야? “

  “야, 공부 조금 안 했다고 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진 않아. 넌 그냥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네 최선을 다 하고 와.”

  검정고시 시험장 앞에 설이와 한성이 서 있었다. 그들은 각각 초콜릿 바 하나씩을 내게 건네며 어깨를 토닥였다. 각자의 반대편 손에는 우산의 쥐어져 있었다. 비릿한 비냄새가 한껏 긴장한 내 심장을 이완시키는 듯했다. 어쩌면 비냄새가 아닌 내 손에 쥐어진 이 초콜릿바가 가슴을 이완시키는 것일 수 있다. 여전히 어머니는 비가 올 때마다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꾸준히 빚도 갚고, 틈틈이 공부를 하고. 이런 삶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시험장에 들어서고 스마트폰 전원을 끄려고 하는데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 강우야, 끝나면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돈 많은 한성이가 쏠 거야.‘

  ‘여보, 잘 보고 와요.’

  내가 강우인 동시에 나의 아버지라는 게 체감이 되었다. 그래도 문자를 본 내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절로 눈을 살포시 감게 해주었다. 해를 가리는 먹구름은 아름답고 멋지고 열등했다. 그것이 머금은 눈물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나는 우산 손잡이를 더 꽉 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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